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우리의 왕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명예로운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살아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방인처럼, 이 땅만 바라보면서 구차하며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자처럼 살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주제를 꺼내드십니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십니다. 1-2절입니다.
1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2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하지요. 내가 하는 말이 곱지 않다면 어떻게 고운 말을 들을 수 있겠냐는 것이지요. 내가 비판하고 부정적으로 판단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를 좋게 볼 수 있냐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의문점이 듭니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긍정적인 비판까지 금지하시는 것입니까? 3-5절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3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4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5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여기서도 외식하는 자가 나타납니다. 가면을 쓰고 자신의 실체를 가리면서 외적으로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자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됨, 교정되어야 할 것, 회개해야 할 제목들은 가립니다. 그리고 다른 이를 향해서 비난일색으로 정죄하고 저울질합니다. 마치 자기가 심판자가 된 것마냥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너의 잘못부터 보라고 하십니다. 너의 잘못은 집 기둥을 바치는 들보나무기둥처럼 큼지막하다! 그게 안보이느냐? 너 자신이 지금 얼마나 추한 모습인지 모르느냐? 그 들보는 가릴래야 가릴 수 없을 정도인데 그것도 못보면서 어떻게 다른 형제의 티끌같은 잘못은 그리 잘 지적하느냐?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뭐 뭍은 개가 겨뭍은 개 나무라는 꼴이지요. 부끄럽지 않습니까? 민망한 처신입니다. 전혀 명예롭지 않습니다. 이런 처신은 1-2절에서와 같이 결국 자신이 그 비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헤아림을 받고 정죄받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지체와의 관계에 있어서 품어주고 용서하고 사랑한다면 그것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실 때에 이렇게 말씀해주신 겁니다. "14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15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외식하는 자는 자신을 높이기에 자신을 판단할 자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잘못이 대들보처럼 큼지막하고 모두가 다 알고 있어도 자신만 모른채로,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이리저리 지적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우상이고 자신을 높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압니다. 하나님이 돕지 않으시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들보를 가지고 민망해서 살아갈 수 없는 추한 죄인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지체를 비난하고 비판할 수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용서해주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어주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기도 바쁜데, 누굴 비판한단 말입니까? 그런데 6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이런 죄인을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라는 "거룩한 것"을 다 내팽겨치고, 자기 잘난맛에 살려고 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무시합니다. 자기 자신을 높이는데만 급급합니다. 그러니 고귀한 하나님의 보물들을 "개"에게 주지 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겁니다. 자신을 높이는 자들을 개와 돼지라고 말씀하시면서까지 그들을 비판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발로 밟으며 필요없다고 말하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만 높이면되는,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러한 지혜와 가르침을 듣지 못합니다. 그들은 개 돼지처럼 땅의 것만 바라보며 자신의 욕망채우기에 급급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가르침을 주려는 이를 물어뜯고 덤벼들 겁니다.
예수님은 비판하지 말라라고 시작하셨지만, 비판하셨습니다. 이중적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형제가 서로 비판하기보다 하나님이 사랑해주신 것을 따라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을 돌아볼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아무리 고귀한 지혜를 주어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형제라 불리우지 못하고 개와 돼지로 불리우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형제입니다. 맏형 예수가 왕입니다. 우리는 왕족으로서 고귀하고 명예롭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서로 용서할 것을, 그리고 가족이 되지 않겠다고 하는 이들을 향해서는 가장 강한 비판을 하신 것입니다. 형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이 주시는 이 가르침을 간직하시며,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명예롭게 살아가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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