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막으로 들어간 모세입니다. 하나님이 금송아지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의 추악함과 교만함,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욕망만 쫓는 뻣뻣함을 목격하고 또 직면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반면에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아왔던 자의 행보를 보여주십니다. 이 자는 앞으로 이스라엘이 성막을 통해 누릴 은혜의 표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인간이 궁극적으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은혜를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여러분, 모세와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이 예수는 우리와 한지체요 우리의 대표자입니다. 우리의 대표자가 가는 길이라는 것은 우리도 나아갈 수 있고 또 나아가야 하는 길임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모세가 도달하는 지점이 우리가 도달할 지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본문을 살펴보시죠. 먼저 17-18절입니다.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금송아지 사건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시고자 하셨습니다. 네, 하나님의 절반의 마음. 즉 하나님의 공의로는 마땅한 처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반의 마음, 그들을 용서하시고 또 다시 품고자 하십니다. 그렇기 위해서 누군가 대신하여 하나님께 은혜를 구할 수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모세였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을 품고자 하십니다. 네, 하나님이 원하셨던 삼각관계입니다. 누군가 중재하고 희생하고 도와 약자요 아둔한 자가 하나님께 나오는 관계입니다. 이리하여 모세는 하나님께로 이스라엘을 이끌고 나아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은총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와의 관계에 대해서 무어라 말씀하시나요?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든자라고 말하십니다. "이름으로도 너를 안다"는 것은 잘 안다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좀 더 담대하게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합니다. "주의 영광" 과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찬란한 형상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22절을 먼저 보시죠.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특별히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일까요? 자, 여기서 우리는 조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영이심을 압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다"라는 동사가 나온다는 것은 무언가 모순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17절을 보실까요? 하나님이 모세를 향해서 "내가 이름으로 너를 앎이니라"라고 하셨죠. 하나님은 모세를 평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모세와의 관계가 원만하고 순탄하여 "모세를 잘 안다!"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해 모세가 더 직접적으로 "알 수 있게끔" 하시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22-23절에서 하나님의 손이 덮었다가 손을 거두신다는 것은 모세가 하나님을 특별히 더 많이 알고 깨달을 수 있는 특별한 조치를 취해주셨음을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23절에서 등은 보고 얼굴은 보지 못한다는 말은 하나님에 대해 초월적인 광경과 깨달음으로 알게 되지만, 하나님의 본질적인 모습과 깨달음으로는 나올 수 없음을 말합니다. 그것이 주의 영광입니다. 초현실적인 영화에서 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한번 생각해볼까요?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2)
지금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자격과 위치임을 모세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심이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운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게끔 해줍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모세에게 알려주시는 과정을 한번 보시죠. 중간에 살피지 않은 구절들입니다.
19절에서 하나님은 "내 모든 선한 것"이 모세 앞에 지나게 하시고,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시되 모세 앞에서 선포하십니다. 다만 얼굴대신에 하나님의 등, 그러니까 하나님의 직접적인 현현의 지나간 자리, 반영을 보여주십니다. 21절에서는 "내 곁에 한 장소"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물리적으로, 그러니까 영이신 하나님이 물질의 세계에 있는 모세에게 맞게끔 앞과 곁에 오셔서 모세가 인식할 수 있는 것들로 친히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단어들이나 말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가장 간단하고 직접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도록 하나님이 일하셨지요. 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우리의 대표자로 오셨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현현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않으시고자, 예수의 영을 우리 심령 가운데 보내셔서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알 수 있게끔 하셨습니다.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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