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공과 성취사이
본문 : 마태복음 4장 8-11절
1. 서론
1) 예화
제가 키우는 선인장 하나가 있었는데 죽고 말았습니다. 알고보니 물을 너무 많이 줘서 뿌리까지 물러져있더군요. 아시다시피 선인장도 꽃을 피우는데, 제 것은 꽃도 못피우고 죽었습니다. 그런 죽은 선인장에게 "물을 조금만 먹었어야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물이 잘 빠지지 않는 화분과 흙을 주고서 자주 물을 준 제 탓이었습니다. 선인장은 자신이 할 바대로 물을 흡수할 뿐이었습니다.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 죄 뿐이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이 선인장처럼 생각할 순 없을까요? 물론 열심히 살아야겠지만,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까지 우리는 우리의 걱정으로 여기며 나의 부족한 노력을 탓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사는 것보다, 내가 변경할 수 없는 환경을 향해서 "깨부수고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에 가득 차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못하는 나를 향해 "나의 탓"이라고 내모는 것 같습니다.
2) 이룬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
그런 점에서 오늘은 "성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아야겠습니다. 부모를 잃은 고아가 고아원을 졸업하고 홀로 배달일을 하며 겨우 모은 재정으로 아파트 한채를 대출을 껴서 구매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은 대치동에서 고급교육을 받으면서 명문대, 대기업에 차례로 들어가 빌딩을 구매하였습니다. 과연 두 사람의 성공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특히 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요즘 큐티하고 있는 사무엘상에서 너무나도 유명하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줍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순종이 무엇입니까? 나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 화분에 넘치는 것을 향해서 나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화분 안에서 뿌리내리고 꽃을 피우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이 파란꽃을 피웠다고 나도 파란 꽃을 피워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봄에 꽃을 피운다고 나도 봄에 피워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꽃의 색갈, 개화시기, 꽃의 모향대로 피우면 되는 것이지요. 그 화분은 하나님이 책임지시니까요. 그것을 예수님은 “자기십자가 또는 잔”, 바울은 “사명”, 베드로는 “장막”이라고 표현했지요. 그러나 세상은 계속해서 우리를 채찍질하며 “더 노력하고, 잠을 덜 자며, 가족과 시간을 줄이고, 하나님과 교회섬기는 것은 나중에 하며” 일단 더 성공하라고 말해줍니다. 과연 우리는 이런 공격을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3) 사단은 이룬 것으로 공격하지만 예수는 이기셨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시험 마지막 3번째를 다루게 될 것입니다. 사단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를 향해 그간 부르던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말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흔들려고 하지도 않고, 초능력을 사용하여 인류의 대표자가 되는 것을 흔들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노력해서 위에 올라야 의미있는 인생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해 노력하는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이라고 말씀하시며 마침내 마귀를 쫓아보내시게 됩니다. 이로써 인류는 예수를 따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격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활로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 마지막 시험을 우리의 것으로 가짐으로써 이번 한주도 승리하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궁지로 다시 모는 사단
마귀의 공격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8-9절입니다. "8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9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세번째 시험에서 사단은 예수를 인정하는 척,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는 척해왔지만 드디어 자신의 성향, 속내, 본질이 드러내게 됩니다. 첫째, 그는 “높아질 수 있는 가장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갑니다. 그리고 두 번째 “엎드려 경배하라고 요구”합니다. 이 말은 “경외하다”라는 말의 실천적 표현입니다. 경외는 두려워하며 사랑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요구해서 되는 것이 아니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권위와 존중에서 우러나와 스스로 엎드려 경배하게 되는 존엄자를 향한 감정이자 행동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그것을 “억지로 만들어 자신을 높이라”고 요구합니다. 세번째로, 이런 거래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매개물로 “만국이라는 물질과 영광이라는 자리”를 제시합니다. 물질과 자리를 가짐으로써 높아질 수 있다는 사단의 생각을 드러내게 되지요. 