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지리를 알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적게는 2000년, 많게는 4000년의 시간을 좁혀 그 당시의 삶을 추적하고자 하는 지적 행동이겠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그 삶을 살아냈던 이를 공감하기 위한 정서적 행동이 아닐까. 바울의 전도여행을 단순한 텍스트로만 받아들여 교리적으로만 해석하고자 했을 때 교조주의의 메마름만 남는 듯하다. 밀레도에서 동역자들과 의미심장한 작별을 하는 마치 아마겟돈에서의 브루스 같은 바울,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책상에 올라가 학생들에게 열정적으로 말하는 로빈 윌리암스처럼 아레오바고 비마 위에서 설교하는 바울. 그를 이해하고 공감함으로써 누가가 썼던 글이 다시금 보이게 되는 듯하다. 그와 같이 복음을 살아낼수록 또 사도행전이나 서신서는 또 다르게 읽힐 것이다.
"바울이 다녔던 지역들은 대체로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도시들이다. 지금은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바울 시대에는 해안가 또는 바다였던 곳이 그동안 퇴적층이 형성되어 지금은 평야 또는 들판이 되었다. 해안선은 그만큼 멀리 밀려나 있다. 그리스는 내륙 쪽으로 이어진 큰 산맥들이 마치 등뼈처럼 굵직하게 형성돼 있다. 이런 산맥들은 그리스의 문화와 기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아무래도 해안과 산맥을 따라 도시가 형성되었기에 도로도 잘 닦여졌을 것이다......(하지만 그 당시)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내한 사도 바울에게도 산은 그 자체로 외로움의 장소요 주림과 목마름의 현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그리로 몰아가셨다. 복음의 진수는 차가운 곳을 그리스도의 피로 뜨겁게 만들고, 생명의 온기가 사라진 곳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 험한 길을 지나간 사도 바울의 발걸음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다. " (본권 13장 중에서)
함신주 목사는 우리가 바울뿐만 아니라 레오니다스를 공감하도록 안내해준다. 그의 동상에는 "몰론 라베"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페르시아 황제가 항복을 권하며 무기를 바치라 하니 답으로 했던 말이라는 것이다. "와서 가져가라". 정말 속된표현으로 표현하고 싶을 만큼 상남자 아닐까. 본장에서 스파르테의 용기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떠나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문화"를 소개해주는데, 여기서 불현듯 한국전쟁에서 교회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던 이들이 생각이 났다. 어린 생각에 '교회 예배당을 왜 지키는가, 피난민들을 돌보러 같이 가는 게 더 목회적이지 않을까'. 물론 실용적인 면에서는 맞을 수 있으나 본장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전쟁과 목숨을 걸어놓고 기도하는 목회자의 심정을 내가 헛되이 판단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테르모필레의 레오니다스의 동상이 승전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패전을 기념하는 것이라는 소개에서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을 넘어서서 '역사가와 과거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과정이자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그래서 인류는 페르시아 대군보다 레오니다스를 기억하려고 한다. "몰론 라베".
본권의 후반부를 읽어가며 드는 생각은 목사로서의 인문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삶을 성숙한 사관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그리고 그의 생각을 다양한 철학적 관점으로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그의 고달픈 인생과 깊은 감정을 공감할 수 있는가. 일반서신을 기록했던 예수님의 제자나 교회의 지도자들, 그리고 바울. 그들을 더 잘 이해하며 성도에게 소개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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