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다윗을 도왔던 아히멜렉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사울은 마음에 숨기는 것 하나 없이 분노하게 됩니다. 아무리 다윗을 향해서 마음을 고쳐먹고, 회개하고, 돌이키려 해도 "입에만 머무는 가짜 회개"는 결국 그가 여전히 탐욕이라는,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숭배하는 삶을 살았음을 반증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울의 가짜신앙이 오늘 본문에서 여실히 드러나고야 맙니다. 11-13절입니다.
11왕이 사람을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12사울이 이르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13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냐 하니
일전에 놉 땅에 성막제사를 드리려고 방문하면서 다윗과 아히멜렉 제사장과의 만남을 도엑이 목격했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할 때 그의 어투를 잘 보셔야 합니다. 10절에 보니 “그를 위하여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더이다” 지금 도엑은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기보다 사울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이 상황을 어떻게든 이끌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순수함이나 사실 그대로를 말하기보다 “자신의 해석”을 담아서 “사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다윗과 아히멜렉이 사울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무기와 음식들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가지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사울도 제사장들을 불러 취조하기를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려고 하냐!”라고 묻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사울이 본래 마음이 꼬여있었기 때문에 어떤 정보든 그렇게 해석할 것이었지만, 지금 도엑도 그러하다는 사실, 즉 다윗의 나라엔 연약한자들이 모이고 있고 사울의 나라에는 이렇게 강한 힘에 들러붙으려는 자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이 비교대조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내가 있는 조직 또는 공동체는 어떤 성격과 유형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가정과 교회에서 더욱 우리는 중심을 잡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혹시 “돈을 잘 버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 되어가는 것은 아닙니까? 가정은 쉼과 돌봄이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생명을 나누는 자들로 하나님이 만들어준 공동체입니다. 그곳에서 세상에 다시 나갈 힘을 받고 나가야 하는데, 가정에서 조차 쉴 수 없다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 곳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교회는 더욱 더 그러합니다. 영혼을 다루는 하나님의 뜻을 가장 직접적으로 대언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힘의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원리,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구원과 안식, 하나님의 가르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울이 지금 제사장들을 질타하는 내용은 오로지 “자신의 힘과 권력으로 하나님의 대언자들을 짓밟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이죠. 결국 사울은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신앙이 바닥을 드러냈음을, 자기자신을 숭배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14-19절입니다.
14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15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하건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크고 작은 일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16왕이 이르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너와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17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18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19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이 사건의 특징을 잘 보십시오. 첫번째, 누가 높아졌습니까? 사울의 힘과 탐욕의 원리를 따르는 자들이 높아집니다. 사울은 가축을 돌보는 자들, 즉 사회적 위치가 낮은 그에게 갑자기 “호위병들의 임무”를 맡깁니다. 급작스러운 결정을 사울은 내려서라도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제사장을 죽이라는 명령에 아무도 따르지 못하고 있었지만, 탐욕의 나라에 줄을 서고 싶었던 도엑이라는 자를 높입니다.
두번째, 누가 낮아졌습니까? 아히멜력은 사울 앞에서 충문히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만, 사울은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것은 안중에 없었습니다. 자신은 여호와 섬기는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정치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혀 알지 못했고, 다윗을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다윗이 요청한 것들에서 특별한 조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항변이었습니다. 이 논리와 명분을 모두가 합리적으로 생각했기에, 사울의 처형하라는 명령을 그 누구도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울은 결국 아히멜렉을 비롯하여 제사장 85명과 놉 성읍에 있는 이들, 그리고 그들의 소유인 가축들까지 모두 진멸시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담당하고 수고했던 "놉"성읍을 없애다시피 한 것이지요. 이것으로 사울의 나라, 사울의 신앙의 밑바닥이 드러나고야 말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와 사울의 나라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질서와 의로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욕망으로 세운 나라는 있다가도 사라질 욕망이 중심이 되기에 무질서합니다. 지금 사울과 도엑의 처신을 보십시오. 질서도 없고 오로지 감정만 앞세워서 일을 처리하는 모습만 보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제사장,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이라는 기준 모두가 무시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사결정에는 “하나님 앞에서의 묵상”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속에서 ‘혹시 내가 힘으로 일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무질서하거나 불의하지는 않은가? 감정이 우선시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생명, 섬김, 사랑, 질서, 의로움이라는 하나님의 덕목까지 함께 묵상하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20-23절입니다.
20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21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매22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23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여기서 다윗의 나라의 특징이 등장합니다. 제사장들이 모두 진멸당하고 있을 때 아비아달이 도망가 다윗에게로 가게 되었고, 다윗은 도엑으로 말미암아 놉 땅의 제사장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된 것에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여 아비아달을 지켜주고 또 그를 위해서 "자신의 탓"이라고 말해주며, "두려워하지 말라,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고 말해줍니다. 지금 사울은 한 나라의 왕입니다. 다윗은 도망자 신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어디에서 안정감이 느껴집니까? 누가 백성을 지켜주고 있습니까? 여러분, 과연 우리의 나라는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여러분의 가정, 직장, 사회, 교회, 이웃과의 관계에서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영향력을 흘려내고 있습니까?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나라를 닮은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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