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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_E

계속 이대로 살 수는 없다_서평 ch.9-10

by 우루사야 2022. 3. 30.

언젠가 저자와 지하철을 타고서 어디론가 갈 때였다. 그 당시 결혼문제로 목사님께 조언을 구할 때였다. 딱히 별 말씀은 안하셨다. 그냥 들어주셨다. 츤데레의 매력이 이런 것일까. 평소에는 혼날까봐 도망다녀도, 내 어려움과 문제가 생길 때 저자와의 시간을 찾게 된다. 별 해결책을 주신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대화 속에서 응원과 지지를 받았다. 마침내 그 시간을 잘 이겨내고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저자에게 많은 내 영역을 스스로 오픈하며 다가가고 싶어했다. 베드로에게는 예수님이 그러했던듯하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만날 당시 예수님이 그렇게 인지도가 있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예수님께 느껴지는 무언가로 배를 내어드렸다. 자신의 영역을 드렸던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는 자신의 홈그라운드였던 배라는 공간 안에서 기적을 체험했고, 회개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배에서 나와 물 위를 걷기도 했다. 두 사건 모두에서 공통점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러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세상이 원하는 대로, 세상이 말하는 대로 최선을 다해 살면 세상이 바라는 인간의 삶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이 땅에 선포하는 사명자로 살고자 한다면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그 배에서 나와야 한다. 내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주는 그 배를 주님께 드려야 한다. 내 안전을 지켜주고 내 삶을 조장해주는 그 무언가에서 벗어나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한다."

내가 왜 그리도 저자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했는지 돌아본다. 청년의 시절 많은 혼돈과 갈등 속에서, 더군다나 21세기 목회자라는 안개와 같은 장래 속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가질 때 성경이 그토록 말하는 '영적질서'를 어른으로부터 배우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가설 수 있는 어른이 없었다. 노회에 가면 목회자후보생들은 저 뒤에서 아무말 없이 주는 간식을 먹으며 방청객으로 있어야 했다. 교회에서 부교역자는 당회나 중직자회의에도 들어갈 수 없는 말단계약직이다. 평신도에게 오픈할 수도 없는게 부교역자다. 인생의 어른을 만나기 힘들다. 저자가 청소년 사역 팁 중에 자주 언급하는 것이 있다. "친구같은 어른". 그래서일까? 만나기 힘든 친구같은 어른을 저자에게서 만나서인지, 저자를 자꾸 따랐던 것 같다. 영적질서를 알려줄 친구같은 어른에게 말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나? 무슨 은사를 받았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어떤 스펙을 쌓았는가? 갑자기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나? 아니다.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지만, 주님은 그저 베드로를 부르시고 사용하고자 마음을 정하셨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 약하고 부족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예수님은 가장 훌륭한 랍비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언제 한번은 저자에게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럼 쿨하게 "싫어, 지영이(본인의 아내) 보고 싶다"고 하신다. 내가 어느 윗대 목사님과 이런 농담을 나눌 수 있을까 싶다. 그러면서도 나 자신을 본다. 나는 나의 후배들에게, 청년들에게 과연 친구같은 어른일까? 다가서고 싶은 이인가? 자신의 영역을 오픈하면서까지 가까이 오고 싶은 사람일까? 그래서인지 마지막 챕터에서 "앞에서 살펴본 아홉 가지 영적 중심잡기는 모두 나에 대한 내용"이라는 말에서 생각에 잠기게 된다. 나는 이런 고민을 진중하게 했던가?  혹시 후배들과 청년들에게 어른인척 했는가? 이런 고민을 나눈 적이 있는가? 나의 영적질서잡기에 대해서 솔직담백하게 나누는 사람인가 어른인척 하는 꼰대인가?

"영적질서를 세우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영적수준을 높이는 것이다......선교사의 헌신을 바라보고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되지 말고, 우리 삶에서 동일한 헌신을 추구하라. 가장 높은 영적 수준의 삶을 살도록 애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제사장으로 부르셨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영향력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한다."

요즘 사회적 이슈를 접하면서 20대와 의견이 다른 나의 모습을 자주 겪는다. 그러면서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어려서 뭘 모르네." 그렇다. 나도 꼰대다. 친구같은 어른이 아니라 꼰대다. 성숙해져야 겠다는 생각으로 책 마지막 장을 덮게 된다.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에 한편으로 마음이 놓인다. 다 컸다고 다 안다고 자부하는 모습이 얼마나 가소롭게 보일까? 친구같은 어른이 되기로, 성숙한 한 사람이 되기로, 저자를 떠올리며 다짐해본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초대교회가 이교도들의 문화와 싸우면서도 그들을 사랑했음을 말해준다. 하나님의 성숙한 제사장은 그런 사람이리라. 내가 예수를 믿어 위로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제사장이 베푸는 축복에까지 이를 수 있기를 간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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