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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_GH/PBS&맥체인

그분의 뜻은 내 살길이다.

by 우루사야 2021. 9. 8.

* 본문은 맥체인성경읽기 150번째 신명기 3장, 시편 85편, 이사야 31장, 요한계시록1장입니다. 현대인의성경을 사용하였습니다.

18그때 나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여러분에게 주어 소유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군인들은 무장하고 다른 지파보다 먼저 요단강을 건너가십시오.19그러나 여러분에게는 가축이 많으니 여러분의 처자와 가축은 내가 여러분에게 준 성에 남아 있게 하십시오. 20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땅을 주셨듯이 여러분의 형제들인 다른 지파에게도 편히 살 땅을 주실 것입니다. 그들이 요단강 저편에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땅을 완전히 정복하면 여러분은 내가 준 이 땅으로 돌아와도 좋습니다. 21그때 내가 여호수아에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왕과 옥왕에게 행하신 일을 다 목격하였다. 여호와께서는 네가 침입해 들어가는 모든 나라에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22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실 것이다.

모세는 요단 동편에 터전을 잡기로 한 3지파(므낫세 지파는 절반이지만) 이야기를 꺼낸다. 하나님의 약속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이 아니라 그 건너편 인근에서 머물기로 한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거절인가? 세속적인 영향인가? 이런 질문들이 들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하나님께서 이것에 대해서 아무 말씀도 안하셨고, 오히려 허락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그들은 동편의 동자도 꺼내서는 안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다른 것보다 하나님의 통치의 회복이었다. 그래서 요단 동편으로 가는 길에 만났던 에돔땅과 암몬 모암 족속과는 전쟁하지 않게끔 하나님은 인도하셨지만,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왕 옥과 같은 경우는 나라를 멸절시키게끔 하셨다. 그들의 죄에 대한 심판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이지, 가나안 땅에 발을 내리라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는 개인적으로 단호한 기준을 적용시키셨다. 가나안 땅에 발도 내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23그리고 나는 여호와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24주 여호와여, 주께서는 주의 위대하심과 능력을 주의 종에게 보여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에 주께서 행하신 이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25여호와여, 내가 요단강을 건너갈 수 있게 하소서. 그래서 강 저편의 좋은 땅과 아름다운 산간 지대와 레바논을 보게 하소서. 26그러나 여러분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나에게 노하셔서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다시는 말하지 말아라. 27너는 비스가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동서남북을 잘 살펴보아라. 네가 멀리서 그 땅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요단강을 건너가지는 못할 것이다. 28너는 여호수아에게 네 임무를 맡기고 그를 격려하며 굳세게 하여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요단강을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정복하여 그들에게 나누어 줄 자이다.

므리바 물 사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죄를 범한 모세, 그 속에 진실은 무엇인지 많은 신학자들이 추정은 하지만 정확한 정황은 알 수 없다. 단 분명한 것은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던 것이고, 그 결과 아무리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었어도 가나안 땅에 못들어 온 다는 것이었다. 모세도 그 땅에 들어가는게 뭐가 대수라고 그렇게 간청했던 것일까? 모세는 하나님 약속의 성취의 순간을 목격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80년을 기다린 그 약속의 성취를 말이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셔야 하셨을까? 모세 입장에선 너무나도 섭섭하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뜻이라는 기준에서 생각하게끔 한다. 하나님의 뜻은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은 아니다. 가나안 땅이든 그 건너편이든 상관없다.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산과 헤스본이 멸망당했고 그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기에 그 땅에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제조건으로 요단 서편에서 하나님의 뜻이 다 성취될 때까지 함께 하라는 것이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가리웠다. 그게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움으로써 그는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죽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리였던 것이다.

"8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리라. 그는 자기 백성인 성도들이 어리석은 길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평안을 약속하실 것이다.9그를 두려워하는 자에게 구원이 가까우니 우리 땅에 그의 영광이 있으리라."(시84)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자랑이 됨으로써 우리는 가나안 땅, 그 천국으로 입성하게 되는 것이다. 문자적으로 주일을 지키고 살인하지 않으며 도둑질하지 않고 간음치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로 십계명을 살아내는 것이다. 생명을 사랑하고, 이성의 성을 인격적으로 대하며 스킨쉽을 조심하며, 타인의 것에 대한 존중감을 가지는 것.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의 태도를 하나님은 자랑스럽게 여기신다. 그 분의 말씀을 듣는 자에게 영광이 있다. 

