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10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11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12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13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14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15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16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앞으로 바로 건널새
17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하나님의 섬세한 계획으로 이뤄진 출애굽 2세대들의 가나안 땅으로의 입장이 드디어 이뤄지는 순간입니다. 출애굽 2세대들은 이 순간을 잘 기억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부모 출애굽 1세대들도 똑같은 홍해를 건너는 사건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으로 약속의 땅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광야에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죠. 2세대들이 하나님의 기적을 허투로 보고 들으면 결국 그들도 같은 결과를 가지게 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요단강을 왜 굳이 물이 불어나있는 이 시기에 배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맨발로 건너게 하시는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9-10절입니다.
9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10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널 때 일어나는 "기이한 일"의 의미에 대해서 2가지를 말해줍니다. 10절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신 것" 하나와 두번째 "여러 족속들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 너희가 알리라"라고 해석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요단강물을 말리심으로써 이스라엘이 배도 필요없고 수영도 할 필요없이 맨 땅을 건너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힘과 주권을 보여주고자 하셨던 겁니다. 그 힘을 이스라엘에게 덧입히심으로써, 가나안 백성들의 "간담과 마음을 더 녹이고 무너지게" 합니다. 그들은 이 광경을 보며 스스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은 이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힘과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때 이스라엘은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의심해서는 안된다"라고 말이죠. 이렇게 강물을 상류에 쌓으시고 하류를 말리우시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신 분이시라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분은 책임지실 수 있겠구나라고 말이죠.
출애굽 1세대가 홍해를 건너자 마자 도달한 곳은 마라라는 곳이었습니다. 그곳 물은 써서 식용으로 쓸 수 없었지요. 그 때 그들의 행태는 단순한 불평과 불만이 아니라 "모세에 대한 원망"이었다고 출애굽기는 말해줍니다. 그 다음 행선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광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양식을 구하기 힘드니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고 출애굽기는 말합니다. 원망입니다. 왜 우리를 데리고 이 고생을 하냐는 것, 즉 자신들이 왜 출애굽을 했는지에 대한 의미를 모르거나 알면서도 별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죠.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앙을 주신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 알지 못하거나 간단하거나 가벼운 것으로 생각하면 결코 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하루를 비워 예배하고, 하나님이 주신 수입 중 십의 일을 드립니다. 그 밖에도 나의 삶과 일상에서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이웃을 바라보며 사랑하기를 힘쓰고, 나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기도 하지만 그 유익을 때때론 마음의 양심 속에서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양보하기도 합니다. 그게 힘들고 때로는 하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잠시 멈추고 말씀으로 또 기도의 시간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세상에서는 누가 시켜도 결코 안할 행동들입니다. 그런데 왜 하는 겁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함께 계시니 가능한 일입니다. 신앙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출애굽 2세대들은 세상사람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생고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1세대는 이 생고생을 왜 하는지 알지 못해 원망만 하다 광야에서 죽었지만, 2세대만큼은 그 이유와 목적을 충분히 알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여호수아는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11-13절입니다.
11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12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13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이스라엘 12지파 중 대표 한 사람씩을 뽑아 큰 돌들을 하나씩 가지고 오게끔 하여 모으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후대에 누가 이 돌의 의미를 물을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끌고 여기까지 오게 하신 것과 그 이유와 목적을 설명하게끔 했습니다. 기념비를 세운 것이지요. 여기서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 그러니까 상류에서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설"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광경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14-15절입니다.
14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15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먼저 들어갑니다. 그들의 발이 물 가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곡식을 거두는 시기라 항상 물이 불어나 넘쳐있는 그 시기였기에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은 얼마 안가서도 수심이 깊어지는 곳에 다다르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발이 물에 닿았을 뿐이었습니다. 16-17절입니다.
16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앞으로 바로 건널새17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본문은 아담성읍이라는 곳 근처에서 요단강물이 멈췄다고 말해줍니다. 마치 투명한 댐을 누군가가 쌓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거기에 물이 점점 모입니다. 상류가 그렇게 되니, 하류는 바닥을 보입니다. 하류는 염해로 흘러가는 곳이었습니다. 하류 중 하류죠. 요단강의 평균 너비가 30m입니다. 그런데 물이 불어나있는 정도로 보아 평소보다 더 많이 물이 많았다고 해도 너비가 50m 정도 되었을 겁니다. 잠실대교에 있는 한강의 너비가 800m 정도니까 아주 작죠. 그런 작은 하천이죠. 홍해정도 되는 큰 바다가 흐르는 것이 막혀 쌓이는 것 정도는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죠. 하나님이 말한대로 되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주의 섭리를 확인하는 겁니다. 그 섭리로 깨달아야 할 것은 "이민족을 몰아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믿음에 다다르게 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 장정만 60만명이니 대략적으로 200만명의 사람들이 움직였던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어쨌든 한 민족의 대이동이었습니다. 강물이 잠시 멈추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의 발이 닿자 강물이 말랐고, 그들이 다 건너자 그 강은 다시 흐르게 합니다. 강물의 수심이나 너비같은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막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을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막으셨던 하나님이 앞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심판자로써 나아갈 때 두렵고 놀랄만한 상황에서도 막아주시는 손이 되어줄 것을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은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선한 최고의 방법으로 우리를 약속의 땅,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입니다. 가장 좋은 상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장 좋은 상태죠. 그래서 우린 인생의 많은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흐릅니다. 그래서 내 상황에서 기쁨과 찬송이 터져나오게 해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사역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사역은 마침내 우리를 영원한 기쁨으로 인도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섭리로 내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풍요하고 평안한 하루를 보내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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