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지난 본문에서 사울과 요나단은 다윗을 기뻐하면서도,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였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자신에게 도움이 될 때에는 귀하게 여기더니, 자신보다 더 높아지는 다윗의 인기 앞에서 사울은 결국 다윗의 생명을 빼앗고자 했습니다. 다윗에게 자신의 겉옷을 주며 언약을 했던 요나단과 차이를 보였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볼 때 하나님처럼 ”마음과 중심“을 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내게 유익이 되는가가 아니라 나와 같이 하나님을 섬길 줄 아는가, 그것이 우리의 중심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에서 사울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내게 됩니다. 마음에 오로지 이기적인 것, 자기자신만을 높이고자 함을 드러냅니다. 17-18절입니다.
17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리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용기를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 하니 이는 그가 생각하기를 내 손을 그에게 대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을 그에게 대게 하리라 함이라18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누구며 이스라엘 중에 내 친속이나 내 아버지의 집이 무엇이기에 내가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 하였더니19사울의 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시기에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사울은 지난 시간에 다윗에게 창을 던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다윗에게 갑자기 ”나의 사위가 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와의 싸움을 위해 앞장서달라“고 말합니다. 군대장관에서 천부장으로 강등시켜놓고 또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 사울에게는 일관성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왜 입니까? 자신의 감정으로만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유익하다고 생각될 때에는 높였다가, 유익하지 않다라고 판단될 때에는 낮추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오늘 본문에서는 ”손을 그에게 대지 않고도 그를 처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네, 결국 치고 올라오는 다윗을 처치해야겠는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니 자신의 손으로는 할 수는 없고 전쟁터에 계속 내보낼 수록 언젠가는 죽게 될 것 아닌가라는 판단을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의 마음의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사위로 삼고자 했던 겁니다. 자신의 비일관성을 가리기 위해 이러한 조치들과 언변을 보이는 것을 보면, 사울의 정치적인 판단이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일반적인 나라와 왕의 위치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일반적인 대답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습니다. ”내가 무엇이기에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 왕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지요. 우리가 후에 알게 되겠지만, 지금 다윗이 사울을 대하는 모습은 사울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라는 믿음때문인 것을 알게 됩니다. 다윗은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으로 세우실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사울을 여전히 왕좌에 앉히시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다스림과 뜻“이 있음을 믿으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 믿음 위에서 사울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울이 창을 던져도 사울이 부르면 다시 오고, 사울이 사위로 삼아주겠다고 하더라도 사울을 높이며 자신을 낮추고 있는 것입니다. 20-24절입니다.
20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매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린지라 사울이 그 일을 좋게 여겨21스스로 이르되 내가 딸을 그에게 주어서 그에게 올무가 되게 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으로 그를 치게 하리라 하고 이에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오늘 다시 내 사위가 되리라 하니라22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명령하되 너희는 다윗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왕이 너를 기뻐하시고 모든 신하도 너를 사랑하나니 그런즉 네가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가하니라 하라23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을 다윗의 귀에 전하매 다윗이 이르되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작은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 한지라24사울의 신하들이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이러이러하게 말하더이다 하니
사울의 또다른 딸 미갈이 다윗을 연모한다는 사실을 사울이 알게 됩니다. 사울은 계속해서 어떻게든지 다윗을 옭아 매려 하고 있습니다. 이에 신하들을 동원하여 다윗을 설득하게 합니다. 그런데 다윗의 대답이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을 작은 일로 보느냐 나는 천한 사람이라”였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사울이라는 사람을 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세워주신 권위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나라의 위정자들과 가정과 기업의 권위자들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나라의 정치, 가정의 질서, 기업의 상사들을 통해 지금 나의 생활을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질서를 보고 따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다윗은 사울의 위치를 보면서 사울의 청을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울은 자신의 사위가 되는 조건과 명분으로 “블레셋”을 말합니다. 그들과 싸워서 이기고 돌아오란느 것이었죠. 특히 “포피”를 잘라오라는 명령이 특이 합니다. 25-27절입니다.
25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다윗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왕이 아무 것도 원하지 아니하고 다만 왕의 원수의 보복으로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 백 개를 원하신다 하라 하였으니 이는 사울의 생각에 다윗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하리라 함이라26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을 다윗에게 아뢰매 다윗이 왕의 사위 되는 것을 좋게 여기므로 결혼할 날이 차기 전에27다윗이 일어나서 그의 부하들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죽이고 그들의 포피를 가져다가 수대로 왕께 드려 왕의 사위가 되고자 하니 사울이 그의 딸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다윗과는 전혀 다른 생각으로 사울은 다윗을 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윗의 목숨을 빼앗을까만 생각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자신을 높이는 것과 전혀 다른 판단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써,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대리통치해야 할 자입니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공을 세운 신하이자 자신이 사위로 맞이하게 될 다윗,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된 다윗을 더 하나님의 뜻으로 다스릴 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삯꾼처럼 그의 목숨을 앗아갈 궁리만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다윗은 결국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를 잘라오게 됩니다. 사울이 약속은 했으니 사람들의 눈치를 봐서라도 다윗을 사위로 맞이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꾀에 자신이 넘어간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멀리 두려고 했던 다윗을 더 가까이 두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요. 28-29절입니다.
28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29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30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싸우러 나오면 그들이 나올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매 이에 그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니라
사울은 스스로의 꾀에 넘어집니다. 그리고 그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요? 이번일로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계심을 알게 됩니다. 결혼식을 통해서 딸이 다윗을 사랑함도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울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의 고집과 아집을 결코 쉽게 버리지 않게 됩니다. 사위이자 충신인 다윗을 더욱 더욱 두려워하게 됩니다. 대적으로 삼습니다. 이렇게 간계를 부렸던 교만한 사울은 스스로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높여왔던 다윗은 블레셋과 싸우면 싸울수록 더 높아지게 됩니다.
여러분 간계와 지혜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나의 안위와 안정, 얻을 것을 위해 부리는 것은 간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만함에서 출발합니다. 오로지 내 인생은 내가 챙겨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지요.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라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보기에 대적은 내가 처치하고 내리 깔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 밥그릇이 생기고 내가 앉을 자리가 생기기 때문이죠. 그러나 하나님 앞에 지혜가 있는 자는 절제하고 인내할 줄 압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낼 때 하나님이 푸른 초장으로 또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겸손에서 이런 판단과 결정이 나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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