이것을 종합해보면, 사단의 생각은 “생애의 목표는 물질과 인정을 통해서 높아질 수 있는 한 가장 높아지는 것”이라고 정리해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사단의 생각에서 특히 세번째, “물질과 인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성과”에 대해서 오늘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귀는 예수에게 “천하만국과 영광”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 천하만국이라는 물질과 많은 이들이 우러러 보는 영광있는 높은 자리를 보여주며 이것들을 다 주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한 사탄의 속내를 조금 더 생각해보자면 "너는 이룬 것이 하나도 없지 않느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고, 가장 가난한 갈릴리 마을에서 자랐으며, 예루살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성전과 가까이 살지도 못하지 않았냐?"라고 말하며, "이것들을 다 너에게 줄테니, 진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보아라!"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좀 더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마귀는 예수에게 "무언가를 주겠으니 엎드리라"고 합니다. 그 말은 "너는 인생에서 이룬 것이 없으니"라는 생각을 전제하게 합니다. 그래서 좀 더 높아지고, 좀 더 가지고, 좀 더 이룸으로써 높아져야 하지 않겠냐고 예수를 자꾸 몰아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현대인들에게 특히나 중요한 대목입니다. 우리의 좋은 스승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소유적 존재는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하기 때문에, 가질 수 없는 존재나 실체가 없는 사랑 같은 것에 대해서도 소유하려고 한다. 결국 행복할 수 없다. 가질 수 없어서 행복할 수 없고, 하나를 더 가졌다고 해도 더 가진 사람을 만나면 상대적으로 덜 가졌기 때문에 불행할 수 밖에 없다" 과연 마귀가 말하는 방식, 즉 소유함으로써 살아가는 방식에 우리에게 더이상 소망이 있는지 우리를 돌아볼 수 밖에 없게끔 하는 탁월한 통찰력입니다. 타인의 사랑, 조직의 인정, 사회에서의 명예, 나의 자산, 자녀의 성공, 쥘 수 있는 무언가를 소유함으로써 "나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라고 우리를 몰아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나 나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질문까지 던져보셔야 합니다. “만약 내 소유가 나에게 없다면, 나는 홀로 누구인가? 그것이 없을 때 과연 나는 누구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여러분의 사회적 지위가 빠진채로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이뤄놓은 재산을 빼면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을 찾아오는 사람을 빼면 여러분은 과연 누구입니까? 발가벗은 채로 하나님 앞에 선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과연 우리는 하나님께 무얼 보여드릴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이 광야에서 다 벌거벗어진 채로 야위여있는 내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 우리는 무엇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까? 우리는 죽고나면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귀는 “손에 쥘 것들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마냥” 우리를 속이지만, 우리는 숨을 잃고 생명력을 잃어 시체가 되면 노잣돈도 챙겨갈 수 없는 흙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속삭임은 너무나도 거짓이 자명한 것입니다. 이것에 우리가 결코 속아서는 안되겠습니다.
2) 존재하는 법
그렇다면 예수는 어떻게 우리에게 답을 제시해주고 있습니까? 사단이 인생의 의미를 손에 쥘 수 있는 만국의 물질들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영광의 자리라고 말해줬는데, 그것이 거짓말이라면 예수는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해줍니까? 예수의 답을 들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대답으로 사탄이 물러가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결정적인 해답이 될 것입니다. 10절입니다. "10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기록되었다는 표현은 신명기 6장 10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씀을 “경배하고 섬기라”는 행동으로 풀어서 설명해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탄이 인생에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들 대신에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포인트를 알려주시는 것이지요.
경외 -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의 마음의 중심에 어떤 감정으로 말하십니까? 경외함입니다. 경외라는 말은 두려워하며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정말 존경하는 이 시대의 멘토가 있으십니까? 그 분을 바라다가 만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일주일전부터 무엇을 질문해야 할런지, 옷은 무엇을 입고 갈지, 이발을 지난 주에 했어도 한 번 더하며 나 자신을 다듬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두려움때문이 아닙니다. 두렵다면 전혀 다른 행동양상을 보이겠지요. 사랑하면서도 존중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이런 감정을 중심으로 예수님은 사단의 질문에 대답하신 겁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다만 그를 경배하고 섬기라”고 말이죠.
다만 - 사단은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배반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자신도 섬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인류에게 주셨는데, 첫계명이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과 사이에서 결코 “삼각관계”를 만들지 말라는 분명한 말씀이셨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1계명을 바라보는 자는 다른 것을 주인으로 삼지 않겠습니다.
