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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_GH/칼럼_H

중앙선과 선악과, 그리고 자유함

by 우루사야 2021. 4. 12.

레위기 18장을 통해 "성문화"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큰 틀을 이스라엘은 가지게 된다. 현대에 와서 일반적인 건강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성문화를 생각하면 비슷한듯하다. 그런데 그 근거가 무엇인가가 중요할텐데 레위기는 그 근거를 "약속관계"에서 찾고자 한다. 

 

너는 네 아버지의 아내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이는 네 아버지의 하체니라 (레18:8)

 

아버지의 첩일지라도 범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첩이라서가 아니다. 아버지와의 성적인 약속관계에 있는 대상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남녀의 차이가 아니다. 성경이 주목하는 것은 "약속과 관계"라는 것! 그 약속을 존중함으로써 관계가 유지되고 지속된다는 기조를 가지고 성경은 성문화를 말하고 있다. 현대에서 "건강한 성"에 대한 기준은 많은 다양성을 통해 무너지고 말았다. 그 근거를 과학에서 찾거나 전통, 문화, 인식, 도덕에서 찾고자해도 서로의 의견이 팽팽하기 마련이다. 성경은 그것을 "약속관계"에서 찾고, 그 존중 속에서 건강한 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화를 건강하게 함으로써 사회가 존속 될 수 있을 것임을 말해준다.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레18:24-25)

 

이를 토대로 월경, 불륜, 동성애, 수간, 성적 우상숭배행위 등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들이 왜곡된 성을 통해 나온 문화나 행태이기 때문에, 이것을 올바로 잡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간의 관계,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풀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통해서 인간을 통제하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건강한 관계를 지키고자 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서 고안해내신 방법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 틀이 답답하거나 자유를 막는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써 최소한의 틀임을 깨달아야 한다. 중앙선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시속 80이라는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자유를 위해 인간은 최소한의 틀이 필요하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건강한 관계이다. 그것은 최선, 최고가 아니라 우리에게 필수인 것이다.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나를 멀리 하지 모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시22:9-11) 

 

레위기는 사회의 존속을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하는 성관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더 작게는 한 가문의 존속, 한 가족의 존속, 한 가정의 존속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 이것은 세계관적으로 확대해보면, 결국 하나님이 "상식적이고 인격적인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존속할 수 있게끔 해주시는 것이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잠22:26)

 

나를 존속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그 말씀 안에서 나는 숨을 쉬고, 동기를 얻으며, 생명의 의미를 부여받고, 사회를 구동시킬 수 있는 존재로 살게 해준다. 우리가 이것이 필요한 이유는 "사회는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죄로 이미 가득 찬, 공중권세 잡은 자로 말미암아 죽어가고 있는 이 세계 속에서 영원히 존속될 수 있는 길로써 하나님의 말씀이지 우리를 옥죄기 위한 규범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격적이다. 우리의 삶을 경건, 단정, 고요, 평안케 한다.(딤전 2:2)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감은 우리를 자유케 한다. 최소한의 규율이 우리로 하여금 고요케 한다. 그것을 바울은 교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어했다.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딤전 3:14-15a)

 

그래서 바울은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 있어서 사회적 지위, 재산, 규범에 대한 충성도 등을 보지 않았다. 고요하고 단정된 삶을 살고 있는 자,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정리된 삶을 살고 있는 자를 리더로 세우고자 하였다. 자신의 행함, 처신, 가정생활, 사회생활, 인품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돈된 자, 복음으로 살아가는 자로 세우고 있다. 

 

다시 레위기로 돌아가보자. 하나님의 말씀은 가정과 친인척간의 관계에서 정돈된 규율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바울도 동일하게 말하고 있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딤전 3:4)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딤전 3:12)

 

하나님의 말씀을 최소한의 삶의 규범으로 여김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된다. 규범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규범을 만드신 분이 나를 만드셨으므로, 나를 구원하실 길도 아시는 분이시고 나를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음으로써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복음이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가정과 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성과 가정에 대한 기준이 많이 무너지는 한국의 상황에서 더욱 더 그러하겠다. 

 

우리의 지식과 탐구는 우리로 하여금 규범을 만들게 한다. 때문에 법전이 아무리 굵다 하더라도 우리는 완벽한 삶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오히려 많은 규범 속에서 우리는 숨을 헐떡이며 나 자신에 대해서 비난하며 하루하루를 살던지, 아니면 규범 자체를 덮어버리고 멋대로 살아갈 뿐이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규범이 필요하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유할 수 있다. 바다에서만 살아가라고 만들어진 물고기가 땅에 못 올라간다고 죽어가지는 않는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전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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