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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사무엘상_천국을 다스리는 자

삼상 25:32-44

by 우루사야 2023. 5. 5.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사무엘상을 살펴보면서 기이한 상황들을 계속 목격해왔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에 앉은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 가르치게 하는 것보다, 자리에 앉은 자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낮은 자리에 있던 자들을 하나님이 들어 쓰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사울 앞에서 소년 다윗이 그러했고, 나발 가문에서 종과 아녀자 아비가일이 그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높은 자리에서 교만한 자를 통해서 결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낮은 자리에서 겸손한 자들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특히 죄와 사단이 다스리는 이 세상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이 쳐서 말살시키고자 했던 집안의 아녀자, 아비가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돌이키게 됩니다. 본문 32-34절입니다. 

32.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33.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34.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더면 밝는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한 남자도 남겨 두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아비가일을 만나게 된 것이 "하나님의 도움"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다른 어떤 도움의 손길보다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회개하게 되는 가르침, 자기 자신의 변화를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죽음의 피흘림"과 "나의 힘으로 복수하며 다스리려 하는 것"을 막게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여러분, 구약 율법에서 하나님이 가장 경계하시는 두 가지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생명과 죽음의 관계에서 하나님께서는 피흘림이 곧 죽음이라는 영적원리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가르치셨습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사람 관계에 적용되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율법까지 만드셨습니다. 복수하라는 것으로 많이들 오해하시는데, 그것이 아니라 너 자신이 당할 아픔이라 생각하고 타인에게 어떻게 대할지를 먼저 생각하라는 "생명존중"의 율법이었습니다. 즉 다윗은 아비가일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판단으로부터 돌이킬 수 있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35-38절입니다. 

35. 다윗이 그가 가져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고 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내가 네 말을 듣고 네 청을 허락하노라
36.  아비가일이 나발에게로 돌아오니 그가 왕의 잔치와 같은 잔치를 그의 집에 배설하고 크게 취하여 마음에 기뻐하므로 아비가일이 밝는 아침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다가
37.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에서 깬 후에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말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38.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상황이 정리됩니다. 아비가일을 통해 다윗은 뜻을 돌이켰고, 아비가일은 이것을 나발에게 말합니다. 나발은 자신의 재력과 자만으로 안주했다가 다윗이 자신을 치러 오려고 했었다는 소식에 몸에 병을 얻게 됩니다. 더 나아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했다고까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글로 보며 몇구절만에 이뤄진 일이니 쉽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다윗이 억울하여 분을 삭히는 광경, 자신의 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을 목숨을 걸고 막으려고 다윗 앞에 나섰던 아비가일의 용기, 두려움으로 벌벌 떨며 열흘동안 앓아 눕다가 결국 죽게 되는 나발. 여러분이 이 광경을 실제로 목격하신다면, 아마도 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움과 하나님 나라의 역동성에 저절로 경외감을 갖게 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믿고 자신의 생활과 의지를 바꿔나가는 자들에게 "일하고 계심을 나타내십니다." 이미 하나님은 모든 자들에게 일하고 계시는데, 믿는 자들에게는 "그것을 확연하게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 일이 하나님으로 인한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의 변화들을 보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격하고 해석하고 확인하며 살아갈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39-44절입니다. 

39.  나발이 죽었다 함을 다윗이 듣고 이르되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의 머리에 돌리셨도다 하니라 다윗이 아비가일을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말하게 하매
40. 다윗의 전령들이 갈멜에 가서 아비가일에게 이르러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당신을 아내로 삼고자 하여 우리를 당신께 보내더이다 하니
41. 아비가일이 일어나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이르되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전령들의 발 씻길 종이니이다 하고
42. 아비가일이 급히 일어나서 나귀를 타고 그를 뒤따르는 처녀 다섯과 함께 다윗의 전령들을 따라가서 다윗의 아내가 되니라
43.  다윗이 또 이스르엘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았더니 그들 두 사람이 그의 아내가 되니라
44. 사울이 그의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더라

다윗의 상황과 환경을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십니다. 다윗은 같은 유다지파 나발의 가문에서 아비가일이 과부가 되니 계대결혼을 통해 그녀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습니다. 아마도 다윗이 아비가일을 삼는데 있어서 더 가까운 친인척들도 다윗이 아내로 삼을 수 있도록 돕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지혜와 침착성, 겸손함, 덕스러움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배운 만큼 그녀를 아내로 삼는데 있어서 적극적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발의 재산과 영향력도 함께 흡수함으로써 이 사건을 통해서 다윗은 유다지파에서 급부상할 수 있었을 겁니다. 

사울의 나라에서 성공하려는 자들은 피를 흘리고 자신의 힘으로 이웃을 짓누르고 오르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윗은 자신의 노력과 힘이 아니어도 하나님의 뜻을 향해 살아냈을 때 하나님이 높여주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섬김의 나라로 이 세상을 만드셨고, 그 원리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악의 세상 속에서도 섬김과 낮아짐의 원리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섬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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