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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_GH/칼럼_H

선함의 밭을 가는 하나님의 백성

by 우루사야 2021. 4. 28.

성경에서 신앙과 불신앙이라는 구도가 많을까 아니면 선과 악의 구도가 많을까? 이것을 계수할수는 없다만 반평생을 성경을 봐온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답은 후자이다. 성경은 "선하게 살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기본적 전제로 두고 쓰여지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미 이뤄진 상태,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답이라는 구도 속에서 인간이 어떤 의지의 삶을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답은 삶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즉 인간의 의지적인 행동일찌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더 큰 틀 속에서는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개입이 여전히 남아있게 된다. 그래서 나의 자유적인 의지 뒷배경에 하나님이 계신다. 그래서 의지에 있어서 충돌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 신자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헤서 끊으려 하시는도다(시34:13-16)

 

하나님때문에 착하게 사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나의 공로, 나의 의지, 나의 노력이 되겠는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밖에 없다. 그런 신자도 살아가다보면 넘어지고 통회하고 고뇌하게 된다. 그래서 착하지 못할 때가 올 수도 있다. 그 고민의 현장이 있다는 것이다. 시편기자는 그 순간을 이렇게 말한다.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그의 모둔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시33:17-22)

 

착하게 살고자 함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타나는 행위의 결과이다. 내면의 작용이 제대로 작동하여 의지적으로 나타날 때 삶으로 이런 결과를 얻어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는 믿음 또는 신앙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하나님을 그럼 어떻게 경외할 때 이렇게 삶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이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는 양심과 말씀이 주어지게 된다. 더 적극적으로는 레위기와 율법이 있을 것이다. 레위기 27장은 마지막장이자 서원에 관해 설명하는 장이 된다.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그 우열을 가리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무르지 못하리라 (레27:32-33)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 십일조, 서원 등 하나님께 드리려는 모든 것에 있어서 사람은 경외함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시간, 재물, 관계, 재정, 의지, 감정 무엇이든지 말이다. 온전함은 경외함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바라며 드리는 것. 그 마음에 정직함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며 드리는 것이 경외함이다.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전 10:18)

 

하나님이 주신 하루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어떻게 경외함을 가지고 기쁘시게 살아낼 수 있을까? 어떤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신자답게 살아내는 것인가? 하루에 대해 성실함을 가지고 살아낼 때 우리의 인생이 새어나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인생의 지붕들이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다. 나의 부모와 자녀, 일상, 직업, 관계, 자기관리에 있어서 성실함이 요구가 된다. 그런 점에서 목사인 나는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 것인가? 신자로서 어떻게 살아내야 할 것인가? 디도서 2장은 각 성별과 노소에 따라 어떻게 살아갈지 말해준다. 그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2:5b)

 

하나님을 믿어 선하게 살아가는 자가 보이는 경외함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삶이 따르지 않을 때 주변인들은 말씀에 대해서, 동기에 대해서, 근원에 대해서 물음표를 가지게 된다. 그렇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딛2:10b)

 

아멘. 그렇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은혜로 양육하신다. 세상의 것을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채우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소망을 기대하며 살아가게 하신다. 그것을 위해 예수는 죽어주셨고 속량하셨다.(딛2:11-14)  바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2:1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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