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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초청주일(1) 몬_매듭짓는 영성

by 우루사야 2023. 10. 21.

제목 : 매듭짓는 영성(2)
본문 : 1-3

1.
서론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가르쳐 주려고 학원들을 많이 보내곤 한다. 태권도, 피아노, 영어, 미술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 우리가 배운 것들을 돌아보면 가장 중요한 돈주고 배운게 아니라고 말이다. 우리가 다른 누군가를 처음 무엇을 보게 되는가? 같이 식사를 하게 되면 그의 식사예절이나 젓가락질을 보게 된다. 길거리에서 만나게 되면 그의 옷차림과 옷매무새를 보게 된다. 그의 집으로 가게 되면 집의 청결도를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그것으로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판단하게 된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이런 것들은 모두 돈주고 배운 것도 아니고 돈받고 가르쳐주는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 부모로부터 그가 배워서 갖춘 것들이며 이런 것들로 사람의 됨됨이에 대해서 대부분 판단하게 된다.

우리는 지인을 초청하는 추수감사절과 가을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 신자였지만 신앙생활을 중도 포기하신 분들은 11 예배로, 처음 신앙생활을 접하시거나 부드럽게 초정하고 싶은 분들은 1430 가을 음악회로 초대하시면 되겠다. 그런데 초대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분들께서 만약 초대에 응하신다면, 아마 우리가 돈으로 배우거나 꾸민 인상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들로 만들어진 우리의 됨됨이를 보고 초대에 응하신 것이다. 나의 됨됨이를 보고 가족이, 회사동료가, 지역이웃이 찾아오게 것이다. 그런 점에서 추수감사절은 11 19 당일 행사가 아니라 한달간 우리가 초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받은 은혜의 됨됨이를,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단련받은 인격이라는 것을 꺼내놓아 보는, 세상에 나의 빛을 비춰보는 시간이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빌레몬서의 도움을 받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빌레몬서에는 3사람의 인격에 대해서 고려해볼 있는, 특히 복음에 반응하는 3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3사람에 대해 한달간 살펴보고자 하는데,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됨됨이를 만져 사용해주시길 소망한다.


2. 본론
1) 빌레몬서 개론
"
1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2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아킵보와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1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갇힌 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 바울은 로마감옥에 갇혀서 편지를 쓰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로마로 가라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었다. 하나님은 때때로 자녀들에게 "매이는 인생" 요구하신다. 바울은 성령에 매여서 자신의 근거지 소아시아가 아니라 마게도냐라는 타지역으로 가서 사역하였다. 가서 열심히 잘하고 있는 사역을 성령은 마무리짓게 하시고서는 예루살렘으로 가게하셨다. 잡힐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곳으로 바울은 갔다. 바울은 그렇게 죄수로 매여서 마침내 로마로 호송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갇힌 " 빌레몬이라는 자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밖에도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가 갇힌 쓰여진 편지고, 성경에는 옥에 갇힌 배경을 가진 책이 예레미야서, 요한계시록 등이 있다. 바울은 옥에 갇혀서도 자신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자신을 1절에서 갇힌 자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 "예수를 위하여"라는 특이한 표현이 눈에 띈다. 바울의 생각의 틀을 잠시 생각해보자. 그의 생각에 세상에서의 위치는 예수를 위한다는 범위 안에서라면 모든 것들이 커버할 있다는 것이다. 죄수라는 위치가 예수를 위해서라면 괜찮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빌레몬을 칭할 "동역자"라는 호칭으로 그를 부른다. 빌레몬 또한 바울 자신과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요구 안에서 그를 이렇게 부르며 편지를 시작하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어떤 사회적 위치도 내려놓자는 바울의 첫인삿말이었다. 이것이 편지를 보낸 자에 대한 설명이다. 

