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AYAMEMORY
연구_DE

바울과 함께 걸었네 서평_16장 빌립보

by 우루사야 2021. 8. 19.

"그리스도인이지만 욕망에 집착하고 먹고사는 문제에 몰두하며, 하늘의 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일에만 목매어 살고 있다면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바울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의 원수 된 삶에서 돌아오라고 눈물을 흘리며 권면했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에서 우리라고 자유할까?" (본권 16장 중에서)

오늘은 일과를 어느 정도 본 후에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동네 여러군데를 본의아니게 걷게 되었다.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상가들을 보고 있노라면 분위기가 많이 바뀐것을 느끼게 된다. 큰 특징 중에 하나가 영어간판보다 한글간판이 많아진 것이다. 트렌디한 서체로 이뤄진 간판을 보고 그 가게 안을 보면 인테리어까지 깔끔하다. 그러다가 우리교회를 생각해보았다. 트렌디와 거리가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들을 가지며 책상에 앉아 본장을 읽어나가는데 함신주 목사의 특유의 넘어가는 웃음과 소탈하면서도 묵직한 소리로 나에게 말하는듯 하다. "껄껄껄, 이사야 목사. 어디보고 있는거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55-58)

함신주 목사가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이면서 믿음보다 욕망을 택하는 이유는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이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때매 죽겠네"를 달고 살 것이다. 바울은 죽음의 문제 앞에서 오히려 선언하였다. 승리를 선포하였다. 그렇다. 복음과 기독교는 가르치는 종교이전에 선언의 종교이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지만, 우린 이미를 믿으며 미래시제에서의 과거형 선포를 믿는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문구를 함신주 목사는 이렇게 언급한다. "이 시대의 탁월한 윤리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그의 책 '하나님나라의 나그네 된 백성'에서 좀 더 적나라하게 '하나님나라의 식민지 된 백성'이라고 말한다." 신자는 세속과 전혀 다른 사고방식의 삶을 향유한다. 세상과 등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살되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럼 교회는 어떠해야 할까? 교회도 마찬가지 아닐까? 세속과 등지는 교회, 세상을 왕따시키는 교회, 이분법적 교회가 아니라 세상 속에 함께 살아가는 교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정체성이 있는 교회, 그런 믿음을 가진 자들의 모임이 교회가 아닐까. 

"그런데 비잔틴 시대엔 왜 교회 건물을 바실리카라고 불렀을까? 교회사가 후스토 곤잘레스는 그의 책 일요일의 역사'를 통해 비잔틴의 교회가 바실리카라고 불렸던 이유는 당시 교회당이 기본적으로 공공건물의 기본 도면을 모방했고, 이 공공건물은 황제 바실레우스의 소유였기에 전통적으로 바실리카로 불렸다고 한다." (본권 15장 중에서)

다시금 함신주 목사가 웃는듯하다. "껄껄껄, 이사야 목사~" 서두에 욕망을 향해 등지는 것이 신자로서의 자격임을 생각했다면, 이번에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교회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세상과 함께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욕망과 탐욕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어야 한다. 함신주 목사가 이렇게 말해준다.

"바울의 교회 개척은 건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을 세웠다. 복음으로 변화된 한 사람을 세우는 것,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복음으로 세우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운동이다. 우리는 이렇게 세워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삶의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한다." (본권 15장 중에서)

본인은 자녀를 키우기에 옥타곤보다는 옥토넛이 더 친근하다. 어쨌든 둘 다 "8"이라는 숫자로 네이밍했다. 바실리카 내부도 8각형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안식 후 첫날로서 여덟째 날, 즉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새로운 창조의 날, 양자가 되어 하나님과 함께 복락을 누리며 세상 속에 있을 수 있게 된 날, 담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영원한 안식의 예표가 되는 "소망과 설렘"의 날인 것이다.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힌 바울의 "소망과 설렘의 확신"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24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25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26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27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28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29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30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31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32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33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34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행 16:24-3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