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록된 미래
본문 : 빌 4장 6-7절
1. 서론
1) 예화
요즘 뉴스나 국회에서 등장할 정도로 화제인 드라마 더글로리는 우리가 익히 아는 신사의 품격, 도깨비, 미스터 선샤인 등을 만든 김은숙 작가의 작품입니다. 유튜브에는 그녀의 치밀한 짜임새 구성을 재해석하는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있을 정도죠. 이런 짜임새로 따지자면 영화 “나홀로집에”를 빼놓을 수 없죠. 한명의 어린아이가 생활도구들로 성인남성 강도 2명을 무찌르는 모습에 우리는 재미와 통쾌함을 매년 또 보면서도 느끼게 됩니다.
현실에서도 이런 짜임새를 실력으로 인정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23세 이하 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을 겸임하였고, 유소년 시스템에도 조언을 아까지 않음으로써 베트남 축구의 구성력을 짜임새있게 만들어 5년만에 동남아에서 가장 축구강국으로 세웠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삼성전자는 휘거나 접어도 되는 핸드폰을 짜임새있게 만들어냄으로써, 지금까지도 그 어떤 회사보다도 가장 탁월한 기술력으로 세계에서 압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렇게 짜임새있는 것들을 우리는 여러방면에서 탁월한 평가를 내리곤 합니다.
2) 주제
신앙에서 짜임새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성공한 인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예수는 이 땅에 인간으로 일부러 오셔서 판도를 뒤짚으셨고, 우리 입에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 나오게 하셨고, 예수를 따라 우리는 사탄을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에서는 “나의 짜임새가 아니라 하나님의 짜임새”를 믿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짜임새를 만들어 내는 것도 우리 일생에 중요한 성공요소이겠지만, 이 세상 살아가면서 무엇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짜임새로 미리 만들어진 인생"으로써 이미 성공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이 짜임새를 확인하는 겁니다. 떡밥회수라고 하지요. 네, 구약성경에서 예언했고, 신약성경에서 예언된 약속들이 이뤄지는지 내 인생에서 확인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어떻게 아무것도 없이 믿겠습니까? 아무것도 없는데 믿고 계시다구요? 더 무서운 겁니다. 혹은 다른 것때문에 이 자리에 계십니까? 더 무섭습니다. 우리가 앉아있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님의 짜임새, 약속을 반드시 이뤄내시고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때문에 이 자리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3) 본문잇기
이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예수가 3가지 시험에서 동일하게 언급한 표현이 있습니다. "기록되었으되" 네, 예수는 하나님이 짜임새있게 마련해놓으신 “기록해놓으신 구약의 길”을 걸으시면서 승리를 만드셨고, 우리에게 안겨주셨습니다. 우리 목사님께서는 창조경륜이라고 표현하셨지요. 하나님이 계획하시며 만드신 것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성경 구약과 신약을 “약-하나님의 약속”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지는 것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믿음을 지키며 한발걸음씩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2. 본론
1) 소유에 너무나도 약한 우리,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사단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반대부터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겠습니다. 그 대상은 바로 "사단과 우리"에게 있을 겁니다. 사단과 우리야말로 일관성, 신실함, 성취와 같은 짜임새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 특징이 창세기에서 사단과 하와의 대화에서 잘 드러납니다.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 뱀은 여기서 두 가지를 말합니다. 첫번째 “먹는 날에는“입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바와 같이 사단이 하와에게 “소유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됩니다. 무언가를 가짐으로써 더 높은 존재가 되어 안정을 취하라는 사단의 유혹방식은 하와에게나 예수에게나 동일한 방식이었습니다. 먹는 것은 우리가 소유하는 것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것이죠.
두 번째로 사단은 하와에게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어 당신과 동등된 위치에 오를까 걱정하는 존재라고 소개하며, 하와에게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오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과 하와”라는 사이의 질서있고 짜임새 있는 관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흙뿐인 하와를 자녀로 또 왕노릇할 자로 삼고자 ”창조계획(경륜)“을 마련해놓으셨었습니다. 그런데 하와라는 인류의 시초는 눈에 보이는 유혹과 그 다음에 주어질 높은 자리라는 유혹에 넘어가고야만 것이지요.
