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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여호수아_가나안을 에덴으로

수 3:1-8

by 우루사야 2022. 1. 6.

1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2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4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5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6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7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8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여호수아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한 걸음씩 천국으로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길은 반드시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이 있습니다. 오늘도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하심이 내 인생 속에 있음을 믿고 깨달으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시길 소망합니다. 1절입니다. 

1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여호수아는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자리에 일어나서 요단강을 건너기로 합니다. 요단강 부근 10km에 위치한 싯딤이라는 곳에서 정리하여 요단강 코 앞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리더들을 통해서 "어떻게 요단강을 건널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해줍니다. 2-3절입니다. 

2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3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는 방법은 "언약궤"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써주신 십계명 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항아리가 들어있는 언약궤였습니다. 약속의 상자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였습니다. 그것을 따르면 그들은 요단강을 충분히 지날 수 있을 것입니다. 
강을 건넌다고 하니 우리가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홍해를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그 홍해는 노예에서 자유인으로의 발걸음이었습니다. 이번에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광야의 방랑자에서 가나안 땅의 주인국가로의 발걸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너희에게 줄 것"이었습니다. 즉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라는 국민, 영토, 주권이 있어야 합니다. 홍해를 건너면서 자유인이 된 그들은 주권을 얻었습니다. 이번에 그들은 요단을 건너면서 영토를 얻음으로 "한 국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이루시는 맨 앞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뜻하는 언약궤가 있었던 것입니다. 4절로 이어집니다. 

4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언약궤와 이천규빗, 그러니까 800미터 정도 떨어져서 오게끔 합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언약궤가 앞서 요단강에 어떻게 길을 내는지 보고 건너라는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갈길을 알지 못하는 인생을 삽니다. 그 누구도 어른을 경험해보고 어른이 된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을 경험해보고 죽음을 맞이하는 자도 없습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길"을 걷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미리 앞서가심"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시는 섬세한 인도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우린 따라가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은 "상자"를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미련한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온 인류가 생기기도 전에 하나님과 예수님은 "언약"을 하셨습니다. 예수가 인간이 되어서 인류가 가보지 못한 그 길을 잘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을 말이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예수님은 인류를 인도해오셨습니다. 태초때로부터 예수님은 빛으로 인류를 이끌어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게 말이죠. 그래서 구약에는 예수님으로 표현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아담이 입은 첫 가죽옷, 노아의 방주, 모세의 언약궤와 성소, 아브라함이 바친 이삭, 솔로몬의 성전 등이 모두 예수님을 잘 따라오라는 표시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치 이스라엘이 상자를 따라가듯이, 우리는 눈으로 본적이 없고 지금 내 손에 없는 것을 믿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 관계는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과 신약이라는 "나를 향한 강력한 약속"을 통해 예수를 현대에 와서도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예수가 내 인생길에 먼저 앞서가고 계심을 믿으시며, 그 분을 따라 오늘 하루의 결정, 오늘 하루의 일과를 살아내시기 소망합니다.

그 길을 따를 때 여호수아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 말해줍니다.  "5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세상이 도저히 줄 수 없는 은혜의 길, 그것은 인간의 손과 노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먼저 가신 그 길을 따라 갈 때 우리는 기이한 일, 기적,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그 놀라운 신비한 개입으로 우리의 인생이 풀어지는 것을 경험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따르기 위한 마음과 태도와 믿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이지요. 우리의 고집과 편견, 판단으로 요단강을 건널 수 없다고 지레 짐작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먼저가신 언약궤, 즉 예수를 따라 우리 인생을 걸어가다보면 반드시 "내 인생에도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이제 드디어 시작합니다. 6절입니다. "6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그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십니다. 7절입니다. "7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자신의 판단과 결정으로 좌지우지 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믿음으로 자신을 낮췄던 여호수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높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예수님의 역설적인 영적원리가 생각납니다. "12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순종하는 자를 하나님은 높여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여호수아를 높이셔서 "모세와 같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여호수아"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게 해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 입장에서보면 모세는 대선지자와 같았습니다. 가장 큰 이스라엘의 리더입니다. 아니 어찌보면 아브라함 가문일 뿐이었던 그들이었는데, 초대리더로 처음 모세가 섰고, 그의 업적은 애굽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준 것이고, 각국의 나라와 왕들에게서 전쟁에서 승리케 했습니다. 40년 광야생활 동안 굶기지도 않았고 부족함없이 있게끔 했습니다. 그런 모세였습니다. 국가의 기틀과 정체성, 방향을 잡은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의 뒤를 잇는다는 것은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로 정리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깨닫게 될 것이라고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해주시는 것이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부림을 아십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얼마나 애쓰는지 아십니다. 그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낮추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예수를 따라"가라고 하는지 우리의 마음의 감동과 놀라운 지혜를 주셔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알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걷다보면 어느샌가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보게 되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내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나를 높여주고 계심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높아지려 하기보다 하나님께 낮아져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8절입니다.  

8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세밀하고 섬세한 계획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엎드려 그 분의 지혜를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은 길을 보여주십니다. 요단강은 여호수아에게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 "믿음의 시험"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시험을 마땅히 감당할 힘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시험의 시간을 보낸 후에 하나님은 요단강을 건너는 문제해결 뿐만 아니라 더 큰 선물과 권위와 은혜를 주십니다. 신자의 삶은 이렇게 사는 겁니다. 여러분의 문제와 근심을 예수의 십자가에 맡겨놓으십시오. 그리고 그 속에서 예수의 진리와 사랑이 어떤 길로 인도하시는 주목하십시오. 주어지는 지혜와 용기로 어떤 길을 가아햘지 알려주실 것입니다. 그 길을 다 걸을 때에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과 찬송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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