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과 요나단이 서로 나눈 대화가 실재로 이뤄지게 됩니다. 사울의 속마음을 앎으로써, 앞으로의 다윗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고난의 길을 미리 예비하신듯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바로 왕으로 삼으실 수 있으심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고, 다윗의 양심을 통해 계속해서 사울 안에서 있게 하셨습니다. 인간세상에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윗이 지금 당장 사무엘을 위시하여 쿠테타를 일으키는 것이 맞아 보입니다. 특히 사울이 자신을 이렇게 죽이려드니 말이죠. 그러나 다윗은 도망자의 길을 걷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뜻이나 질서보다 오로지 자기자신만을 바라봅니다. 24-29절입니다.
24다윗이 들에 숨으니라 초하루가 되매 왕이 앉아 음식을 먹을 때에25왕은 평시와 같이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아 있고 요나단은 서 있고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아 있고 다윗의 자리는 비었더라26그러나 그 날에는 사울이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생각하기를 그에게 무슨 사고가 있어서 부정한가보다 정녕히 부정한가보다 하였음이더니27이튿날 곧 그 달의 둘째 날에도 다윗의 자리가 여전히 비었으므로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 묻되 이새의 아들이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냐 하니28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다윗이 내게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간청하여29이르되 원하건대 나에게 가게 하라 우리 가족이 그 성읍에서 제사할 일이 있으므로 나의 형이 내게 오기를 명령하였으니 내가 네게 사랑을 받거든 내가 가서 내 형들을 보게 하라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사 자리에 오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
초하루에 모이는 날에는 "희생제사"를 드리게 되어 있는데, 율법을 범하여 부정한 자는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사울은 그래서 다윗이 나오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당연한 생각의 흐름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 날에도 다윗이 정결케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졌음에도 나오지 않은 것이지요. 이에 요나단은 다윗을 위한 거짓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 거짓말이 사울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질문에 "가족을 만나러 베들레헴, 유다지파"로 간다는 내용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만약 사울이 다윗에 대한 마음을 풀었다면, 이것은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이 일전에 요나단 앞에서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삼상19:6)라고 고백한 것을 신경쓰고 있지 않거나 어길 마음을 작정하고 있다면, 사울은 크게 화를 내게 될 것입니다. 다윗이 쿠테타를 일으키러 갈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울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30-31절입니다.
30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31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한지라
사울은 요나단에게 굉장히 크게 화를 냅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이 왕좌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위협이 되는 다윗을 제거해야 한다는 속마음을 그대로 내비친 것입니다. 게다가 사울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 즉 다윗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미련하고 수치스러운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지금 사울의 사고방식은 철저히 세속화되어 있습니다. 사울에게 왕의 자리는 누군가 짓밟고 죽여서 올라가고 유지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고방식을 요나단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아들 요나단도 그렇게 왕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말이죠.
여러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종교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마16:11)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우월적인 종교적 위치를 고수하여 다른 이들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가르치는 가르침에 대한 주의를 주셨습니다. 결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셨죠. 그런데 그 가르침은 은근슬쩍 몰래 슬며시 은밀하게 다가오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샌가 나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요나단은 그런 점에서 사울의 세속적 사고방식을 단호하게 끊어냅니다. 32-34절입니다.
32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33사울이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한지라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고34심히 노하여 식탁에서 떠나고 그 달의 둘째 날에는 먹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
요나단은 사울의 입장에 반대의사를 확고히 표시합니다. 그러자 사울은 자신의 아들이자 자신의 왕위에 뒤를 이을 자라고 생각했던 요나단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고 합니다. 이에 요나단은 사울의 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다윗이 사울을 훼방놓는 걸림돌이 아니라, 사울이 다윗을 욕되게 하는, 하나님 나라에 자신의 아버지가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요나단은 다윗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슬퍼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사고방식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작정 사랑하고 무작정 희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때문에 희생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핍박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순종하는 것일 줄 믿습니다. 하나님때문에 슬퍼하며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위로를 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의 기준이 되어주시어, 좁은문 좁은길을 걷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위로로 채워주실 것을 믿으며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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