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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마태복음_명예로운 삶

마16:21-28

by 우루사야 2022. 7. 11.

21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오늘도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는 자녀로, 명예로운 인생으로 불러주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어제 본문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 오해하고 왜곡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실체에 대해서 아직 직접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지 않으셨음을 살펴봤습니다. 교만한 자에게 정체를 가리우시고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만이 비유를 듣고 깨달으며,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신하게 되며, 기적들을 보며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확신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명예로운 삶은 돈, 권력, 인정과 같은 세속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되는 것이라 예수님은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겸손함으로 만들어지는 명예로운 삶의 과정을 설명해주고자 하십니다. 본문 21-23절입니다. 

21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22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방금 전까지 예수님께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베드로가 이번에는 질타를 받게 됩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표현을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과 성령님의 지혜주심으로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지금 이순간 얼마나 복된 상태인지까지 확인시켜주셨습니다. 그랬던 베드로가 다시 순간 교만해졌는지요. 예수님이 고난과 부활의 사건을 말하자, 베드로는 이 일이 생겨나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두고 베드로를 사탄이라고까지 칭하시면서 베드로를 혼내십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 즉 베드로의 사고방식에 "성령하나님의 지혜주심"이 떠나갔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지금 오른쪽에 하나님 왼쪽에 사탄을 두고 이리갔다 저리갔다하는 것으로 오해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본래 우리는 항상 죄인입니다. 그래서 항상 사람의 생각, 세속의 사고방식, 죄의 근본바탕에 있음을 우리는 인지해야 합니다. 그런 죄인인 베드로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돌보시고 성령 하나님의 지혜주심으로 베드로가 고백할 수 있었지만, 그의 마음이 교만해지자 성령 하나님의 생각을 거절하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으로 다시 채워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본래 근본바탕이었던 자신의 죄의 생각을 드러내게 된 것이지요. 항상 우리의 추한 생각을 하나님이 지혜와 사랑과 소망으로 덮어주고 계심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교만함은 우리를 덮고 있는 하나님의 것들을 들춰내고 우리의 부끄럽고 추악한 속내를 드러내게 합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하라는 말씀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24-26절입니다. 

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다른 사람과 같은 죄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죄도 아닙니다. 내가 고민해야 하고, 내가 직면해야 하고, 내가 잡고 몸부림쳐야 하는 나의 죄를 붙들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결단해야 합니다. 나의 죄의 생각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서 나아갈 것인가?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못밖고 죽이는 십자가, 자기 자신의 죄의 생각을 부인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살고자 하는 자는 결국 자신의 한계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자신이 책임지는 인생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신의 생각을 접어두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채우려고 하는 자,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이라면 어떤 판단을 하시겠는가 고민하는 자, 그렇게 나의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사람의 인생을 살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이 책임지시니 "하나님이 목숨을 얻게끔 하시는 아버지"이시라고 예수님은 가르쳐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는 환상과 환청, 이미지로 그려지는 빈약한 것이 아닙니다. 희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심령 가운데 명확하게 용기, 소망, 사랑, 충성, 의로움, 자비, 온유, 지혜, 거룩 등과 같은 언어로 말씀하십니다. 나의 생각과 판단을 십자가에 못 밖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로 살아가겠다는 의지와 결단이야말로,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내리실 판단과 결정에 있어서 하나님께 묻는 기도의 시간, 생각과 고찰함에 있어서 성경과 함께함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나를 죽이고 하나님으로 사는 자가 유익하겠습니까? 아니면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살았다고 하면서도 결국에는 마지막 재판장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 자가 유익하겠습니까? 자신의 인생을 높이고자 하는 자는 결코 앞을 볼 수 없습니다. 오로지 눈 앞의 유익만 볼 뿐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진정한 유익함이 무엇인지 고민하라고 하십니다. 마지막 26-28절입니다. 

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2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스라엘 나라의 왕권이 회복되는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이것을 "인간사의 왕권"이라고 생각해서, 예수님이 군사를 일으켜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독립시킬 것"이라고 판단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다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회복함이 이 때입니까?"(행1:6)라고 묻기도 했지요. 그 때 예수님은 "그렇다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 영적나라, 하늘의 초월적 세계가 이 땅에 임하는 놀라운 종말을 말씀하셨던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제자들 중에 죽기 전에 "예수님이 영으로 오순절에 임하심"으로써 각 사람과 연합하셔서 하나님의 증거자로 삼으신 것이 사도행전에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천국이 점점 만들어져 가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 연장선상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예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활동을 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왕권이 이 땅에 어떻게 실현되는지 우리는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은 육신을 가지고 부활하셨던 모습 그대로 다시 오셔서 우리를 맞이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행한 그대로를 갚아주시며 높여주시며 목숨을 되찾고 영원한 삶을 살게끔 해주십니다.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내 눈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시겠습니까 아니면 내 안에 계시는 예수의 영께서 알려주시는 천국의 확신을 바라보며 사시겠습니까? 오늘 하루도 우리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 깨달아주시며 세워주시는 천국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명예로운 자녀로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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