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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주일설교

롬5:12-14

by 우루사야 2021. 8. 20.

https://www.youtube.com/watch?v=hEi0DICbEGM 

 

본문. 로마서 5:12-14     제목. 한 사람의 순종

1. 서론

1) 들어가기 : 이렇게 주님이 부활하신 날 우리가 함께 모여 찬양할 수 있음이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요 위로인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모인, 그리고 영상으로 예배에 함께 하고 계신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길 소망합니다. 이번 주 큐티본문은 로마서 5장부터 7장이었습니다. 그 중에 5장을 살펴보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2) 예화 : 작년 이맘때 즈음에 브라질 북동부 동네에서 운석 200여개가 떨어졌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40kg짜리는 약 3천만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돌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그 자리를 지켰겠지요. 한편 올 6월 예멘이라는 나라에 빈배에 보물이 들어왔습니다. 향유고래의 변인 용연향이 그물에 잡힌 것이지요. 바다에서 발견될 당시에는 냄새가 고약하고 끈적이는 물체이기에 가까이 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그 돌덩이가 무엇인지 알았던 어부는 그걸 건저올렸고 16억원이라는 가치를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이것들의 가치를 몰랐다면 이것은 그냥 돌이요 바다의 쓰레기 였을 겁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성경의 언어를 우리는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내가 받은 은혜가 어떤 은혜인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단순하게 넘기고 갈 것이 아니라 왜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하셨는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3) 주제 : 오늘 본문을 한번 살펴보시죠. 14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 이 언어를 우리는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운석이자 용연향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돌이고 바다에 떠다니는 이상한 물체, 어리석은 것이 됩니다. 왜 아담은 오실자의 모형이며, 예수는 모형의 실체, 모형이 장차 이룰 진짜가 되는 겁니까? 여러분, 이런 생각해보셨나요? 내가 아담이나 하와였다면 나는 죄를 짓지 않고 평생 에덴에서 잘 먹고 잘 살았을 것이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인류 그 누구도 이런 죄와 교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걸 대표했던 것이 아담이었을 뿐입니다. 아담은 결국 나입니다. 인류는 결코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올 "모형의 실체"가 필요한 겁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이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인간은 결코 하나님을 떠나서는 스스로 선한 존재가 될 수 없고, 우주의 통치자가 될 수 없다. 오로지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했을 때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니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라! 그러면 영생과 왕노릇을 누리게 되리라. 

4) 본론잇기 
오늘 우리는 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곧 나인 아담, 그리고 그 자리를 대체해서 회복시켜주신 예수 그리스도. 그 과정과 실체, 그 속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섭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함께하심. 그 이야기를 통해서 여러분의 구원이 얼마나 위대하고 감격스러운 것인지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하나님나라 대사 아담의 실수

예수가 회복한 이야기이니 먼저 "망쳐버린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본문 12절에서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라고 시작합니다. 여기서 한 사람이 아담을 말하죠. 그가 대표자인데 그 사람이 죄를 세상에 들여놓았습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구와 아담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하나님나라를 세우기 위해 지구를, 그리고 그 대표자로서 아담을 세우셨습니다. 아담의 뜻은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아담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신의 욕망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첫범죄를 하와가 지었어도, 책임의 자리에 있는 것은 첫사람 아담이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지구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으며, 그 결과 같이 하나님을 배반한 사단마귀 공중권세 잡은 자가 와서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 이후로 태어나는 모든 자는 자신이 짓지 않은 죄의 영향 속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걸 바울은 12절과 같이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12절)

아담의 죄는 개인의 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인류의 대표이니 그의 행동은 대표에게 속한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대사의 개념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대사란 한 국가와 국가의 원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한국 대통령이 타국에 대해서 전할 메시지가 있으면 대사관의 대사를 청와대로 불러들여 메시지를 전하거나 항의를 합니다. 이처럼 대사는 "대표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대표자의 협상으로 한 나라의 의견과 협정이 정해지게 됩니다. 군사적, 문화적, 경제적인 것들이 결정됩니다. 한 사람을 통해 수천만의 국민이 혜택을 입기도 하고, 불이익을 입기도 합니다. 아담은 하나님나라의 대사였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그것을 수호하고 있는 천사가 이루는 세계에서 다암은 지구에서 하나님대사로 그 뜻을 대변하고 다스릴 사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 대사를 임명하시며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아담의 위치는 곧 "지구 상의 모든 것에 영향력을 끼치는 자리"였음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충만, 정복, 다스림"이라는 단어가 쓰일 수 있는 겁니다. 더 나아가 이 대사는 지구상에 역할을 마치고 하나님 곁에 와서 "왕노릇"하리라고 요한계시록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세계경륜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시다시피 아담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대사가 본국의 뜻을 져버리고 본인만의 세상을 세운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다스림의 전파력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그의 죄라는 본성이 세상에 퍼져나가니 세상은 금새 공중권세 잡은 자들과 연합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의 굴레와 속박 속에서 묶이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에 대해서 즉 아담의 범죄 이후에 대해서 바울은 13절과 같이 말합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13절)율법은 아담 한참 이후 모세 때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법이 없으니 사람은 죄를 짓고서도 그것이 정확히 어떤 죄인지, 명확히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알길이 없었습니다. 다만 양심이나 사회에서 규정하는 법률 안에서 판단할 뿐이었습니다. 사회적 규범을 어긴 것으로는 규정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과 관계에서 어떤 회개와 믿음이 필요했는지 정확하게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14절과 같이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담의 실수의 파급력입니다. 여러분, 제가 서두에 아담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우리가 죄인이 된 이후 우리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세기 3:9-12)

