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의 아내, 교회
- 서론
1) 예화
한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거기서 자신의 일화를 소개하는데 자신의 딸이 만날 남자친구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 그 무엇보다도 "내 딸을 연민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연민이 동정과 다른 것은 동정은 위에서 내려다보며 불쌍히 여기는 것이라면, 연민은 같이 고통을 당하는 입장에서 함께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함께 인생살이를 이끌고 나가는데 있어서 자신의 딸을 향해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봐주고 돕고 손잡아 주는 이성친구라면 최고의 기준이 되겠죠.
연민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죠. 라틴어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고통이라는 말 pati와 함께라는 말 com이 결합된 단어입니다. 영어로는 compassion으로 번역되죠. 고통에 대해 안타깝게 여기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공감의 마음이라는 사전적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누가 떠오르십니까? 네. 예수님이 생각나지요. 예수님은 저 하늘에서 우리를 향해 동정심만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함께 고통받으시며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됨"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위에서 언급드린 동정은 "우월적 위치에서 불쌍함을 느끼는 감정과 생각"입니다.
2) 주제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향해서 격리된 공간과 우월적 위치에서 내려다 보시며 향하고 계시지 않으십니다. 우리 곁에 오셔서 함께 하시며 하나가 되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해서 "임마누엘"이라며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라고 표현했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는 "둘셋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 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으며, 신약저자 중 한명은 히브리서에서 예수에 대해 설명하기를 "우리의 연약한 사정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신 분"이며 이기신 분(히4:15, 공동번역)이라고까지 설명해줍니다. 마침내 삼위일체 중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임하시어 우리 몸을 "성전"으로 삼고 함께 계시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는 신은 "우리와 또 나와 하나되는 것을 매우 중요시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신은 연민의 신이며, 동행의 신이며, 하나됨의 신입니다.
3) 본론잇기
오늘 본문 18절입니다. "18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보면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에 대해서 옳고 그름이라는 기준을 가지신 분이 누구십니까? 네, 하나님이십니다. 위에서 계속해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자마자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다"는 기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하시듯이, 하나님을 닮은 인간도 함께 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동물도 식물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얼마전 여론조사에서 30대 미혼율이 50%가 넘는다고 말합니다. 또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이혼율이 우리나라가 높은 편이지요. 게다가 일인가구가 많아졌다는 점에서, 특히 부부주일을 맞이해서 "하나가 되어 함께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론
1) 하나됨
사실 아담과 하와가 결혼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우리 결혼생활과 어떻게 견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고 두 사람은 만나자 마자 아담이 이름을 지어주며, 사랑에 빠져 서로를 품어주니 말이죠. 사실 이런 배경만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면 일반적인 부부지침서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됨에 대해서 깊은 통찰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예수를 향한다는 "해석의 방향"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를 가지고 어떻게 예수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이 질문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왜 총각으로 죽으셨을까요? 왜 결혼하지 않으셨을까요? 예수님이 결혼만 하셨다면, 교회에서 결혼하라는 설교가 좀 더 쉬웠을텐데 예수님은 결혼하지도 않으셨고, 그의 제자 바울은 사역에 열의가 있다면 결혼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메시지까지 보내곤 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성경에서 결혼은 "남녀가 만나 육적인 관계를 맺어 자녀를 낳는 것"만을 말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담과 예수를 성경은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으로 부릅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시작한 사람과 완성된 사람으로 보시면 좋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첫번째로 시작한 모델이며, 예수는 하나님이 완벽하게 만들 사람으로의 완성작인 것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결혼을 보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야 우리의 결혼의 참의미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 하와와 하나가 되었듯, 예수는 교회를 신부로 맞이해 하나가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에게 와서 종교적인 열심을 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15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마9:15)라고 하셨죠. 지금 자신을 향해서 신랑이라고 표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열처녀 비유에서 "1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마25)라고 하시며 자신을 신랑, 그리고 예수가 다시 오실 때 기다리는 신자와 교회를 신부로 표현했습니다. 요한은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네, 예수는 신자와 결혼하셨던 겁니다. 한 아내의 남편일 수 없는 것이 교회를 신부로 맞이하신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하와를 주신 이유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즉 홀애비로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아 보여서라고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또 무언가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돕는 자를 보냈다는 식의 여성비하로 해석해서도 안됩니다. 완전한 인간 예수의 결혼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는 결코 인류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신자를 구해내시고 마음 가운데 함께 하나가 되어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신 후에 곧바로 하와를 보내시어 함께 하게끔 하신 것은 "예수를 통해서 인류와 하나가 되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결혼은 상징인 것입니다. 결혼은 표시였던 겁니다. 앞으로 다가올 예수와의 "신비한 하나로의 연합"을 상징했던 것입니다. "25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예수는 신부된 우리를 위해서 헐벗으셨고 모욕을 당하셨고 욕보이셨음에도 우리는 그런 예수의 모습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 당하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에게 발가벗겨지듯이 우리의 마음과 죄, 욕된 생각, 탐욕들을 꺼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우리의 신랑되어서 우리의 악함을 품어주시고 들어주시고 해결해주시기 때문입니다.
