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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_D

과거와 기억으로부터 시작하는 미래

by 우루사야 2021. 9. 24.

* 본문은 맥체인성경읽기 155번째 신명기 8장, 시편 91편, 이사야 36장, 요한계시록 6장입니다. 개역개정4판을 사용하였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생에 7가지의 과정 또는 절차, 다르게 말해보자면 순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질서의 하나님이 다스리는 방법으로 생각하는데 부르심, 훈련, 입성, 예배, 환란, 기다림, 성취 순으로 생각하곤 한다. 구원의 서정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다. 그럼에도 시간과 공간, 절차라는 한계 속에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마음대로 재단할 수 없다는 조심성을 갖게 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먼저 부르시고 그것을 성취하시는 분이다. 그 과정 속에 인간은 훈련을 받기도하며, 부흥을 경험하기도 한다. 오늘 이스라엘은 광야에서의 훈련을 마치고 이제 가나안 땅이라는 곳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였음을 모세를 통해 밝히신다.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8)

사람의 정신력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환경은 헝그리일 것이다. 배고픔은 간절함을 낳고, 간절함은 무언가를 배우고 습득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수단이 되어준다. 인간이 그렇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생산성 없어보이는 이 글을 쓰면서도 위로를 받는다. 내 삶에 의미가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하면서도, 지금이라도 내 힘으로 성도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분주함을 부추기는 내 심리상태가 요동치지만 결국에는 자리에 앉히신다. 이 광야를 걷게 하신다. 그리고 배우게 하신다.  

9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신8)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은 그 이후에도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17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19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신8)

사람은 답이 없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없다. 그래서 항상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위치가 어떻게 시작한 것인지, 또 그 과정은 어떠했는지. 사실 사람이 스스로 낮아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게 된다. 결국에는 과거를 기억하는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이스라엘이 망했는지, 시험당했는지, 어떻게 회복이 되었는지를 말이다. 그래서 나의 과거를 합리화해서는 안된다. 나의 과거 속에서 잘못한 것, 그래서 하나님께 질타를 받은 것, 그래서 망한 것.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프지만, 기억하기 싫지만, 합리화해서 묻어두고 싶지만. 꺼내서 올려놔야 한다.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망하지 않는다. 

1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시91)

내가 신을 떠날 수 있는가. 자기망각에 갇히면 가능하게끔은 보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찌보면 이건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다시금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세상은 사냥꾼의 올무와 같이 심한 전염병 같이 나를 옭아매고 넘어뜨리려 하지만,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나의 방패가 되어주신다. (시91:2-3)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더 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복음을 알면 알 수록, 인간의 깊은 타락과 넘어짐을 봐야 그 복음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기개발 영역을 나눌 때 1열은 사적영역, 2열은 공적영역, 3열은 사역으로 나누는데, 2열을 성경과 인문학으로 두었다. 인간을 알아야 성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의 삶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타인의 삶을 통해 나의 타락이 더 잘 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13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시91)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내가 이룬 성취가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사실 많지가 않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로 인생을 버텨온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님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앞으로도 하나님이 없으면 안된다. 내가 사자와 독사를 밟을 수 있을까? 원수를 물리치고 당당히 승리했다고 말하는 순간이 올 수 있을까? 인생 겨우 살았다고 말하면 다행이지 않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하셨다. 그런 인생을 살게 하겠노라고. 

16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것이며 각각 자기의 우물물을 마실 것이요 17내가 와서 너희를 너희 본토와 같이 곡식과 포도주와 떡과 포도원이 있는 땅에 옮기기까지 하리라 18혹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할지라도 속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자기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사36)

히스기야의 광야생활은 이사야서에 기록이 되어 있다. 왕이면서도 모욕과 수치를 당해야 했던 그였다. 앗수르 대신 랍사게는 하나님을 들먹이면서 히스기야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오히려 랍사게는 하나님의 명령을 가지고 왔다하면서, 히스기야와 유대의 신앙을 부정하게끔 했다. 히스기야에게 왜 이런 모욕의 시간이 왔을까? 그것을 단지 광야 또는 훈련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단순한 절차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 서두에서 그렇게 밝혔다. 어쨌든 이 시간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앗수르는 멸망의 단초가 될만큼 큰 패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럼에도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여 바벨론에게 무기창고를 보여주고 멸망하게 된다. 

17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a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신8)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기억해야 한다. 과거를 생각해야 한다. 과거는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돌아보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미래만 바라봐서는 안된다. 과거의 하나님과 나를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의 방향을 정하게 해준다. 그것들이 모여 내 미래가 결정이 된다. 뱀과 사자를 밟을 것인지, 아니면 망하게 될 것인지. 
어제 뉴스에서 접하게 된 사실인데,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10-20대 여성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특히 부정적인 영향을 받음으로써 자살률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고서를 작성했고,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인스타그램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이 뉴스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틱톡 등 많은 SNS의 차이점을 말하고 또 연령대별로 많이 쓰는 매체를 정리해보기도 했다.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단, 페이스북측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정리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과거를 잊어버린채 현재만 생각함으로써 나의 미래를 꾸미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의 현재와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허망한 것들로 채울 뿐이었다. 나의 미래는 나의 과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른 것으로 시작하면 나의 현재에서 어긋나고 미래에서 돌이킬 수 없을만큼 복잡해진다. 나의 과거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서 시작해야 한다. 그 분이 나에게 그늘이 되어주실 것이다. 아프고 힘들지만, 수치스럽고, 고통스럽지만 과거의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때에도 계셨던 하나님이 지금 동일하시기에 우리는 과거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1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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