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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3) 불평과 확신사이

by 우루사야 2023. 3. 11.

본문 : 마태복음 4 5-7

제목 : 불평과 확신 사이

1.
서론
1)
불평하는 이유
걱정과 고민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합니다. 미디어나 SNS 보면 걱정하게 할까요 고민하게 할까요? , 걱정하게 만듭니다. 최근에 중에 종이호일을 쓰면 안된다고 합니다. 미세플라스틱이 나온다고 하네요. 참치캔은 따면 몇분 정도 놔둬야 벤젠이라는 발암물질이 날아간다고 합니다. 현대차 공채가 뜨니 현대차 적성검사 교재가 나오기 시작한다는 뉴스가 나오고, 우리집 근처 어떤 아파트가 팔리기 시작한다고들 합니다. 그런 것들이 다시 나를 걱정합니다. 아니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그런 정보들을 스스로가 걱정으로 만들어내는듯 합니다. 걱정거리들에 휩쌓일때면, 걱정정보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 내가 아프거나, 자녀와 부모를 아프게 만든 나쁜 부모나 불효자가 같습니다. 좋은 시기를 놓치게 만들거나, 나중에 후회하는 삶을 만들 같습니다. 

걱정에 대해서 누군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걱정 40% 절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30%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고, 20% 너무나도 사소한 것들이고, 5% 너무나도 커서 힘으로 어찌할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걱정해야 하는 것은 나머지 5% 밖에 되지 않습니다". . 우리는 어떤 정보에 대해서 걱정할 것이 아니라 "고민" 해야 합니다. 1달러의 주인공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신의 할일에 대해서 매일 고민할 있는 툴을 만들어 기록하기로 유명했죠.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해야 , 중요하지만 뒤에 해도 되는 , 사소하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할일로 말이죠. 그렇습니다. 걱정할 시간에 나의 머리속을 정리하고, 진짜 걱정을 가려내야 하며, 걱정들을 어떤 우선순위로 해야 할지에 대해서 분별하고 집중해야 합니다. 진짜 고민을 해야 합니다.  

 

2) 주제
고민이라는 말을 한자의 뜻으로 풀어보면 " , 답답할 " 마음이 쓰이고 답답한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걱정하기 전에 걱정거리들 중에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마음에서 쓰디쓴 시간, 답답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날의 괴로움은 날로 족하니라"(6:34) 오늘의 고민으로도 우리가 충분하다는 것이죠. 오늘 생각해야 것들을 하지 않은채, 내일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민하는 법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합니다.

3)
본문잇기 

우리가 계속해서 예수님의 승리가 나의 승리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대표자로 세워지자 마자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영적세계를 뒤짚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따르는 모든 이들은 뒤바낀 영적세계에서 이제 종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왕노릇"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나의 힘으로 물질을 통해 높아지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이 입으로 선언되게 하여 물질세계를 다스릴 있는 자가 되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두번째 시험에서 마귀는 예수님의 마음을 뒤흔들려고 합니다. 첫번째 시험이 배고픈 예수님의 굶주린 육신이었다면, 이번에는 불안할 있는 신뢰에 대해서 의문점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시험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이기셔서, 우리가 따라할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지켜낼 있는 믿습니다. 

2. 본론

1) 믿지 못하면 불평하게 됩니다. 

먼저 5-6a절입니다. "5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마귀의 시험의 본질은 "스스로 높아져서 삶의 연속성을 가지라" 것이었습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마귀는 아담이후로 우리 인류에게 계속해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뺀채로, 스스로의 능력으로 높아지라고 유혹합니다. 번째 마귀시험도 똑같은 원리입니다.
마귀는 예수를 성전의 가장 높은 곳으로 데려갑니다. 여기는 성전 가장 내부가 아니라 외벽의 가장 높은 곳입니다. 여기는 나팔부는 곳으로 사람들에게 한주의 시작, 한달의 시작, 한연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었습니다. 종국에는 "메시야가 나팔을 , 새시대를 알릴 "이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새시대를 알리는 나팔부는 곳에서 떨어질 ,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초능력으로 죽지 않는다면 유대인들이 따르지 않겠냐" 시험입니다. 여기에는 가지의 시험이 숨어있습니다. 예수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시험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뒤흔들려고 하는 것이 첫번째입니다. 번째는, 예수가 땅에 떨어져 죽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초능력으로 살아남으로써 초능력이 없는 인간들이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 터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죠.