2) 댓가지불이라는 희생
이렇게 남자와 여자의 결혼은 예수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해석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담에게로 하와를 데리고 오셨던 방식도 우리는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처럼 흙으로 또 생령을 불어넣으셔서 하와를 만드실 수 있으심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왜 이런 과정이 필요했고, 이것을 예수와 교회와의 관계를 통해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잠과 뼈를 살펴보죠.
1) 잠 :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하나님은 얼마든지 능력이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아담을 잠들게 하신 후, 그리고 굳이 아담의 뼈 중의 일부를 떼어내어 하와를 만들어내십니다. 고대이스라엘 문화에서 "잠이 들다"라는 표현은 "죽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런 점에서 아담이 잠이 들었다는 표현은 죽음에 가까운 무언가를 의미하는듯 합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그렇게 아담을 죽음에 가깝게 하신 후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갈비뼈를 꺼내오십니다. 이것을 단순히 전신마취 정도의 역할이라고 간단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예수와 교회의 관계에서 보면 좋겠습니다.
예수가 교회를 구하기 위해서 하신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죽음이 없이는 결코 교회는 스스로 죄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댓가지불"을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하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신 것처럼,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잠이라는 것을 통해서 갈빗대를 꺼내는 희생을 감당했던 것이지요.
2) 갈빗대 : 우리는 두 번째로 뼈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하나님은 아담이 댓가를 지불하게 하시되 특히 살이 아니라 뼈, 그것도 심장을 보호하고 있는 갈빗대를 희생케 하십니다. 아담이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있다가 없어도 되는 것, 없다가 있으면 좋은 것으로 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없으면 안되는 것, 없으면 내가 위험할 정도로 중요한 것을 댓가로 지불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실까요? 예수에게 인간의 육신의 희생은 어찌보면 아프고 힘든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기 직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가장 중요한 것을 예수는 댓가로 지불한 것입니다. 영적인 권세, 명예, 삼위일체의 지위를 모두 버리시고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부의 관계 특히 남편이 아내를 향해서 어떤 자세여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가정은 교회의 축소판이며, 남편은 하나님의 대리통치자입니다. 아내는 자녀를 낳는 특수한 지위를 가지기 위해 남자보다 더 완벽한 창조물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이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교회를 위해 댓가를 지불했듯, 그리고 아담이 하와를 위해 댓가지불로 죽음에 가까운 잠이 들어 갈빗대를 희생하듯,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예수와 같이 하되 "죽기까지 사랑하여 댓가를 지불하고자 해야 함"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또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을 향한 "목숨바치는 댓가지불"때문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교회에 적용되는 원리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전도할 때 섬기는 허리가 아니라 굽신거리는 허리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전하는 것은 "댓가가 지불되었다는 놀라운 복음"입니다. 예수가 심장을 보호하는 갈빗대를 죽기까지 해서 꺼내어 생명의 복음을 만들어내셨습니다. 옆구리에 창을 찔려가면서까지 죽으신 예수의 희생이 이미 지불되었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독신, 미혼, 이혼, 돌싱. 모두 괜찮습니다. 사람이 어찌 완벽하겠습니까? 그러나 교회 안으로 들어오셔서 예수의 신랑되심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결혼이 가라키는 방향, 예수와의 신비한 연합과 하나됨을 향해 교회로 들어와 신부가 되시어 예수와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3) 나는 신부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부는 예수와 우리 사이의 표징 또는 증거물입니다. 