하나님은 예수라는 사랑의 집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 안에 들어오라고 초청하십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와 위로, 더 나아가 그 집에서 우리를 다듬으시고 세우시어 보자기 밖으로 나와 우리가 다른 이를 초청하는 초청자가 되도록 만들어가십니다. 우리의 위치, 명예, 권세, 능력 자체가 바뀌는 것이죠. 이런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무엇을 가르치고자 할까요? 본문 8절부터 살펴봅니다.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10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입니다. 또 9절에 보니 행위와 자랑이라는 단어도 보입니다. 네, 이러한 인간의 명예로움과 위치의 변화는 결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또 인간의 열심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임을 바울은 강조하고자 합니다. 거저 주어서 받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결코 양도가 가능하지도 또 복제가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오리지널 본사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만이 계획하셨고 또 하나님만이 만드셔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선물에 대해 그 누가 "나의 열심으로 얻었다고 자랑할 수 있겠느냐"라고 바울은 지적하는 것이죠. 왜 바울은 갑자기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요?
에베소교회 갈등의 주요원인 중 하나가 율법주의 그리스도인들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아직도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어떤 규율을 지켜야 하나님이 구원을 주신다고 생각한 율법주의 그리스도인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에베소교회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던 이방출신 신자들에게 율법행위를 강요하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율법주의 유대인들은 율법에 정통한 자라고, 유대출신인이라고, 신앙경력이 오래되었다고 "텃세"를 부렸고, 그 결과 에베소교회는 둘로 갈라질 지경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15그들을 원수로 만들었던 계명의 율법을 예수님이 자신의 육체적인 죽음으로 폐지하신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로운 백성으로 만들어 화목하게 하고16또 십자가로 그들의 적개심을 죽이고 둘을 한몸으로 만들어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한 것입니다.17그래서 예수님은 오셔서 여러분과 같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던 이방인이나 하나님과 가까이 있던 유대인들에게 평화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18그래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 한성령님 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현대인의성경)
오히려 바울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지음을 받았다,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신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교회 안에서, 예수라는 집 안에서서 모두 같은 "지체요 한 몸, 동일한 자격과 위치를 가진 동반자"임을 밝히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율법주의 그리스도인이나 유대혈통을 강조하는 이들에게 더 직접적인 "영적유익을 주는 지적"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죄인됨"을 더 인식하는 자에게 크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복음의 지적은 유대인들이 무시했던 이방출신인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 이방인이 또 다른 이방인에게 "선배로써 결코 우선될 수 없다"라는 구조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교회에서 모두 동일한 위치와 방향을 가진 동반자로써 화평을 누리는 조직임을 바울은 가르쳤습니다. 예수의 사랑 안에서라는 표현은 이런 구조임을 밝혔던 것이죠.
그래서 교회는 서로를 차별화하거나 상대시하기 보다 "서로 다른 우리를 예수가 어떻게 같은 존재가 되도록 하셨는지, 큰사랑의 선물을 누릴 수 있는 동일한 자격을 주고자 역사하셨는지"에 대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직분을 생각해보시죠. 성경에서 장로, 집사, 교사는 역할을 말하는 것이지 결코 계급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이것을 계급으로 인식하고 또 서로를 구분하고자 합니다. 교회에서 구별하고 나눌 수 있는 기준은 은혜를 거절하는 죄인과 은혜를 받은 의인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11절에서 "생각하라!"라고, 특히 텃세부리는 유대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에 집중할 것을 말합니다. 이 선물을 이방인들의 위치의 변화입니다. 11절부터입니다.
11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12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13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첫번째로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에게 할례받지 못한, 그러니까 구원에서 제외될만큼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라고 불렸습니다. 네, 사실이었습니다. 12절과 같이 그리스도 밖에 있엇고 하나님의 구원계약서에 포함되지 않은 대상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그 계약을 더 확장시키고자 이 땅에 왔습니다. 예수가 이방인들의 대표자도 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 결과 모든 인류는 믿음으로 예수와 한몸이 되어서 구원과 또 복음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행하신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해야 한다고 바울은 가르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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