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 삶에도 바울이 겪은 것과 비슷한 일을 경험할 때가 있다. 하나님나라를 위해 헌신하였지만 펼쳐보지도 못한 채 열정을 접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 계획을 모두 뒤로 미루거나 멈춰야 할 때가 생긴다. 그리스도인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막으셨다고 믿는다. 그리고 기다린다...선교적 삶을 살아갈 때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궤도를 수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무엇에 볼모로 잡혀 있는지, 혹시 허망한 데 굴복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수 있다." (본권 17장 중에서)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한 계획을 모두 무르고 그리스 쪽으로 방향을 틀어 드로아로 내려가 그곳에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로 가게 된다. 그래서 도착한 빌립보의 항구 카발라를 함신주 목사는 본권 마지막 장에서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다. 본권 다른 장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함신주 목사의 성지순례는 바울의 동선이 반대방향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이 바울이 아시아를 건너는 첫 발걸음을 소개하게 된 것이다.
"첫 발걸음은 늘 중요하다. 역사에서 가장 관심 있고 중요하게 보는 것은 무엇이 먼저인가, 첫 시작은 누가 했는가이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사료를 찾는다. 그래서 역사는 곧 사료전쟁이다. 사료를 찾아내는 것뿐 아니라 잘 정돈하여 가치 있게 사용하는 것이 역사학의 중요한 과제이다. 교회사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이 처음인가, 어디가 처음인가를 찾는 것은 중요하다. 카발라와 네압볼리는 그런 의미에서 교회사에서 중요한 것이다. 바울이 이방 선교에서 첫 발걸음을 디딘 곳일 뿐 아니라 성령께서 친히 지정하여 선교의 문을 열어주신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이 유럽 선교의 첫 문을 연 네압볼리 방문은 그야말로 교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본권 17장 중에서)
성지순례를 떠나는 이들이 소감을 말해주는 것을 들어보면 둘로 나뉘어지는 것 같다. 갔더니 아무것도 없더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역사적 인물의 숨결을 느끼고 왔다는 것. 왜 이리도 차이가 나는 것일까. 역사의 의미와 진정성을 알고 가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아닐까. 요즘 둘째 딸이 역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에 김홍도에 대해서 배워왔다. 그래서 이참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김홍도의 그림들을 보고 왔다. 잘된 것이 김홍도 특별전을 하니 김홍도의 그림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딸도 그림들을 보면서 배웠던 것이라고 아는 척을 한다. 아마 앞으로 김홍도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와 그 반대세력의 핍박에 대해서 배우게 되면 김홍도의 그림이 시대정신의 저항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그런데 이번에는 선덕여왕과 첨성대를 배워왔다. 경주는 참 멀다.
"나그네의 삶은 늘 안정과 두려움의 경계에 놓여 있다. 따라서 분명한 기준과 목적만이 나그네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데, 우리에게 유일한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나그네의 삶은 오직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는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도 나그네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라면 가고 멈추라면 멈추는 게 우리에게 좋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나그네의 삶을 마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은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집으로 가는 길은 불안보다 안정으로 가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의 영원한 본향으로 가는 길도 어쩌면 마찬가지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가는 길은 우리 인생의 불안한 나그네 삶을 종결짓는 것이다. 말 그대로, 세상을 벗하며 살다가 평강의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다." (본권 17장 중에서)
나그네는 집을 떠났기에 나그네일 것이고, 또 언젠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나그네일 것이다. 방랑자나 부랑자와는 다른 나그네이다. 하나님의 집을 알고 있고 또 기대하는 나그네. 이 영적이고도 종말적인 의미를 살아간 바울의 행보를 알기 위해서는, 나 또한 그래야만 그 땅에 가서 묵상이 절로 나오고 감탄이 뿜어져 나올 것이다. 대자연을 보는 것보다 더 깊고 가슴져미는 여행일 것이다.
"성지순례를 마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삶과 소망을 그대로 이어받아 우리의 삶의 처소로 되돌아가 그곳에서 철저히 예배드리는 삶을 붙들며 선한 싸움을 치열하게 싸울 것을 결단했다. 사도 바울이 치열한 복음의 발걸음을 네압볼리에서 시작하였듯, 나도 이곳 이스탄불에서, 그리고 곧 밟게 될 한국 땅에서 내가 걸어야 할 복음의 발걸음을 다시 걸을 것이다." (본권 17장 중에서)
금주에 함신주 목사에게 연락해보았다. "형님, 강령하신지요." "응 강녕하여 휴가지에 있다". "저자와의 만남을 가지고 싶습니다." "좋지".
액츠를 졸업한 후에 일년에 한두 번씩 꼭 연락을 주었던 함신주 목사이다. 연배가 높고 학번으로도 선배이며 목사로 보아도 일찍 안수를 받았지만 항상 안부를 물어주고 들어주고 공감해준다. 그래서 항상 고마움이 있었다. 그래서 서평을 천천히 그리고 생각하며 써보고 싶었다. 이제 마지막 장이라고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지만, 곧 있을 저자와의 만남을 기대해 본다. 저자와 점심 한 끼하며 "바울과 함께 걸었네"에 대해서 깊은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그리고 함신주와 함께 걸으며 나눈 이야기로 본 서평을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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