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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_GH/칼럼_H

경력단절된 신자

by 우루사야 2021. 4. 9.

레위기 17장    시편 20편    시편 21편    잠언31장    디모데전서 2장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지니라(레17:13)

 

나병이 죄를 의미한다면, 피는 생명을 의미한다. 그리고 피를 외부로 흘린다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 즉 죽음을 의미하게 된다. 죽음은 죄를 가진 자 또는 죄 안에 있는 자가 당하게 된다.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피를 흘리게 되는 제사, 사냥, 도축 등에 대해서 언급하신다. 예식과 사생활 영역 모두에 해당될만큼 광범위한 피흘림이라는 현상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집중하시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를 흘린다는 것, 즉 생명을 잃는다는 것에 대해서 그만큼 우리는 고민하고 고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생명이 존속이 되는가 아니면 존속되지 않는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으면 많은 부작용으로 나타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현대인의 많은 직종 중에 가장 평가절하가 된 것이 있다면 "가정주부와 어머니"의 역할이라고 말하고 싶다. 경제체제 속에서 물질이 신이 되어버린 이 현대에서 아이를 양육하고 양육의 환경이 되는 가정을 돌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가정주부와 연관되는 단어들로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면 현대인에게 가지는 의미를 우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경력단절, 가정주부의 시급, 어린이집 교사처우 및 사건사고 등에서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보육과 양육은 "신성시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이 아닌 보육을 말하는 것이다. 한 생명을 낳고 기르는 것, 피흘리지 않고 키울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어머니의 이름은 현대에 와서 낮아졌는가? 나는 두 가지, 자아정체성과 물질에 두고 싶다.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은 자신의 시간, 에너지, 감정, 의지 등 수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태중에 품고 있는 것보다 더한 자기포기가 없으면 제대로 된 양육이 불가하다. 그런데 현대인은 그것을 "어린이집"으로 대체하려고 하고, 어린이집의 처우는 가장 낮은 상황 가운데 있다. 즉 나의 자아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물질로 향하고 있으며, 그런 길을 걷기 위해 보육과 양육은 가장 처우가 낮은 곳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부모가 필요하다. 어린이집을 평가절하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보육과 양육의 주체는 부모와 가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육과 양육으로 경력이 단절되고, 수많은 것들을 포기한다고 하지만, 그 생명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신자로서 그 생명의 구원의 확신을 믿어 유아세례를 받게끔 하는 부모라면 이 믿음 가운데 가장 우선순위를 보육과 양육에 둘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은 이 가운데 책임져 주실 것이다. 나의 자아를 말이다.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셀라 (시편20:1-3)

 

경력단절을 복구시켜 주실 것이고, 나의 낮아진 정체성을 회복시켜주실 것이며, 나의 에너지와 의지, 시간을 돌려주실 것이다. 물론 물리적인 복구가 아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뜻으로 신비한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더 귀한 것들로 채워주실 것이다. 때문에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시편20:7-8)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하나님은 그가 택하지 못한 병거와 말을 주시지 않았다. 오히려 승리를 주시어 서있을 수 있게 하셨다. 그 방법은 "하나님, 내가 물질을 포기했으니 하나님이 물질을 주소서."가 아니었다. 물질 대 물질이 아닌 물질 대 승리라는 차원이 다른 구도가 그에게는 있었다. 그렇다. 나는 이 시편 20편에서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 기억이 난다. 칼과 방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워 나가 골리앗을 물리친 그 사건 말이다. 그 싸움에서 싸운 주체는 누구인가? 다윗인가? 아니다. 하나님이셨다. 경제만능 현대사회에서 인간을 키워내는 싸움에서 싸움의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생명을 가장 고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 생명의 성장을 나몰라라 하실 분이 아니시다. 때문에 양육과 보육의 주체가 경력단절된 나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시21:3)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밝힌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이 구원을 이르는데 있어서 바울은 "경건, 단정, 고요, 평안한 생활"을 필수로 두고 있다.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딤전2:3)이라 말한다. 이에 따라 남자는 분노와 다툼보다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기를, 여자는 꾸밈보다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기를...그래서 모두 단정과 고요의 삶을 추구하기를 권면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다. 자아확립, 비전추구,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으로 고요한 삶을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이며, 이것이 가정으로 와서는 부모의 양육이 될 것이다.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부모를 바라보며 성장하는 아이와 경제논리와 학업에 찌들어 살아가는 아이... 그 갈림길에서 슬기로운 신부가 되길 소망한다. 

 

경력단절의 끝판왕은 누군가? 신이였다가 인간이 되고, 인간 중의 사형수가 된 예수 그리스도 아닌가. 하나님은 그 분을 다시 높이셨다. 그 머리에 관을 씌우셨다. 그의 자존감과 정체성은 하나님이 책임지셨다. 복음의 길을 따르는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 복음의 길을 예비한 그리스도를 찬양할 수 밖에 없다. 아멘. 그의 신부가 되어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생각하는 현대인이 되어야겠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잠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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