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더 고난의 현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현장에서 성경은 한 부부를 주목했는데 특히 나발이라는 자가 탐욕의 질서를 따름으로써 다윗이 속한 하나님의 나라에는 어울리지 못함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함께 언급되었던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선한 하나님의 나라에 어울리는 자로 표현되었었는데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그럼 이 세명의 이야기를 한번 살펴보죠. 9-11절입니다.
9다윗의 소년들이 가서 다윗의 이름으로 이 모든 말을 나발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10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11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나발은 다윗과 같은 지파사람이라 하더라도 또 다윗군사들의 도움을 받아왔더라도 그 모든 것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물과 사울의 권력을 더 우선시하는듯이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윗이 종들을 통해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단번에 거절합니다. 특히 그가 거절하는 표현들에 그의 태도가 엿보입니다. “다윗이 누구냐!” 다윗을 모를 수 없으면서도 이렇게까지 비하합니다. 더 나아가 다윗을 향해서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사울의 핍박으로 어쩔 수 없이 도망쳐온 다윗을 비꼬고 있는 것이죠. 마치 정치력과 불성실로 쫓겨난 것처럼 표현을 합니다. 그에게 어찌보면 시기와 질투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할 정도로 나발은 과하게 거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37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5) 예수님은 우리의 말과 대답을 절제하며, 말할 바만 말하고 하늘과 땅의 무엇으로도 맹세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죠. 즉 과유불급, 말하는데 있어서 절제하며 말하면 될 것이지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거나 이웃의 마음을 해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나발은 다윗을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도움요청에 거절하더라도 상대의 처한 환경을 비하하고 무시하며 말하고 있는 것으로, 신자로써 해서는 안될 행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12-13절입니다.
12이에 다윗의 소년들이 돌아서 자기 길로 행하여 돌아와 이 모든 말을 그에게 전하매
13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사백 명 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이백 명은 소유물 곁에 있게 하니라
다윗의 소년들이 다윗에게 무어라 보고했을까요? 도움요청을 거절한 것을 말했을까요 아니면 나발의 태도에 대해서 말했을까요? 네. 나발의 모욕적인 태도에 대해서 분해하면서 말했을 겁니다. 다윗이야말로 지금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으로써,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도망자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신하들을 설득하면서까지 지켜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나라 백성 자기지파 가문을 치기 위해서 칼을 든다는 것이 나발의 거절로 인한 것이겠습니까? 아니죠. 다윗을 향한 모욕적 언사와 그의 태도때문인 것이죠. 이에 다윗은 자신이 직접 군사를 데리고 출정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의 아내 아비가일이 등장하게 됩니다. 14-16절입니다.
14하인들 가운데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우리 주인에게 문안하러 광야에서 전령들을 보냈거늘 주인이 그들을 모욕하였나이다
15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다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16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아비가일도 부자 남편의 처로써 얼마나 콧대가 높겠습니까? 그런 그녀에게 한 종이 나아와 나발이 다윗의 종들을 모욕한 사실을 전합니다. 게다가 그 종은 지혜롭게도 그간 다윗의 군사들에게 도움을 받아왔던 것들을 함께 말하며 나발이 지금 양털깎는 축제를 안전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 군사들의 도움때문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즉 이 종은 부자집 마님으로 함께 못될 수 있는 아내가 아니라 집안 바깥양반이 저렇게 악하더라도, 안주인은 선하고 다윗을 향해 지혜롭게 처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이에 종은 17절과 같이 말합니다.
17그런즉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지를 알아 생각하실지니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음이니이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하는지라
여러분, 지금 이 집안과 가문을 진정으로 지키는 자가 누구입니까? 사울이 나라백성들을 지키지 못하고 헛된 집착에 빠져있을 동안 나라가 힘들어진 것처럼, 나발의 교만으로 인해서 나발의 가문은 망할 처지에 있지만, 종이 그의 집을 구하고 있습니다. 사울 대신에 아들 요나단이 블레셋을 물리치고, 다윗이 골리앗과 블레셋을 물리쳐왔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 원리에서는 높은 자만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세운 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작은 자들을 통해서라도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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