여러분, 이 시험방식이 누구에게 한 것과 비슷합니까? 예수님에게였습니다. 사단은 예수님에게도 돌을 떡으로 바꿔 먹으라는 물질,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져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자리를 확인하라고 말했었죠. 사단은 태초에 만들어진 인류의 시초에게도, 이 땅에 구원자로 임한 예수님에게도 “소유함으로써 높아지라”는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이면서 취약한 부분을 공략했던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단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나님과 직접계약을 맺은 아담은 사단이 아니라 하와의 유혹에 너무나도 쉽게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물질과 자리에 너무나도 연약하단 사실입니다.
여러분, 선악과는 다른 나무와 별반다를바 없는 나무와 열매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군가 언급하면 그것만 보이는 것이지요.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습니다. 그 나무를 보았는데 "먹음지, 보암직, 탐스러운" 나무였습니다. 무슨말입니까? 내가 더 중요한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누군가의 언급에 저것만 가지면 내 위치, 심정, 생각, 마음이 "한층 안정될 것"같다는 유혹은 얼마든지 우리에게도 다가올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짜임새 있는 인생이 앞으로 펼쳐질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눈 앞에 있는 것을 쟁취하지 않으면 내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될 것이라는 조급함에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넘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필요한 물질과 자리가 있습니다. 어떤 메시지를 통해서 "안정감"을 누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하나님을 그것들로 대체하라고 하니까 문제가 됩니다. 사단은 신앙이 밥먹여주는 것 아니라고 말합니다. 교회가 당신의 인생을 책임져주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적당히 다니고, 적당히 믿고, 적당히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 좀 적당히 믿으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더 중요한 "다른 무언가를 붙잡아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높아질 수 있다"고 우리에게 속삭이는 것이지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자존할 수 있는 존재”, 선악을 스스로 분별하고, 스스로 쟁취하고, 스스로 높아져, 스스로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존재가 된다고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그렇게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져 결국에는 불신앙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2) 예수가 뛰어든 인생 (창조경륜 - 하나님의 계획, 예언, 경륜)
그렇다면 예수는 어떻게 사단을 이긴 것입니까? 예수는 시험당시에도 배고픈 상황에서도 능력이 있음에도 가지지 않고 먹지 않으셨고, 지금 당장이라도 주변의 도움을 받아 쉼을 얻으며 앉고 싶지만 시험대에서 내려오시고 인정받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무언가 가지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방식은 예수에게 마지막시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십자가 사형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먹음으로써 고통을 완하시킬 수 있음에도 "34쓸개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 하"(마27)십니다. 먹지 않으셨죠. 당시 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총독 빌라도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음에도 "9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눅23)하십니다. 광야시험때와 같이 먹을 수 있는데 먹지 않으시고, 안정을 위한 자리를 앉으실 수 있는데도 그 자리에 앉지 않으십니다. "20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8) 예수도 쉬고 싶으셨고, 눕고 싶으셨던 인간이셨지만, 예수는 아담과 하와와 다른 인생방식을 향해 가셨던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기록되었으되“라는 “하나님이 이미 계획하신 창조경륜과 구속계획”에 따라 순종하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예수는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내 안에 이미 “확실한 계약서”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확실한 미래를 바라보며 살라고 말해주는 겁니다. 사단은 현재를 바라보며 가져서 올라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예수는 이미 가진 확실한 미래를 보면서 현재를 살라고 말해주는 겁니다.
