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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_GH/PBS&맥체인

역설의 존재, 인간

by 우루사야 2021. 8. 3.

사람의 분노는 결국 주께 영광을 가져다 주며 주는 그것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시 76:10)

우리 인생 길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안다면 어떨까? 재미는 없겠지만은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인생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함음로써 존재론 자체가 무너지고 말 것이다. 미래를 앎으로써 인생에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은 역으로 인생의 미래를 모름으로써 의미가 존재하게 된단느 것이고, 이는 인간의 무지가 인간을 존립케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의 부재가 그것을 존립케 한다는 역설은 사실상 그 행간에 다른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시 75:2)

어떤 이는 운이라 말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우연이라 말할 수도 있다. 발생된 결과에 대해서 보는 시각에 따라 누구는 불행을 또 누군가는 행운을 말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존립을 근원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에 있어서 우리는 불확실하고 불명확한 것에 의미를 두며 설명하려고 한다. 왜 우리는 이렇게 설명하려고 할까? "의미, 시작, 출발, 동기부며"가 명확하지 않으면 존립이 무너지는 존재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설명이 되어야 살 수 있는 존재다. 그것이 자존의 부재로 존립케 된다는 역설일지라도, 그 행간에 다른 존재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존재라는 미약한 결과로서의 설명일지라도 말이다. 그렇다. 인간은 약한 존재임을 인정할 때 진정 세워질 수 있는 존재이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민31:16) 

약한 존재라는 것을 신학적으로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죄인", 즉 선을 행할 수 없는 악한 존재라는 것이다. 죄인은 하나님이 염병을 보내게 하시게끔 할 수 있다. 존립을 스스로 흔드는 존재이다. 즉 스스로는 결코 설 수 없는 존재이다. 마이더스의 손처럼 행동하는 모든 것은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너희는 일곱째 날에 옷을 빨아서 깨끗하게 한 후에 진영에 들어올지니라 (민31:24)

행간에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존립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인정과 도움이 필요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중심축과 함께 살아가려면 그 축에 연결되어야 하는데, 죄인으로서는 중심축 근처에도 갈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축과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죄인일찌라도 연결고리를 그 축에서 내어준다면 말이다. 다행히도 그 축이 되시는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시다. 마이더스의 손을 무력화 시키실 수 있는 능력도 가지신 분이시다. 이제는 그 분의 말을 듣고, 그 분의 기준에 맞추어, 그 분을 믿고 따르면 된다. 그 분은 그 연결고리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 분은 의롭게 하는 염병의 불이요, 진영에 들어올 수 있게끔 옷을 정결케 해주는 거룩한 물이요, 정한 기약에 심판하실 재판장되신다. 그리고 우리의 분노까지도 사용하시어 우리를 선한 존재로 존립케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만약 이 연결고리가 없다면 그 존재는 아마 다른 무언가로 스스로 존립케 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일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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