하나님을 피합니다. 두려움이 항상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벗겨진 모습보다는 무언가로 숨기고 싶어 합니다. 내 잘못이 드러나면 다른 이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 책임을 돌려 무르고 싶을 정도입니다. 

자신이 잘못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때 나타나는 양상이 있습니다. 혼돈, 감정의 기복, 허무, 공허 등이 그러합니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알지 못하니 두렵고 숨고 싶고 다 포기하고 혼자 있고 싶을 뿐입니다. 아담이 그랬습니다. 대사가 대표자로서의 위신과 태도, 책무를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신 개인의 욕망을 위해서 자신의 자리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담은 공허한 존재, 이름과 같이 "먼지뿐인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요즘 세대에게 일어나는 현상 중에 하나가 "기준의 공백"입니다. 어떤 기준이나 잣대를 세우는 순간 그것을 꼰대, 구시대적, 낡아빠진 생각 등으로 치부합니다. 이에 대한 다양한 이슈들이 있지만 가장 많이 일어나는 영역은 아마도 가장 전통적인 기준이 세워진 성과 가정의 영역에서 일어납니다. 동성의 관계, 가족의 형태의 다양화, 자신의 성결정권, 부모의 성 중에 누구의 것을 따라야 하는가, 결혼의 가벼움, 낙태와 간통에 대한 법적 이슈 등이 그러합니다. 
물론 전통적인 것이 다 옳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새로워질 것들은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법에서도 자연법과 실정법으로 나누고 있죠. 자연법은 민족, 세대, 인종을 초월하여 지켜져야 하는 것들입니다. 십계명이 그러하겠죠. 실정법은 이와 상대적으로 각 민족정서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실정법이 자연법을 파괴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 속에서 생명이 경시되고, 가정이 파괴되며, 문란함과 방종을 일삼게 됨에 있습니다. 이것이 자연적으로 가정파괴와 자살률, 현실의 부정, 정신적 타락, 극단주의로 나타나고 있고 이것이 한국의 상황임을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 아담의 후손입니다. 죄의 후손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어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담의 후손인 것을, 죄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조금 더 개인적으로 가볼까요? 아담의 죄는 여러분의 죄입니다. 여러분 안에 살아있지요. 여러분의 상대의식, 피해적 망상, 불안, 초조, 압박, 두려움... 그것의 출발점이 어디입니까? 내가 나로서의 존재감을 찾지 못하면 얻어지게 되는 내면안에서 일어나는 힘들 아닙니까?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 보이는 모습 그대로가 우리의 모습임을 우리는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회복 시켜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각 시대마다 스승은 있고 어른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대가 달라지면 또 다른 스승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그 스승도 인간이기에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의 궁극적인 스승이 되어줄 수 없습니다. 초자연적이고 궁극적인 "스승"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내면을 꽉 채워줄 수 있는, 우리의 심령을 회복시켜줄 수 있는,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죄를 해결 해줄 수 있는 "메시야"가 필요합니다. 아담의 자리, 나의 자리에 다른 누구, 다른 것이 아닌 가장 초월적이면서도 가장 인자한 메시야,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2) 하나님 나라 대사 예수의 아담자리의 회복

