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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_GH/칼럼_H

하나님과 장거리연애 중

by 우루사야 2021. 6. 29.

무언가 건드려서는 안되는 영역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욕구로 키우고, 나중에는 탐욕으로 발전시키고야 만다. 그래서 선악과 사건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민수기 17-18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고라당의 제사장 직분에 대한 욕망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함이 아니라 백성 중에 종교적 지도자가 되겠다는 욕망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들이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1년 전 출애굽할 때 모세가 지팡이를 가지고 아론과 함께 바다를 가르고, 만나를 내리고, 물을 내는 것들을 보며 호기심과 신앙을 키웠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지점에서 "자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사고를 치고 만것이다. 건들려서는 안되는 영역을 건드린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분명한 선을 가지고 계신다. 그 분은 사랑으로만 계시는 분이 아니다. 아니,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관계의 지속이고, 관계의 연속을 위해서 "분명한 서로에 대한 차이와 선"이 존재해야 하며, 사랑하는 자는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더 사랑할 수록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지키고자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소에 나아올 자 아론, 그리고 성소기물은 만질 수 없으나 도울 수 있는 그의 아들들, 그리고 성막 일을 돕게 될 아론의 친척 레위지파들로 구분하셨다. 그리고 레위지파는 추후 정복전쟁에서 지분이 없되, 10%의 헌물을 받아 생활하게끔 선을 그어주셨다. 하나님과 인간사이, 인간과 또 다른 인간의 사이의 선을 만드신 것이다. 

사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선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오래가는 친구가 누구인가? 서로 속속들이 알고 있는 친구가 아니다. 서로의 선을 존중하며 알것과 모를 것을 구분하며 존중해주는 사이 아닌가. 그래서 서로의 치부, 비밀, 아픔들을 더 알려하기보다는 아는 선 안에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돕는 사이, 그런 사이가 오래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 그 타인에게 맡겨두는 것, 즉 거리를 둬주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다. 물론 도움을 요청할 때 반응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그 시발점은 문제 당사자여야하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인 것이지 그 문제의 당사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이 지혜로운 사랑이다. 

다윗은 그런 점에서 친구들에게 뒤통수를 너무나도 많이 맞았다.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13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시55:12-13) 그들은 다윗이 가지고 있는 선을 넘어도 너무 많이 넘었다. 뒤통수를 치고 약속을 배반하고 그를 험담하여 사회에서 단절시키려 하였다. 인간관계는 영원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편할까? 아니다. 거리를 두고 믿지 않는 것이 지혜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죽도록 사랑하셨지만, 관계함에 있어서는 거리를 두시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다윗은 배신한 친구들에게 복수를 다짐하지 않는다. 거리를 둔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서 거리를 둠으로써 사회에서 단절되지 않게끔 처신하였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55:22)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함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믿음과 거리이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하나님께 무작정 나아가서는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쳐서, 그 분을 통해서 나아갈 수 있다. 즉 믿음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항상 믿지 않으려는, 내가 나의 주인이 되려는 마음을 처리한 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번거롭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사7:9)

결국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믿음(거리에 관하여)과 사랑(깊이에 관하여)의 방정식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마치 장거리연애 또는 주말부부일수록 더 애틋해지듯이 말이다. 믿음이 있는 커플에게 주어지는 시련 뒤 찾아오는 기쁨일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과 장거리 연애중이지 않은가. 만날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믿고 신뢰한다. 그리고 추후 만날 약속을 기대하고 있다. 저 천국에서 그 분을 만나 서로 뒤엉켜 사랑할 그 날을 고대하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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