경배섬김 - 예수님은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라는 정확한 행동지침으로 “경외감이라는 감정의 표현법”을 제시하셨습니다. 사단이 경배하라는 방향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하나님을 향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셨죠. 게다가 사단은 자신에게 “엎드리”라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다만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씀을 제시하셨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강조드리지만 예수님은 이것에 “인생에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단이 말하는 만국이라는 물질과 영광이라는 자리로 인생의 의미를 채우라는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예배하고 섬김”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즉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인생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될 수 없는 역설 중에 역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신 역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저에게 중요한 질문은 “교회가 부흥되지 않아도 나는 천국에서 하나님께 설 수 있는가?” 였습니다. 이것은 제가 신학을 공부하며 교회사역을 할 때부터 제 꼬리에 항상 붙어있는 것이었고, 저를 초조하게 만든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작년부터 지역주민들을 섬기고, 비신자들을 접대하고, 그들을 위해서 살아갔을 때 천국에서 하나님 앞에 설 자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이번 주에 한 목사님과 나누는데, “하나님 자녀로 누리는 기쁨”이라고 하시더군요. 네,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써 사랑하고 섬기다 하나님께로 간다는 확신만큼,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없더군요. 물론 중간중간 경제적인 문제, 인격적인 문제, 지역주민과의 갈등 등 문제가 없을 수는 없더군요. 그러나 그 장애물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이겨내가는 인생을 살아갈 수록, ’아, 하나님이 나를 돌보시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이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인생을 누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삶의 현장으로
“11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제가 바랍니다. 마귀의 시험이 11절로 마무리되어집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마귀가 떠나간 것은 예수 곁을 잠시만 떠난 것이지 그는 기회를 틈타 계속해서 예수의 “인류의 대표자 사역”을 방해할 것이고,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로 맺은 관계”가 깨지도록 예수를 공격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그래서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탄인 옛 뱀을 잡아서 천년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봉인하여 천년이 찰 때까지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 반드시 잠깐 풀려나게 될 것이다”(계20:2-3) 예수가 이 땅에 오시어서 그를 가둬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를 다 이기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싸울 거리가 있게 하셨고, 또 마지막 날에 성도들이 함께 시험받으며 믿음으로 이겨낼 순간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시험을 받고, 죽지 않고 마지막날이 되어도 시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시험을 향해서 “오늘의 시험”을 연습삼아 이겨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가 이기신 방법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격, 예수가 판도를 뒤짚어 놓으셨다는 사실, 예수가 우리를 대표해서 마귀를 이긴 선례를 남겨놓으셨다는 사실, 하나님의 입의 모든 말씀이 내 입에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 물질을 다스릴 수 있다는 사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만으로도 하나님께 칭찬받기에 충분하다는 사실. 그것들을 내 상황, 관계, 문제, 장애물 곳곳에 적용해보면 “내가 승리할 수 있는 수 많은 영역”들이 보이고, “천국으로 만들 수 많은 영역”이 있다는 것을 찾게 됩니다.
여러분, 교회가 부흥하는 길은 예수가 드러나는 길 밖에 없다는 사실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예수를 드러낼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예수를 나타내지 못하도록 합니다. 예수가 우리의 대표자가 되지 못하게끔 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마귀는 계속해서 가정을 깨고, 만남을 깨고,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모이지 못하게 합니다. 서로 만나면 부딪히니 만나지 말자고, 속삭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깨려고 했던 그였고, 예수와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했던 그였기에, 사단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향해 나아온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것,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 교우와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우리가 최선을 다했을 때“ 우리는 자연스레 부흥의 가도를 달리게 될 줄 믿습니다. 천사들이 예수의 수종을 들었듯이, 예수의 한 지체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지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결론
여러분. 돈으로 시계를 살 순 있지만 시간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집을 살 순 있지만 가정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의사를 살 수는 있지만 건강을 살 수 없으며, 음식을 살 수는 있지만 식욕을 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들을 주셨습니다. 그 일상에서 우리는 “성취된 삶”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며 사랑하러 가는 것이겠습니다. 내 존재를 더 드러내기 위해 가져야 할 것들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러 나아가다 보니 높아지는 인생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주제설교 > 절기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년 청년 교사주일 (1) | 2023.05.14 |
---|---|
사순절(5)_기록된 미래_빌4:6-7 (1) | 2023.03.26 |
사순절(3) 불평과 확신사이 (0) | 2023.03.11 |
사순절(2) 하나님의 입 나의 입 (0) | 2023.03.05 |
사순절(1)예수부활 내부활 (0) | 2023.02.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