 

그렇다면 받는 자에 대한 설명도 있어야겠다. 2절에서 빌레몬에 대해서 정보를 얻을 있는데 하반절에 보니 "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신약성경을 보다보면 가정에 교회가 있는 것처럼 표현되는 부분들이 있다. 바울의 대표적인 서신인 로마서에서도 브리스길라 아굴라를 두고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16:5)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 초대교회는 따로 예배당을 건축하지 않고, 가정의 공간에서 모였음을 있다. 빌레몬은 지역의 신자들에게 자신의 가정공간을 내주어서 신앙생활을 함께 영위할 있도록 헌신하고 있었던 교회의 중직자였음을 있다.
그런데 그에게 중요한 일이 한가지 생긴 것이다. 바로 오네시모라는 종의 일탈이었다. "18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앞으로 계산하라" 바울은 오네시모에 관한 청구서가 있다면 자신에게 주라고 말한다. 그렇다. 빌레몬은 노예종 오네시모의 무단이탈로써 여러모로 피해를 입었고, 이것은 그의 사회적 위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정도로 보았을 빌레몬은 악덕주인이라기보다는 억울한 위치로 보인다. 그런데 바울의 다음 내용 제안이 가관이다. 

 


2)
청천벽력과 같은 가상천외한 바울의 제안
빌레몬의 입장에서 바울의 제안은 사실상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바울도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제안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기 때문에 이렇게 썼을 것이다. "14다만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빌레몬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다. 바울이 자의로 판단하여 진행하기보다는 빌레몬의 자의적인 선택과 결정으로 말미암아 동의 아래서 오네시모 신변에 관한 일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바울이 어떤 제안을 했길래 이정도로까지 조심스럽게 그는 말하고 있는가? 기독교계에서 바울의 위상을 생각해본다면 어떤 제안도 있을듯 한데 이렇게 조심스러운지 궁금해진다.(8b-9a) 구체적으로 제안내용을 차례로 살펴보자. 

"10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만난 감빵 동기가 생겼다. 그의 이름이 오네시모였다. 그가 어떻게 로마감옥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불명확하다. 어쨌든 바울은 오네시모와 대화하게 되었고 그의 사정을 들어보니 자신이 알고 지내던 빌레몬 집의 노예였던 것이다. 그리고서 이렇게 저렇게 함께 수감생활하면서 바울은 부활예수복음을 오네시모에게 전하게 되었고 이내 그는 복음을 영접하였다. 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오네시모는 사회적으로 범법자였다. 고대로마사회에서나 유대사회에서나 종은 주인의 집에 살면서 자신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주인은 종의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 헌대고용관계 보다 깊숙하고 밀도가 높은 것이 고대주종계약이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도망침으로써 위법한 상태였던 것이다. 어찌보면 문제때문에 감옥에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바울은 오네시모와 빌레몬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가?

"
12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심복이라13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 해결하고자 한다. 빌레몬과의 문제를 해결한 후에는 바울 곁에서 바울을 돕는 자로 머물게 하고자 한다. 오네시모가 노예이기에 바울을 섬기기 위해서는 빌레몬의 허락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회통념상 노예 오네시모가 자유인이 되어서 바울에게로 돌아오려면, 주인 빌레몬의 허락과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바울은 그것을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말하면서도, 가능하다면 빌레몬이 바울에게 복음의 빚진 것을 생각해서라도 오네시모를 아무런 댓가없이 자유인으로 풀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19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외에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여기까지만 해도 사실 빌레몬이 거절해도 무방한 제안들이다. 오네시모를 용서하라는 요구도 빌레몬에게 벅찰 것이고, 오네시모를 아무런 댓가도 없이 자유인으로 놓아주라는 것도 사회적 통념에 맞지 않는 요구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한가지 더를 빌레몬에게 요구한다. "16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이상으로 사랑 받는 형제로 자라" 오네시모를 종도 아니고 자유인도 아니라 "사랑받는 형제" 두라는 것이었다. 그대로 파격적인 제안이다 못해 빌레몬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제안을 바울은 하고 있는 것이다. 

