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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초청주일(3) 몬_영적세계로의 초대

by 우루사야 2023. 11. 5.

제목 : 영적세계로의 초대
본문 : 몬 11-5절

 

1. 서론
1) 예화 

오늘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의 세계이야기로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고래가 초음파로 대화하는 것 아시죠? 인간이 20-2만헤르츠 안의 음역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고래는 가장 저음이 2만부터 시작해 20만헤르츠 영역 안에 대화하기 때문에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소리라고 하네요. 그 밖에도 지구가 자전을 하면서 내는 소리, 박쥐끼리 대화하는 초음파, 눈을 볼 수 있는 무지개색깔 밖에 있는 빛의 파장인 엑스레이, 햇빛의 자외선, 핵에서 방출되는 감마선, 전자렌지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전파 또는 적외선 등은 분명히 파장이 있어 볼 수 있지만 우리 눈에는 허용하고 있지 않지요. 네, 우리 주변에는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가 당장에 알 수 없는 세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2) 주제
그런 점에서 성경은 분명히 영적인 세계가 있지만 그것은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그 세계를 하늘이라고 표현했고, 십자가 상에서 한쪽에 있는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낙원에 있으리라"라고도 말하셨죠. 바울은 자신도 정확하게 어떻게 그런 일을 겪었는지 모르지만 놀라운 영적세계에서 체험을 했다면서 셋째하늘이라고 표현을 했지요. 성경에서도 분명히 우리가 단번에 인지하지 못하는 세계인 낙원, 하늘, 셋째 하늘이라고 표현되는 분명한 영적세계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영적세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그냥 없는 척하고 살수는 있을까요? 아니면 이 땅의 것들은 허무하고 버릴 것들이니 무시하고 오로지 죽어서 갈 그 영적세계만 바라보면서 살면 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 세계는 이 땅에서부터 만들어 가는 것임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계신 그 영적세계는 순간이동이나 초월적 이동을 통해서 다다르는 곳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요 또 발견하는 곳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점에서 사도요한은 우리에게 이런 힌트를 주었습니다.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 세계는 결코 사랑의 문을 거쳐가지 않고서는 인식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해줍니다.

3) 본론잇기
그런 점에서 바울 또한 빌레몬에게 그 세계로의 초대를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구절은 어떻게 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말해줍니다. 함께 살펴보도록 하시죠.
2. 본론
1) 바울의 초대 / 사랑의 문으로
바울은 빌레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오네시모를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1절을 보니 "이제는 그가 나와 네게 유익하다"라고 말합니다. 빌레몬 입장에서는 이해되지가 않습니다. 물론 바울이 오네시모를 전도해서 12절과 같이 심복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친해진 것은 알겠으나, 그것은 오로지 바울의 입장이지 11절과 같이 지금 빌레몬에게 오네시모가 유익한 존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오네시모에 대해서 바울은 자신에게 유익한 존재이며, 빌레몬에게도 좋은 존재며, 더 나아가 13절에서는 복음을 위해서도 일하는 자로써 교회에게 유익한 자라고까지 의미를 부여합니다. 여기서 너무 바울이 혼자 앞서나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11절에서와 같이 "그가 전에는 너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다"라고 너무 섣부르게 바울이 말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난 주에 믿음의 교제를 시작함으로써 모든 이에게 선한 일이 나타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네,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나와 너에게 유익하다"라고 말하려면 빌레몬에게도 분명 좋아야 하고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까지는 빌레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없어보입니다만, 바울은 너무나도 빌레몬에게 유익한 일이 생겼다는듯이 확신에 차서 말합니다.

14절을 보실까요? "14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여기서 선한 일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선한 것은 모두에게 좋아야지, 누구하나에게 나쁜 것이라면 선한 것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네, 바울이 지금 선한 일이라고 표현하려면 바울과 오네시모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빌레몬에게도 좋아야 하는데, 지금 바울이 말하는 바로는 어떤 것이 왜 빌레몬에게 좋다는 것인지, 어떤 근거로 이렇게 확신에 차서 말하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제가 서두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즉 반대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사랑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영적세계가 열렸다는 좋은 일"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렇게 사랑으로 영적세계를 열고자 하는 자는 필히 "억지같이 해서는 안되고 자의로만 가능"함을 바울은 말해줍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바가 있습니다. 교회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결코 다른 무언가로 교회를 운영하거나 하나님을 소개하려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많은 교회들이 의견이 분분하다 못해 갈라지고 쪼개지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같은 언어를 쓰고 있지 않아서입니다. 누군가는 사랑없이 영적세계에 대해서 말하고, 누군가는 사랑으로의 영적세계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레몬과 같은 사랑으로 같은 영적세계를 말하고자 이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지요.
2) 문을 지나면 선하게 바귀는 우리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자 할때 우리는 놀라운 영적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영적세계 안에서는 배반, 미움, 시기, 분노와 같은 것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로 선한 것으로 바뀌어 나와 그가, 너와 내가 선하게 바뀌도록 하십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인식할 수 없는 세계로 바울은 빌레몬을 초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해야만 알 수 있는 이 세계로 말이죠. 아무리 중직자여도 교회에 헌신하고 있어도,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결코 그 세계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눅6장에서 예수님은 "악한 죄인도 자기에게 잘해주는 자에게 잘대해주는데 너희가 이같이 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라"고 하셨죠.