1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5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하나님의 은사, 즉 하나님의 선물, 인류를 회복시켜줄 "하나님의 계획"은 아담과는 다르다, 인류와는 다르다, 신의 방법은 너희와는 다르다, 그래서 너희는 초월자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인류의 대표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세상에 다시 온 대표자, 새로운 대사가 제대로 일을 했습니다. 예수의 은혜로 많은 사람이 구원의 선물을 넘치게 받았다는 겁니다. 그 선물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16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대표자 한 사람이 어떻게 그 자리를 감당하느냐에 따라서 그에게 소속된 사람들이 누리는 환경이 바뀝니다. 우리 정치제도를 대의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대표자를 세운 사람들을 통해서 정치적 의견을 펼쳐나가고 조율하는 제도죠. 우리의 실생활과 비슷한 영적원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입니다. 그의 머리되심으로 아담때문에 받게 된 정죄라는 유죄는 의로움이라는 무죄로 바뀌었습니다. 사망은 왕노릇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입장이 전혀 바뀌게 된 것입니다. 예수의 대속은 우리의 입장을 180도 전혀 다른 위치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러분 피의자와 피해자의 자리에 서보셨습니까? 저는 없지만, 자동차 사고가 날 때 조금은 느껴봅니다. 내가 사고를 당한 입장과 사고를 낸 입장은 전혀 다릅니다. 사고를 당하면 일단 당당합니다.  내가 요구할 꺼리들이 많기 때문이죠. 그러나 내가 사고를 낸 피의자면 머리를 숙이고 조용해야 합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선처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우리는 아담의 후손으로 본래 사고를 낸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통해 무죄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신의 아들이 되어서 왕노릇을 할 수 있는 위치로 바뀐 것입니다. 

요즘 주일학교 친구들과 예수의 3중직에 대해서 배우고 있고, 예수와 함께 아들된 우리가 이 3중직을 이어받게 됨을 배우고 있습니다. 예수가 가지는 제사장, 선지자, 왕이라는 직분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시며, 우리를 죄의 권세로부터 지켜주심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양자가 된 다는 것, 즉 예수와 형제가 된 다는 것은 이 직분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선지자로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며, 제사장으로 나 자신을 감사의 산 제물로 그에게 드려 내 삶의 장소를 예배의 장소로 바꿉니다. 왕으로서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자유롭고 선한 양심으로 죄와 마귀에 대항하여 싸우고 이후로는 영원히 그와 함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왕이 됩니다. 

저는 영끌하는 2030세대에게 이 3중직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무언가 살아남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 물론 살 곳이 있어야 하지요. 먹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받쳐주지 못하면 너무나도 살아가기 힘든 세대 입니다. 그런데 낙망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있는 예수가 나를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로 만들어주기 때문이고, 장차 나는 죽어 우주의 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창조 되었습니다. 18-19절을 읽어봅시다. 

18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지요. 너무나도 복잡하고, 얽혀있으며, 내 인생은 그래서 더 꼬여있는듯 합니다. 그것을 풀어줄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도 그 사람 인생이 너무나도 복잡하거든요. 나 스스로는 결코 내 인생을 책임질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가 필요합니다. 예수가 날 위해 죽어주었다는 사실은 대표자의 의로운 행위가 그 아래에 소속되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의로운 혜택을 준 것을 말합니다. 복잡한 인생에 묶여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에게 소망의 끈이 내려오니 의롭게 될 끈이었습니다. 그걸 믿고 붙잡기만 하면 예수의 의로움이 나에게 임합니다. 그의 순종이 많은 사람들을 의인으로 인도합니다. 아담은 범죄 후에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며 숨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떠셨습니까? 우리의 죄로 인해 부끄러운 십자가, 두려운 십자가, 피하고 숨고 싶은 십자가 형벌 앞에서 예수는 어떠하셨습니까? 

11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마27:11-14)

예수는 우리의 십자가 앞에서 당당히 왕임을 밝히셨고, 고발에 대답없이 담담히 계셨고, 거짓증언에 진실함이 승리할 것을 아시며 입을 다무시고 십자가를 담당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인류의 대표로 실패한 아담과 인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분 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죄가 이렇게 해결된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죄가 우리에게 주는 불안, 초조, 허망, 허탈, 분노, 갈등, 탐욕이 무죄, 의로움, 소망, 확신, 선언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는 그것을 위해 아담의 실패의 자리로 오셨습니다. 

 

3. 결론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7:6) 한편 이런 말씀도 해주셨죠.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13:44) 은혜를 모르는 이에게는 주지 말라 하시며 극단적인 표현으로 개와 돼지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소 귀에 경읽기라는 것이죠. 그러나 은혜를 아는 이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소유를 다 처분한다는 또 다른 극단적인 표현까지 하시며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어떤 영웅이 필요할까요? 힘입니까? 능력입니까? 불로장생한 자입니까? 아닙니다. 아담과 같이 "대표자"여야 했습니다. 아담과 같이 처음부터 죄가 없는 자, 그러면서도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자, 그리고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할 수 있는 대표자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신의 능력을 가지고 인간의 몸으로 오시어서 우리의 대표가 되어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첫 대표 아담은 실패하고, 두 번째 대표 아담인 예수가 오시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시작한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을 예수로 하여금 회복시키기 위해 예수가 온 것입니다. 즉 예수가 이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양자로 삼게 하시고, 제자로 삼게 하셨던 것은 "창조의 회복"에 있습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세상을 본래의 창조의 의도대로 회복하시고자 하시는 위대한 계획이 있으신 것입니다. 그 계획 안에서 이번 한주도 승리의 한 주를 보내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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