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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_GH/칼럼_H

추락하며 얻는 믿음

by 우루사야 2021. 6. 23.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민14:22-23)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들을 향해 하나님이 어떤 마음을 가지시는지 옅볼 수 있는 본문이다. 약속은 서로간의 신뢰에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약속을 믿지 않거나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신뢰가 없다는 본인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종교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즉 복음"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약속,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속하셨다는 그 약속을 오늘 실제적으로 살아내고 있는가? 

 

사실 지금 한국기독교는 상승곡선보다는 하향곡선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조심스럽다. 하나님이 교회를 어떻게 인도하실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허나 분명한 것은 이번 코로나 상황 속에서 교회의 모습은 자신들을 돌아보기 보다는 정부를 탓하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교회 자신을 돌아보았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다. 

 

아직도 많은 내 주변 목사님들이 개척을 하신다. 소명과 사명을 가지고 나아가신다. 복음을 믿는 자들의 용기있는 발걸음이다. 그러나 막연한 부푼꿈을 가지고 개척을 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낸다. 지속성과 연속성을 가지기 힘든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더 큰 물줄기를 바라보며 교회를 이끌어야 할 교회의 장로이다. 가르치는 장로뿐만 아니라 다스리는 장로로서의 "목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큰 물줄기, 즉 현실과 구속사 두 가지의 눈을 가지고 교회를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 

 

출애굽 1세대는 가히 상승세를 타던 이스라엘 세대이다. 노예신분에서 한 국가를 건설해내는 "개국공신세대"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들의 관점, 경험, 생각, 주관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무시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추락하고 말았다. 결국 그들의 추락은 자신들의 자녀세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다짐하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민14:34b) 너무나도 무서운 말씀이다. 우리 부모님이 만약 나를 혼낼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트라우마로 남았을 정도의 섬뜩한 표현이다. 그래서인지 이스라엘 백성도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고 용서를 구하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정성을 보이고자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마음을 접고 가나안 땅으로 진격한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그러지 말라고, 광야로 들어가라고 하셨는데 그걸 어기고 만다. 또 자신의 생각, 감정, 경험, 주관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그들이 그래도 산 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아말렉인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 (민14:43-45)

 

결과는 처참했다. 성경은 그 구절을 1구절도 안되게 짧게 처리한다. 불순종의 결과의 2차 결과는 불보듯 뻔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요즘 나의 삶에 대해서 한계를 정하고 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큰 꿈, 막연한 사역 등과 같은 것들은 처내고 있다. 왜냐하면 큰 물줄기를 볼 때….지금 교회는 자숙해야 하는 시간이다. 지역사회에서 남몰래 선행을 해도 의심을 받는 시기이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조심해야 하는 시기이다. 가나안으로 가지 말고 광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민14:33)

 

광야에서 40년, 약속을 어기게 하고 악평을 한 10명의 정탐꾼이 정탐한 시간 40일에 맞춰 1일에 1년씩 40년, 그들의 시체가 썩어 없어질 시간… 이 시간 동안 하나님은 2세대에게 광야생활을 하라고 하신다. 그럼 가야 한다. 그게 그들이 살 수 있는 길이다. 이것은 개국 때와 마찬가지로 폐국때에도 마찬가지로 있었다. 바로 예레미야 시대에 있었다. 

 

내가 온 유다를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그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겨 칼로 죽이리라 내가 또 이 성읍의 모든 부와 그 모든 소득과 그 모든 귀중품과 유다 왕들의 모든 보물을 그 원수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그것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가리라 (렘20:4b-5)

 

이 때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잡히게 된 원인에 대해서 하나님은 "거짓예언을 들은" 것 때문이라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회개하지도 괜찮을 것이고, 우리의 생각대로 이 대로 있어도 괜찮을 것이고, 잘못은 정부에게 있으며, 우리는 우리가 하던대로 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거짓예언을 말이다. 우리는 왜 코로나가 터졌는지, 코로나 때문에 교회가 이렇게 힘들어지게 되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에 시편 50편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 하나님이 오사 잠잠하지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위 하늘과 아래 땅에 선포하여…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편 50편은 하나님을 향한, 또 그 분의 약속을 향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 자세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떤 생각을 가지시게 되는지 너무나도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하나님과의 약속, 관계, 신뢰를 져버리는 것에 대해 하나님은 "제물"은 필요가 없다, "번제" 즉 예배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고자 하는 마음이 먼저라고 분명하게 말해주고 계신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사야 때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사3:8) 이사야 때에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은 이스라엘의 결과가 결국 예레미야 때에 마지막 최후통접으로 주어졌고, 그래도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의 죄를 감당해내신다. 우리의 죄의 결과인 죽음, 멸망, 타락도 감당해내신다. 그래서 아담때까지 감당하시니, 우리 모든 인류를 하나님은 구속해내신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사4:2-4)

 

하나님의 구속의 약속은 심판의 때에도 주어진다. 그 심판 이후까지 감당해주신다. 우리의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약속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1-2,6)

 

약속에 대한 믿음은 여행이다. 왜냐하면 아직 내 손에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착하지 않은 여행길이기 때문이다. 여행이 끝나는 것은 집에 도착해야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중간에 나그네로 살아가게 한다. 하나님은 그 나그네 일 때의 우리의 삶의 자세를 보시는 것이다. 약속의 도착지를 가고 있는 것임을 믿으며 걸어가고 있는가, 약속이라는 큰 물줄기를 따라가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주관과 생각만으로, 자신의 열정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3-16)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였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11: 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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