이런 마귀의 시험은 예수님을 제외하면 이스라엘 전체에 먹히던 전략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오시던 당시는 로마제국으로부터 굉장한 핍박을 받던 때로 항상 두려움에 차있을 밖에 없던 시대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성과 성전 모두 무너지고 말지요. 이후로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현대에 와서야 다시 나라를 세우다시피 정도로 2000년동안 나라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기원전부터 지금 현대까지" 같은 두려움과 불평을 가지고 있습니다. ' 메시야는 오지 않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는가?’ 그렇습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불평하기 마련이고, 불평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게 만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메시야는 이미 왔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때부터 그들은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두려움에 휩쌓인 나머지 "나의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큐티하고 있는 사무엘상에서 이스라엘은 사울을 바라보는 똑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항상 이방민족으로부터 두려워하니, 자신들이 원하는 왕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사울이 왕으로 뽑혀도 불평하는 것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하나님의 영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니 그제서야 하나님이 세운 왕으로 인정했지요. 그런데 문제는 예수도 사울처럼 다윗처럼 이방민족을 내쫓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때로는 인정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법정과 로마군에게 죽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가 나의 기준에 맞지 않으니 메시야로 보이지 않는 "이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그런 인간의 속성을 알고 예수에게 이렇게 시험을 이어서 합니다. "6b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사단을 위장한 천사라고도 성경은 표현하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척하지만 사실 시편91편의 말씀에서 중요한 단어를 빼놓고 말합니다. "사자들을 명하시니 모든 길에서" 모든 길에서를 빼놓습니다. 여기서 모든 길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본래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의 모든 길입니다. 하나님을 벗어나서의 길까지 하나님은 지켜주지 않으십니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기준" 맞는 메시야를 내놓지 않으시냐고 하나님을 계속해서 시험하는 것이겠죠. 나아가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를 하는 우리도 " 기준에 맞는 응답" 내놓지 않으시냐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으로 사단마귀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을 떼놓는 전략으로 다가옴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믿음은 확신을 가져다 줍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어떻게 우리가 이런 시험에서 이길 길을 열어주셨습니까? 본문 7절입니다. "7예수께서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것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시킬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3가지 우리가 기억해야 승리포인트가 있습니다.

(1) 시험하지 말라 - 시험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자주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실 때도 있었고, 기드온이 하나님께 표징을 구하며 하나님의 의도를 묻고자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시험과 사단의 시험의 본질적인 차이점은 "문맥"에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실 때에 그의 믿음을 이미 아시고 계신 상태에서, 아브라함이 믿음을 스스로 시험해볼 있도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 헌신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믿음을 키워달라는 의미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지금 하나님을 믿지 못할 광야와 40 금식, 사단의 시험이라는 3 악조건에서 "하나님은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라는 의도를 "성경을 왜곡"하면서 시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격이 전혀 다른 시험인 것이지요.
요즘 넷플릭스에서 JMS 비롯한 여러 이단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어머니가 이단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어린 아들을 잃고서 그것이 후회가 되어 인터뷰에서 자신의 뺨을 때리며 분통을 터뜨리며 말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그들이 맞는 같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뒤돌아보니 자신이 아들도 죽고, 그리고 그들이 무죄라고 변호까지 해준 것에 있어서 평생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신앙은 결코 "두려움, 시기, 분노, 미련함, 무질서, 비인격, 비합리적, 사치, 독단적, 음란함"으로 이뤄져서는 안됩니다. 이단들은 성경을 왜곡해서 이런 죄악스러운 악한 품성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로지 성령의 성품을 따라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하며 이뤄져야 합니다. 그럴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어렵고 힘든 인생길에서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2) 너의 하나님(너희) -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라고 하지 않으시고 "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해주십니다.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믿음을 붙들고 있을 우리 하나님은 어느샌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나의 하나님", "나의 생활을 책임지고 계셨던 주인되시는 하나님"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계심으로써, 우리가 따라할 있게 해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하나님이 주인되심으로써 내가 의심하거나 시험할 필요가 없으며, 충성함으로 기다리면 "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3) 기록되었으되 - 예수님은 다시 한번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말씀해주십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따라 승리하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성령받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무찌르심으로써, 우리는 초능력이 아니라 "인간으로 승리하신 예수를 따라 살아갈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희 아들과 자기 전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삼위하나님 고백입니다. 저희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해도 도저히 안되더군요. 아동학자가 잔소리보다 "정신" 가르치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해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구해주신 하나님,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과 고백이 우리의 입으로 나올 때에 우리는 모든 상황 속에서 승리할 있는 믿습니다. 