 


3)
복음의 정수
사실 바울의 제안에 대해서 우리는 조금 생각해 필요가 있다. 중재안 정도의 제안은 있을 없는지 말이다. 고대노예는 사실 물건과도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럼 이런 중재안에 대해서 생각할 있겠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원한다면 파는 것이다. 종의 위치는 유지시키되 오네시모를 용서를 하면서 바울에게 비용을 받음으로써 어느정도 빌레몬에게 유익이 있게 하는 중재안이었다. 두번째는 아예 오네시모를 무료로 바울에게 주는 것이다. 빌레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없지만 사회적으로 자신이 데리고 있었던 종을 올바르게 인도했다는 명성을 얻을 있었을 것이다. 세번째, 오네시모를 자유인으로써 풀어두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얻을 유익은 없지만, 교회 안에서 바울의 권고를 들었다는 순종의 입지는 세울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중재안이 아니라 "사랑받는 형제" 삼으라는 것이다. 이전에는 노예로써 오네시모의 생활을 책임지던 빌레몬이었지만, 이제는 도망쳤던 오네시모를 용서할뿐만 아니라 자유인으로 풀어주는 것도 모자라 그를 형제로써 여김으로 오네시모의 위치를 빌레몬과 동일하게 두라는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전에는 종이기에 그의 생활을 책임져야 했다면, 지금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풀어주고 해방시켜주고서도 전과 똑같이 그의 생활을 책임지는 교회의 공동체원이자 형제로 여겨야 했던 것이다. 빌레몬 입장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책임과 권한 중에 권한은 내려놓고 책임만 남겨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가장 결정적인 단서 하나를 남겨둔다.

"19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외에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바울이 친필로 쓴다는 것은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밑줄을 긋는다던지, 별표표시, 굵은글씨로 키웠다는 의미다. 힘을 주어 강조하는데 "네가 나에게 빚진 것을 굳이 말하지 않겠다"라는 의미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그래도 집이 넓어 교회 예배당으로 내줄만큼 빌레몬은 부유해보인다. 노예를 부릴만큼도 되니 말이다. 그런 그가 바울에게 무슨 빚을 졌단 말인가? 사실 내용을 이해하려면 바울의 가치관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26예루살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정성껏 헌금한 돈을 전하려고 내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입니다.27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했습니다만 사실은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빚진 사람들입니다.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의 영적인 축복을 나눠 가졌다면 마땅히 물질로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15:26-27) 바울은 이방인교회들의 대표자로써 예루살렘 교회와 대립하거나 경쟁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영적질서 안에서 예루살렘 교회에게 항상 부채의식이 있었다. 유대인들을 통해 영적인 축복을 나눠가졌기에, 물질적축복 쯤이야 얼마든지 도우며 나눌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영적실서를 빌레몬에게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받은 은혜를 보자면 오네시모를 형제로 얼마든지 있어야 한다는 바울의 관점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3. 결론
지난 주에 바울은 성령께 매이는 인생으로 로마에 왔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오네시모라는 타인의 인생에 매듭을 지어주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먼저 하나님의 매듭을 경험한 빌레몬에게 매듭을 당신이 만들어주라고, 내가 당신에게 했던 것처럼. 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교회로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것은 이런 관계로의 초대이다. 하나님의 매듭이 있는 은혜와 복음으로의 초대, 동호회나 사적모임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형제가 되는 관계" 초대하는 것이다. 한달간 하나님이 마음에 보여주시는 형제로 삼을 자들이 있다면, 그에게 나아가자. 하나님이 그의 인생에 매듭을 원하신다면 우리를 사용하실 것이다. 나에게 먼저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누구에게라도 사랑의 마음으로 나아갈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타인의 인생에도 하나님께 매여 매듭짓는 인생, 하나님이 해결해주시는 인생, 복음이 해결해주는 인생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매듭, 하나님이 해결해주시고, 복음 안에서 해결하는 인생을 살자. 그리고 그것을 소개하자. 

"35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36 생각에는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 되겠느냐37이르되 자비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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