우리가 살아갈 시간들에는 4가지 감정이 반드시 있습니다. 희노애락.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이 반드시 있을텐데 우리는 우리의 가족이나 자녀에게 희와 락만을 주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들을 대하는 태도를 알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와 성경의 위인들은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미래”로 희노애락을 대하며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또 자신을 죽이려든 형들 앞에서도 “선한 미래를 만드시는 하나님”을 고백했으며,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타지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기다렸으며, 예수는 하늘에서 내려와 이 땅에서 30년이라는 고난의 인생을 살다 사형을 받으셨습니다. 성경은 이 슬픔과 분노가 일어날 고난 뒤에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의 때가 온다고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중에서는 바울이 가장 탁월하게 말해준듯 합니다.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 여기서 바울의 말을 유심히 보십시오. 바울은 "구할 것을 아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구하며 살아야 근심, 걱정, 슬픔의 시간과 순간을 바울도 인정합니다. 염려와 걱정을 어떻게 해결하라고 합니까? 사단은 가지기 위해서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바울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즉 나의 염려와 걱정은 이미 하나님께서 미래에 이미 해결해놓으셨기에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내 인생에서 무엇을 염려하고 걱정할지 이미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나의 미래에 모두 해결책을 세워놓으셨습니다. 7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 내가 구한 것을 주실 수도 또 안주실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마지막에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이 내가 평안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 간단하게 말씀하셨죠.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6:8)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준비하시는 분임을 모두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는 사단을 상대하면서 “기록되었으되”라고 말하며,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계획하시고 역사하시고 길을 열어놓으셨다고 고백하시며 승리를 쟁취하셨고, 우리에게 이방법으로 승리해내라고 “첫 사역”으로 이뤄내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생의 계획, 미래, 이뤄질 일들임을 확인하셔야 하겠습니다.
이제 다음주면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담임목사님께서 교제방에 말씀해주신 것처럼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은, 내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네 인생에 고난을 주셨고, 예수도 인간이 되셔서 고난에 뛰어드셨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그 고난에 뛰어드는 것이 "신자다운 고난에 참여하는 법"이겠습니다. 그것이 신자의 미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혹시나 여러분이 그리는 미래에 "물질과 자리라는 소유의 미래"가 더 크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와 방향이 다르다는 사실을 꼭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일에 우리는 성찬식에 참여하며 "예수님이 고난당하신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며 주님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빵과 포도주를 먹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의한다면, 예수님의 미래에 뛰어들기 원한다면, 우리는 성찬할 때에 가장 큰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 가운데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서 나타나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라며 이번 한주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결론
두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오타니라는 일본 야구선수입니다. 그 선수가 자기계발계에서 정말 유명한 것은 철두철미한 자기관리법입니다. 세분화시킨 자기관리표와 그에 맞춰서 커리어를 쌓아올린 그의 인생을 두고 "누구나 노력하면 되는구나!"라는 가능성을 보게 해주었습니다. 특히나 그의 계획표에 27살에 야구월드컵 대표와 최우수선수가 되는 목표가 있었는데, 그것을 이번에 실현시키면서 그의 자기계발에 대해 언론들이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이지선 이화여대교수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실텐데 교통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어 손끝부터 얼굴, 머리까지 성한데가 하나 없는 분입니다. 진행자가 '가해자에게 사과는 받으셨냐?'라는 질문에 이런 답변을 하시더군요. "찾아오지 않았고 사과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오히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는 것에 집중할 힘을 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사고를 당한 피해자로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사고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사고로 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은 것도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오타니 선수의 업적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두 사람의 인생 중 하나를 따라가야 한다면 우리가 보고 따라가야 할 인생이 과연 무엇인가? 과연 우리는 오타니 선수처럼 될 가능성이 많은가, 아니면 이지선교수처럼 고난을 당할 가능성이 많겠는가? 인류전체에게 어떤 인생을 보고 따라가야 한다고 말할 때에 우리자녀에게 어떤 인생을 소개시켜주고 싶으십니까? 라는 질문 속에서 우리는 쉽게 답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올라가는 인생도 우리에게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이자 중심에는 고난을 대하는 자세, 고난에 의미가 있으며 고난 뒤에 하나님이 계시며 고난을 너머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있음을 믿으며 인생의 고난이라는 "하나님의 짜임새"를 믿으며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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