3) 내가 일을 하세요. 

워렌버핏의 인터뷰입니다. 질문이 천하의 워렌버핏도 매일 주식실황을 보냐는 것이었죠. 그의 대답은 "예를 들어 옥수수 농장에 투자를 했다고 생각해볼까요? 여러분은 매일 옥수수가 자라는지 확인하지 않을 겁니다. 빨리 자라라고 응원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매년 곡물가격에 변동이 있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어떤 해는 많이 나오고 어떤 해는 적게 나옵니다. 곡물의 경제전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수년동안 농장이 꾸준히 관리되는 것이지요. 한해가 365, 20년이면 7000일입니다. 매일 매년 다른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투자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에 갈까 못갈까에 대해서 걱정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나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변동과 변화를 쫓아가려고 아둥바둥 댈것이 아니라, 옆집 아이가 학원에 다니고 있을 자식이 핸드폰 보고 있는 현실만 것이 아니라, 승진하여 연봉이 대폭 상승된 남의 배우자를 바라보며 배우자를 바라볼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수많은 걱정 속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을 쓰고 답답할 정도로 고민하며 하나님께 가지고 나올 있어야 하겠습니다. 힘으로 어쩔 없고, 이미 일어난 일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것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나의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믿으며, 내가 해야 일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성예술작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여러모로 인생에 굴곡이 많았는데, 우선 세계2차대전을 겪었고, 부모는 이혼했으며, 부모의 죽음을 모두 경험했으며, 특히 어머니는 극단적인 죽음을 택했습니다. 자신도 이혼을 했고, 작가로서 여러가지 성차별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게 됩니다. 한대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제 그만해, 생각하는 , 걱정하는 , 미리 불안해하는 , 망설이고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상처받는 , 쉬운 길만 찾아서 요행을 바라는 , 낑낑대고 욕숨 부리고 혼란스러워하고 가려워하고 긁고 머뭇거리고 우왕좌왕하고, 투덜거리고, 확대해석하고, 휘청거리고, 조작하고, 횡설수설하고, 도박하고, 구르고, 연해지고, 서로 밀치고, 거저먹고, 깨뜨리고, 욕하고, 칭얼거리고, 신음하고, 불평하고, 분석하고, 말똥같은 소리하고, 사소한 일로 따지고, 꼬투리 잡고, 질질 짜고, 일에 참견하고, 쓸데 없는 짓하고, 남에게 피해주고, 손가락질 하고, 쥐구멍에 숨고, 기회만 엿보고, 주춤거리고, 도끼눈으로 째려보고, 아첨하고, 찾아 헤매고, 앉아서 쉬고, 이름에 먹칠하고, 스스로 갉아먹고, 갉아먹고, 갉아먹는 그만해. 그리고 그냥 " 여성은 앞으로 예술의 장르를 만들어낼만큼 영향력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3.
결론
예수님은 땅에 오셔서 무엇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성전 높은 곳에서 떨어져 초능력으로 또는 천사들을 통해서 단번에 메시야로 등극되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사셨고, 섬기셨고, 죽으셨습니다. 살다가 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높은 곳에서 단번에 높아지려고 하지 말고, 다시 그냥 내려오라고, 계단으로 내려오라고. 그리고 너의 삶을 살라고. 나를 따라서 섬기며, 사랑하며, 그냥 나누며 살아가라고 말이죠.
우리는 내일, 다음주, 다음달, 내년을 바라보느라 걱정과 불평으로 가득차 오늘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너무 멀리 보느라, 멀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느라, 다가오는 두려움에 갇혀있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오늘 나에게 주이진 삶을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가장 확실하고 확인이 가능한 것.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내가 지금 이 이 땅에 서있는 것, 그런 나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구하러 예수가 이 땅에 오셨다는 것, 그 예수를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이 교회, 복음, 교우들을 통해 증거해주고 계시다는 것. 그것을 붙잡고 이번 한주도 확신으로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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