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짧은 IVF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독대" 또는 대면이라고 표현인데,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로 나아가기를 선배들이 권유할 때 많이 쓰는 단어였다. 학부를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수학했는데 개인적으로 그곳이 수도원같았다. 하나님과 매일같이 독대하면서 혼돈의 20대를 그나마 잘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강의가 다 마쳐지고 저녁시간이 되면 통학생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열람실에는 몇몇 학우들 밖에 남지 않는다. 학교는 양평 산기슭 답게 어두컴컴해진다. 도시의 불야성과는 정반대이다. 조금만 외진 곳으로 가면 바로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다. 배가 출출해서 편의점을 가려면 걸어서 40여분을 걸어야 한다. 배달음식을 시키려면 치킨 두마리는 시켜야 배달을 시켤 줄 정도다. 그런 곳에서 저녁 9시에 마무리 학업을 마치고 성경을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빛도 없고 사람도 없으니 저절로 묵상케 된다. 그리고 10시가 되면 다락방이라 불리우는 공간에서 기도를 시작한다. 교내에는 통성기도를 할 수 있는 선강당, 침묵기도를 할 수 있는 다락방이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보낸 후 걸어서 30분간 북한강을 따라 자취방을 향해 걷는다. 이런 삶을 3년여 동안 했는데, 아직도 잊을 수 없고 또 나의 신앙의 깊이를(너비와는 다른) 만들어준, 수도사와 같은 삶이었다.
"수도원이 되돌아가야 할 원래의 모습은 무엇일까? 세상에 수도원이 존재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금욕과 은둔의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다고 보았다. 주님을 만나는 것, 그것이 수도원의 존재의 이유다. 물론 하나님의 장엄한 역사가 수도원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수도원은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을 만나는 금욕과 은둔의 장소였다."(본권 14장 중에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수도원 같은 공간이 있을까? 잠깐의 산책, 묵상,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본인도 사역하는 교회가 거리가 있을 경우 동네 근처 교회를 찾곤 하는데, 여러사정으로 인해 예배당을 닫아놓는 교회가 많다. 그나마 "열린교회운동"에 가입한 교회가 있어, 평일에도 문을 열어놓아 아이들을 등원을 시키고 그곳에서 묵상도 하고 기도도 할 수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인간 존재는 "영혼의 숨"이 필요하다.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다는 도식 자체가 물리적인 것을 뛰어넘어 영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고, 영적인 것들은 우리가 눈을 감고 고민하고 번뇌하고 생각하게끔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들을 깨닫는, 즉 몰랐던 것을 깨닫게 됨으로써 얻게 된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 대해서 "우리가 직접 인식하지 못한 일에 대한 진리를 찬성하게 되는 것"이라 말한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 조용하고 은밀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고 찬성하게 되고 마침내 믿음의 성숙을 얻게 된다. 그리고 점점 예수와 같이 나를 내려놓으면서 예수와 신비한 연합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라는 표현 속에 모든 기도가 강하게 압축되어 있다. 이 기도는 우리를 위해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드리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그 분을 그리스도,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아, 우리가 기다려온 분으로 선포한다. 이 기도는 그분을 우리 주님을 몸과 마음과 영혼과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총망라한 우리 전 존재의 주님으로 부른다. 이 기도는 우리의 죄성을 인정함으로, 그리고 그분의 용서와 자비와 긍휼과 사랑과 선대를 겸손히 간구함으로써 그분과의 가장 깊은 관계를 고백한다." (본권 14장, 헨리 나우웬, "기도의 삶" 인용구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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