그렇다면 같은 사랑으로 영적세계를 공유하는 신자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5절입니다. "15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바울은 빌레몬에게 두가지를 말하는데 먼저는 "영원히 두다" 즉 영원의 세계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이것은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실로 오네시모와 함께 영원이라는 곳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관계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바로 "선"입니다. 15절에서 선이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행간의 의미를 보셔야 합니다. 오네시모가 떠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선한 섭리를 통해서 오네시모를 단순한 종노예가 아니라 이제는 영원히 함께 할 형제로 삼게끔 해주시기 위해서 떠난 것일 수도 있겠다는 말을 바울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한 사람의 고백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로 요셉입니다.
그는 자신을 인신매매한 형들을 수십년 후에 만나서 무어라 말합니까? "당신은 나를 해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창50:20) 오네시모가 빌레몬을 배신하고 형들이 요셉을 팔아넘기려고 했으나,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는 요셉을 통해서 야곱과 온 가족을 살리게 하셨고 빌레몬과 오네시모가 영원한 형제가 될 수 있게 선으로 바꾸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누군가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하더군요. 쉬운 삶을 위해 기도하기보다, 어려운 삶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라. 그렇습니다. 성경은 결코 쉬운 삶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어렵고 힘들고 내가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길을 제시하며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와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법을 배우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도 요즘 초청주일을 맞이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참으로 어려움이 때마침 나타나더군요. 도움의 손길을 드렸던 이들에게 때로는 무시를, 때로는 욕설을, 때로는 단절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보니 마음이 낙망되어졌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결코 내 힘으로는 살 수 없는 이 인생, 또 영적세계의 문을, 계속 시도하는 사랑의 도전을 통해 하나님이 반드시 문을 열어주시고, 길을 내어주시고, 능력을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이 배를 채워주지도 않고, 사랑이 세상을 살아갈 돈을 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의 중심, 영혼의 중심을 굳게 붙들어주어 이 태도가 나의 능력이 되게끔 해줍니다. 

3) 마침내 도달한 영원의 세계
우리가 믿음의 교제를, 사랑의 도전을 시작할 때 우리는 반드시 선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다다를 줄 믿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마침내 목격하게 되는 것은 바로 "영원의 세계"입니다. 다시 15절입니다. "15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와 함께할 영원의 세계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고 위에서 언급드렸습니다. 그곳을 바라보는 인생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여러분. 우리 초청주일은 우리가 다른 이를 교회로 초대하지만, 이 행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의 교제로, 영적세계로의 문으로 인도해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평소에 잊고 살았던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삶에 대해서 우리는 고민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여러분. 우리 교회의 운영원리에 대해서 잠시 언급하고 가야하겠습니다. 우리 교단은 장로회지요. 사실 한국의 많은 교단들이 장로회의 영향으로 장로직분을 두거나 그에 걸맞는 직분들을 두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평신도와 목사의 차이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격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통점은 무엇일가요? 바로 "다스림"에 있습니다. 교회에서 중직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다른 신자를 다스릴 줄 아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이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것은 앞으로 초대받은 분이 교회에 정착할 수록 여러분이 그 분을 케어하고 보호하고 다스릴 줄 아는 "영적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장로회 정치 원리입니다. 여러분이 이 마인드가 없는채로 교회를 생각하거나 교회운영을 생각하셔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영적부모가 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살펴본 사랑으로 영적세계로 인도할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15절에 보시면 바울이 "아마 ~~게 될 것입니다"라는 식으로 말하죠. 영어성경에선는 might, perhaps라고 표현하더군요. 어떤 가능성 내지는 추정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확신에 차서 빌레몬에게 사랑의 세계로 초대하면서도, 아마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 의아했습니다. 그러면서 14절 뒤에 그는 "14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빌레몬의 자발적인 의지를 강조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 경험상 내가 누군가를 사랑해보니 이런 영적세계가 열리더군. 빌레몬, 당신이 누구를 사랑하고 안하고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네만, 자네가 오네시모를 품는 사랑의 세계로 들어온다면 자네는 놀라운 선한 섭리를 보게 될 걸세. 그것은 오로지 자네 스스로만이 선택하고 판단하고 경험하는 세계일세.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은 누가 결코 떠먹여 줄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놀라운 섭리와 선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을 바라보는 영적세계를 확인하며 죽는 그날까지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 다시 오실 날을 든든하게 기다릴 수 있는 우리가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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