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안에서 누리는 풍성함. 그것은 우리의 눈 앞에 예수가 없고, 성령이 만져지지 않아도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오늘도 살아내게 해줍니다.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다는 그 사실, 그리고 나를 권속으로 삼으사 오늘도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 그리고 마침내 나를 기업으로 삼아 왕으로 세워주실 것이라는 그 사실을 믿으며 선택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신앙의 결실을 보게 됩니다. 예수가 주는 풍성함의 진가죠.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 풍성함을 모르는 이들과의 비교를 통해 가르침을 주고자 합니다. 17-18절입니다.
17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18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7절 하반절에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마음에 남아나지 않는 행동, 헛되고 헛된 것들, 쌓이지 않고 없어져버릴 것들을 위해서 살아가지 말라고 합니다. 신자도 먹을게 필요하고 돈도 있어야 하고 사람의 인정과 칭찬이 있어야 원활한 관계 속에서 사회생활을 하기 마련입니다. 바울은 18절 상반절에 "총명, 무지, 마음의 굳어짐"과 같은 내면의 작용들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네, 문제는 이것들을 사용하는 주체자, 그것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누가 주인이 되어서 재정, 관계, 자존감을 사용하고 있느냐에 대해 우리는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에 붙들려 있느냐, 아니면 생명에서 떠나 죽어가느냐"에 관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럼 과연 이방인, 그러니까 신앙없는 어떻게 행동하길래 죽어간다고까지 말하는 것일까요?
19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바울은 그들이 마치 감각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면의 일이니 "양심없는 사람처럼 또는 수치를 모르는 뻔뻔한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바울은 18절에서 총명이 어두워 무지하고 마음이 굳어있다고 표현한 것이겠죠. 그리고서는 더 나아가 양심없이 뻔뻔한 말과 행동, 선택으로 자기자신을 욕심에 내어줘버린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 것이지요. 사실 이런 일을 두고 바울은 "이방인"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말한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에베소교인들에게 "신자라도 이처럼 행동할 수 있다! 주의하라!"라고 경고와 권면을 한 것이겠죠. 특히 22절에서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 즉 신앙이 생기기 전 비신자때의 행동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말이죠.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따라갈 "대표자, 모델"을 주셨습니다. 20절부터입니다.
20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21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23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여러분, 예수는 마음으로부터 믿어 행동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예수의 말과 행동, 선택에 "진리"가 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의 인생을 나를 향한 가르침임을 믿고, 또 그를 따르는 인생으로 "새사람"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네, 신앙생활은 그렇게 오늘 나의 실생활에서도 살아움직이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예수를 따르는 인생을 통해 오늘 나는 새사람이 되고, 나를 통해 교회를 세워가 예수의 몸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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