이 악독한 사람세상에서 부부라는 인연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예수가 나를 사랑하시어 신랑이 되어주신다"는 복음의 증거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결혼생활에 실패하셨거나, 부부생활에 어려움이 있으시더라도 괜찮습니다. 그것 말고도 망가지고 어렵고 걸림돌 되는 것 우리네 인생에 너무나도 많습니다.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결혼생활이 깨진 것이 아니듯, 표징이 되는 결혼이 어려워졌다고 해서 그 본래의 것이 망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신랑되시는 예수와 신부된 교회"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사두개인과 논쟁을 가지신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남편이 7명인 아내는 천국에서 누구랑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30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우리가 가게 될 천국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이기에, 지금 이 땅에서의 우리의 실수로 우리는 주저앉을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 부활하여 신랑 예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물론 여기에는 맹점이 있습니다. 어차피 천국에 가서 저렇게 살아가게 될텐데 지금 이 땅에서의 결혼생활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여러분, 아내를 진정 사랑하는 자는 표징이 되는 결혼반지 뿐만 아니라 결혼기념일, 아내의 생일, 결혼반지 등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예수와의 합일을 귀하게 생각하는 자는 표징으로써의 남편과 아내를 사랑하며, 또 홀로 살아가는 자는 이 땅의 교회를 사랑하며 장차 예수와 하나가 되는 그 날을 기대하고 고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구나!"라고 비판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의 메시지로 가득합니다. 여러분은 부부라는 관계 아래서 태어나셨습니다. 그 부부는 결코 한 커플의 욕정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예수와 우리의 관계를 상징하며, 그 결과 하나됨과 희생을 통해서 새생명이 태어나듯 나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는 "하나님의 계획된 복음의 메시지"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우연의 존재가 아니며, 인간 욕정의 산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복음 그 자체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가 모인 이 교회가 복음 그자체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행복한교회 사역을 본격적으로 사역한지 2년째가 되어갑니다. 작년 첫해에는 청소를 많이 했습니다. 두 번째는 교회의 질서를 위해 행정과 재정건정성을 위해 많이 애써왔습니다. 행정적인 것은 내부적으로 할 수 있었지만, 재정적인 것은 쉽지가 않더군요. 하여 서울시나 광진구청과 사회복지사업에 신청을 한다거나, 대형교회에 찬양팀지원을 요청해보거나, 예배당에 관하여 다른 교회와 한달간 깊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가져보았습니다. 하지만 쉽게 길이 열리지 않더군요. 그런 가운데 깨닫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함이 있는 우리교회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사용하시어 우리성도의 2배에 가까운 지역주민이 예배를 드리러 올 수 있도록 쓰고 계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네, 교회가 깨끗한 것도, 질서가 잡히는 것도,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미 예수가 우리를 위해 댓가지불을 했으므로, 우리가 자유하고 복이 충만한 상태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교회가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야 할 것은 신랑되시는 예수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예수가 우리 교회의 신랑이 되시니 우리 교회를 책임져주시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끌어주실 줄 믿습니다.
3.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김창옥 교수가 이런 사람과 결혼하라고 하더군요. "내 기쁨도 기뻐해주는 사람, 내 슬픔을 더 슬퍼해주는 사람" 예수는 신랑으로써 아직 저 세상에서 헤매이고 있는 약하고 주저앉아 쓰러져가며 혼란하고 처량해 의지할데 없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신부를 향해 죽음을 각오하고 가슴 갈빗대를 꺼내고 계십니다. 우리는 신부로써 우리 신랑의 슬픔과 기쁨에 동참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한주 그렇게 나의 신랑되시는 예수를 기억하며 서로 사랑하러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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