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는 에베소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에베소교회에게 쓴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사랑입니다. "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서를 마치는 6장에서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등장시키며 마무리짓습니다. 이렇듯 바울은 에베소교회에게 사랑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나라 지도 중 목포를 생각해볼까요? 서남부해안의 중심지로써 많은 물량들이 오가는 항구역할을 했죠. 딱 에베소라는 도시가 터키에서 그런 위치에 있습니다. 해안가와 인접해있음으로 인해서 육로와 해안로의 중심역할을 하여 많은 문화와 교류가 이뤄졌고, 그 증거로 세계7대불가사의로 불리우는 규모가 굉장한 아데미(아르테미스)신전이 있을 정도였죠. 그런 곳에 유대인들이 이방인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를 섬기는 공동체가 만들어졌기에,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함께 공존하기 위한 사랑이 필요했음은 자명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또 쉽지가 않지요. 계시록에 등장하는 에베소 교회를 향한 질타는 무엇이었습니까? "너희가 첫사랑을 버렸다"(계3) 하나님이 에베소교회에게 원하셨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에베소교회의 첫사랑은 "2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3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2)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행위, 수고, 인내, 견딤, 게으르지 아니함 등과 같은 표현들로 에베소교회가 어떠했는지를 머리로 그려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에베소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고 때로는 그 사랑이 식어질 때도 있었던 것이죠. 그 속에서 바울이 어떻게 에베소 교회를 양육했는지 함께 보시죠.
7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8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바울은 언제나 다른 여타 교회들에게 그랬듯이 복음을 먼저 가르칩니다. 사랑의 모델로써 예수를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7절에서 "풍성함"을 말합니다. 따를 사랑의 모델링이 없으면서 따를 순 없죠. 바울은 예수 안에서 따를 사랑이 풍성하다고 말합니다. 특히 그 사랑은 배고픔을 없애는 양식, 추위를 덮어주는 옷 따위로도 표현될 수 있지만 예수의 사랑은 인간의 궁극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죄사함"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 죄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가 속량, 값을 대신 지불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사랑은 죄사함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혜와 총명"이 넘치게 하는 풍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를 위대한 존재로 변화시켜주는 사랑이었던 겁니다.
9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10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한다면서 굶주리게 만들고 추위에 떨게 한다면 그것은 위선일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그것이 와닿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의 사랑은 지금 당장 내 입에 먹을 것을 채워주지 못하는 사랑이라 때때로 위선적으로 오해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는 당장 우리 입에 먹을 것을 주지 않으십니다. 로또가 당첨되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십니다. 지혜롭게 하시고 총명하게 하셔서 위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십니다. 이 세상이 언젠가는 "정리되고 마무리지어져 질서있고 명예로와지는 통일의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이 하나님의 때를 알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의인이 되게끔 속량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죽음이 헛되지 않는 길은 우리가 "통일"을 아는 것에 있는 것이죠. 그리고 10절 하반절에 보면 그 통일이 어디 안에서, 즉 누구의 주관으로 이뤄집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네. 예수가 진행하는 통일입니다. 예수는 우리를 위해 죽으셔서 우리를 구하심과 동시에 우리에게 통일의 때에 발맞춰 살게끔 인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11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하나님은 본래 우리를 창조하시면서 "하나님의 대리자" 자리에 앉히려고 하셨습니다. 황제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분봉왕인 것이죠. 바울은 "기업"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대리자요 기업으로써의 위치를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이데 따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랑까지 됩니다. 12절을 보시죠. " 12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우리네 인생의 종착점이 어디입니까. 신의 자랑이자 신의 후계자.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신화들에서나 들어봄직한 이야기죠. 그런데 우리 삶 속에서 이뤄졌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계획하셨고 그것을 이뤄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삶을 살아 확인하라고 하십니다. 13-14절입니다.
13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14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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