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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_GH/PBS&맥체인

넘치는 마음으로 살기

by 우루사야 2021. 4. 13.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 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것이요...(레19장 중에서)

 

자유로운 인생은 정돈되어 있고 차분하며 고요하다. 때문에 마음의 자유까지 누릴 수 있다. 허나 세상에서 아무리 큰 권력과 재력으로 마음대로 살 수 있다 한들 마음의 고요가 없이는 자유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다. 때문에 인생은 마음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려야 진정한 행복함을 누린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떻게 자유로워질까? 인생은 기준이 있을 때 자유를 누린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 결혼함으로써 누리고자 하는 것 중 하나가 안정감이다. 그렇다. 사람은 어디론가 종착지, 기준점, 중심점이 있을 때 안정감을 누린다. 삶의 이유와 목적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가장 완벽하고 인격적이며 나를 행복케해주는 기준이 있을 때 그것은 굴레가 아니라 자유를 만끽케 해주는 도구가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토지, 대인관계, 사회생활, 재판, 농사, 디자인, 직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준을 세워주신다. 어떤 근거로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기준을 세우시는 것일까?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레19:13)

 

누군가의 노동력을 썼을 때에 그 댓가를 치루도록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에서 하나님은 관여하신다. 그 관계의 중심으로서 기준을 세워주신다. 때문에 고용주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노동자의 임금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이런식으로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우리가 살아가게끔 하신다. 이것을 세계관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 세계관 중심에 "하나님의 주되심"이라는 키워드가 존재하게 된다. 그중에 현대인에게도 고민케 하는 것이 있는데 다음 구절과 같다.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로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레19:19)

 

이에 대해서 박윤선 박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종류를 다른 것과 혼잡시키지 말라는 것을 가르친다. 이 말씀을 주신 목적은 이스라엘이 참 종교의 질서를 순수하게 지키도록 하려는 데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는 선에서 인간은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인데, 특히 농수산물이나 가축에 대해서 혼종을 개발하는 것에 있어서 고민케 하는 지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구원의 요건으로서의 율법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함을 위한 중심축으로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존중"하는 태도로서 우리는 혼종교배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면서도, 태어나기 전부터 악영향으로 장애를 겪는 이들에 대해 후천적으로 인위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한다. 

 

그렇다. 복음은 우리가 자유한 자, 충족한 삶을 누리는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런데 복음이 없을 때 인간은 공허함과 부족함이라는 늪에서 나올 수가 없다. 즉 자족할 수 없는 힘은 결국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하고,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거나 처한 상황에 대해서 결핍이라고 판단하게 되고 다른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 자신의 성취감과 자아만족으로 대체시키려 한다. 과학의 발전, 기술의 개발, 생명연장 등 고도화되는 기술이 과연 무조건 옳다고만은 볼 수 없는 것이 이 때문이다. 무엇때문에 기술을 고도화시켜야 하는지 그 출발점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b)

 

하나님의 주되심으로 만족을 누리는 자는 마음의 자유를 누리기 마련이다. 그는 "마음이 청결하고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함으로 자유함을 누린다. 더 나아가 거짓맹세, 헛된 다짐, 허망한 비전을 바라보지 않는다. 오늘의 하나님의 주되심에 만족과 감사를 누리게 된다.(시24:4)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왜 일하는가? 발전되지 못할 것이라면, 세상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면 왜 우리는 일해야만 하는가? 그냥 오늘 만족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그 일의 "출발점"이 중요한 것이다. 나태하지 않고 이웃과 타인의 삶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나의 복음의 부재로 인한 허망함을 채우기 위한 노동을 주의하자는 것이다.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전2:23-24)

 

공허한 노동은 나 자신을 더 얶매게 할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노동은 내가 먹고 마시고 쉬는 이유를 알게 해준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게 해준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타인을 섬기고 사랑하게끔 하는 자족하는 마음은 내가 가진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더 높은 기술과 더 고도화된 나의 노동으로 그들을 섬기게끔 한다. 하나님의 주되심의 삶은 이러하다. 

 

그렇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주되심 속에서 자족하게 되고, 그 자족은 다른 이를 사랑하게 하고, 그래서 오늘 일하고 먹고 마시고 쉬는 것을 행복하게 한다. 복된 소식은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게끔 한다. 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자들의 허망함과 공허함 속에 우리는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런 자들을 주의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딤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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