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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_GH/칼럼_H

분수를 알면 구덩이에서 나옵니다.

by 우루사야 2021. 6. 25.

복음은 내가 건져냄을 받을 것이라는 소식이다. 좋은 소식이지만, 문제는 현재 내가 추락해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복음의 시간적 갈등 속에서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이라는 시간적 개념에서는 풀어내야 할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항시 "추락해 있는 존재,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민수기 16장을 보면 고라파 무리들이 모세를 대항하는 사건이 등장하는데 시편 52-54편은 시대는 달라도 많은 것들을 공감하며 함께 읽을 수 있는 본문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시54:1)

모세는 제사장직을 요구하는 고라파 무리들에 대하여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인데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힘이 필요했다. 하나님이 직접 대답해주셔야 하는 문제였다. 누가 주제와 분수를 넘어서고 있는 것인지 하나님이 말씀해주셔야 하는 문제였다. (민16:6-7)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시52:1)

고라와 무리들은 악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이 높은 위치에 오르고자 하는 계획이었다. 스스로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기대하고 의지해야 한다. 그것을 의지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시52:5)는 말씀을 겪게 된다. 고라파 무리들은 그렇게 지진 속에서 멸절 당하다 못해, 집안 모두가 뿌리가 뽑혀 살아있는 것 같은 땅의 지진 속으로 파묻히게 된다. 결국 하나님은 고라파 무리들을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라 지진을 통해 사람과 물건 모두 멸절시키심으로써, 모세와 아론에 대한 권위와 함께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권위를 무시하지 말 것을 분명하게 하셨고, 그 증거로 죽은 자들의 향로를 제단에 덧입혀 아무나 제사장직을 감당할 수 없음을, 하나님의 선택한 거룩하고 구별된 자만이 할 것을 명시하셨다. 

우리는 가끔 우리의 분수와 주제를 넘어서는 욕망과 욕정, 탐심으로 가득찰 때가 많다. 그것은 재물이 될 수도 있고, 자존감이라고 합리화시키는 자기명분이 될 수도 있고, 권력 파워게임, 밀당 등 감정의 문제일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나 스스로의 악한계획의 위험을 항상 감지하고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어느샌가 스스로의 계획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나 혼자로 끝나지 않는다. 문제는 주변으로 퍼져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민수기 16장 이스라엘에게도 마찬가지다. 고라파 일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민심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수근대기 시작했고, 다시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그 때 모세의 심정이 어땠을까?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시53:2-3) 악은 이렇게 백성에게 퍼져나갔다. 그들은 두려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였다.(시53:5) 악한계획을 넘어 이제 스스로 두려워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마음의 중심과 믿음의 기둥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렇게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다. 말 그대로 정신차릴 수 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나이다 주께서는 내 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시리니 주의 성실하심으로 그들을 멸하소서 (시54:4-5)

스스로의 계획으로 악한 마음을 지속하고자 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둔감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도 자신의 두려움과 생각을 내세울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할 대상이 없는데도 두려워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끝없는 지옥같지 않은가. 끝없는 세상근심, 걱정, 불안, 염려... 이 마음의 지옥을 끝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길 밖에 없다.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분을 의지하는 것이 우리가 유일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뵈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려웠고 무서웠고 망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화를 입고 망하게 되었구나. 내가 스스로 입술이 더러울 뿐만 아니라 입술이 더러운 사람들 틈에 끼어 살면서 전능한 여호와이신 왕을 보았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사6:5)

하나님을 두려워하던 이사야는 유다를 향한 심판의 메시지를 받는 사명자가 된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안 이사야는 이렇게 살 길을 찾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라는 구렁텅이에서 나와야 한다. 내가, 자존, 자립, 스스로... 1인칭적인 시점은 하나님이 있을 때 빛을 발한다. 우리의 1인칭은 하나님을 통해서 서게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마음은 은혜로 강하게 하는 것"이라 말했다.(히13:9) 하나님이 구원해주신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성령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 이것들로 철저히 비참한 나 자신이 용기를 얻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계획이 아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도 자기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문 밖에 계신 예수님에게 나아가서 그분이 겪은 수치를 함께 당합시다 (히1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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