10사랑과 성실이 함께 만나고 의와 평화가 서로 입맞추니11성실은 땅에서 솟아오르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살피는구나.12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농산물을 내리라.13의가 여호와 앞에서 행하며 그를 위해 길을 예비하리라.(시84)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살아가다보면 어려움에 닥칠때도 있다. 항상 풍성한 것만은 아니더라. 중간 중간에 어려움과 장애물이 생기는데 그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께 자랑이 되는 삶을 살아내기란 여간 어려운일이 아니다. 그 때 우리의 신앙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넘어질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진정성을 가진 자는 다시금 시도한다. 살아내려고 발버둥치기 때문이다. 

1도움을 얻으려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말과 전차와 마병과 같은 이집트의 막강한 군사력은 의지하면서도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그의 도움을 구하지도 않는다.(사1)

이스라엘이라고 이러고 싶었을까 싶지만, 어쨌든 이스라엘은 자의든 타의든 하나님보다 눈의 기준을 따랐다. 우리도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기 마련이다. '제가 이러고 싶어서 그랬겠습니까. 너무 힘드니까 그랬지요. 너무 힘드니까요. 하나님, 너무 저에게 가혹한 기준을 내미시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이러고 삽니까. 이러다 망합니다. 주변을 보세요. 저보다 더 한 놈들도 있는데, 저라고 이거까지 못하면 저 망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바꾸지 않으시고 일어나셔서 악을 행하는 자기 백성을 치시며 또 그들을 돕는 자들을 벌하실 것이다."(사31:2)

6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하였으나 이제는 그에게 돌아오라. 7너희가 은이나 금으로 만든 죄악의 우상들을 다 집어 던질 날이 올 것이다.(사31)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진지함과 진정성. 그것은 우리의 실질적인 삶의 요건들로 나타난다. 그런 자를 하나님이 돌보시기 때문이다. 그것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이지. 은과 금에 영적 이미지를 씌워 안정감을 찾고자 했던 인간이 그것을 포기하고 던져버린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진지함일 수 밖에 없다. 그에게 은금보다 더한 현실적 보호를 하나님께서 주시리라. 아멘. 

"1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은 곧 일어날 일을 자기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이 계시를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그의 천사를 자기 종 요한에게 보내 이 일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2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거하신 것,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거하였습니다. 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고 그 가운데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이 예언들이 이루어질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계1)

그런 점에서 요한계시록은 특히 교회들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살아낼 것인지 비유로 적혀있지만 철저히도 현실적으로 적힌 책이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계시록은 행복할 것이라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들이 그 뜻이 이뤄지는, 말씀이 이뤄지는 그 때가 오면 평온할 것이라 말해주고 있다. 그 평온의 시작점, 그것을 이루시는 분이 요한에게 나타나 말씀해주셨고 약속해주셨기 때문이다. 그 분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지키는 것이다. 그 분을 담보로, 그 분을 보증인으로 우리는 삼는 것이다. 성령님은 그분을 우리 심령 속에서 알려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오늘의 삶을 버티게 해주신다. 성령이 그 분을 증거하신다. 

10나는 주님의 날에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는데 11그것은 "네가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필라델피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12그래서 누가 말하는지 알아보려고 몸을 돌이켰을 때 나는 일곱 금촛대를 보았습니다. 13그 촛대 사이에는 예수님 같은 분이 발에까지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두르고 계셨습니다. 14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흰 양털과 눈처럼 희고 눈은 불꽃 같고 15발은 용광로에서 정련한 주석 같았으며 그분의 음성은 폭포 소리와 같았습니다. 16그분은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계셨으며 그분의 입에서는 양쪽에 날이 선 날카로운 칼이 나오고 얼굴은 해가 강하게 비치는 것 같았습니다. 17나는 그분을 보고 그 발 앞에 엎드려 마치 죽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나에게 오른손을 얹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며 18살아 있는 자이다. 내가 전에 죽었으나 이제는 영원히 살아 있으며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19그러므로 너는 이미 본 것과 지금 있는 일들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라.

요한이 보았던 그 분은 영원히 세상의 빛이 되시는 분이었다. 그 분은 의로움으로 가득차 결코 어떤 것에도 정죄받지 않으시는 분이시기에 우리가 그 분과 함께 함으로써 우리도 의롭게 하시는 분이다. 긍휼하심으로 우리에게 그 의를 전해주시지만, 동시에 그 의로움은 우리에게 불꽃처럼 다가온다. 동시에 두려운 분우시기도 하신 것이다. 그의 권한과 힘은 우리의 인생을 손에 쥐고 계셨다. 그래서 요한은 그 앞에서 죽은 사람같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했던 요한에게 생명으로 다가오셨다. 그래서 요한은 죽지 않고 주님의 예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주님때문에 마지막을 경험하게 되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그 분이 처음이요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분의 뜻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 현실의 문제보다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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