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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_GH/칼럼_H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by 우루사야 2021. 4. 15.

부하려 하는 자들은...(딤전 6:9)

 

바울은 디모데에게 목회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편지를 쓰면서 마무리를 "태도"에 대해서 언급해주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재물관"에 대해서 경고한다. 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며 자신을 다스리고 교회를 이끌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연소한 디모데를 가르치는 것이다. 바울이야말로 경제력이 있는 가문의 자제로서 살아왔지만, 스스로 복음의 길을 걷기 위해서 가난의 길을 걸어들어간 사람이다. 그는 교회들이 서로 돕게끔 연보를 요청하며 중재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경제관념을 디모데에게서 심어주고자 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9-10)

 

왜 사람은 재물을 모으려하는가? 불안함이다. 미래에 대한 확증이 없으므로 인해 재물로 미래의 안정화를 꾀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자족하는 마음"을 주장한다.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자족하게 한다. 불안한 환경은 그대로지만 자족하고자 한다. 즉 복음이 없어 자족할 수 없는 신자는 미래의 불안함을 가지게 되고 탐심으로 가득차게 된다. 또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므로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게 된다.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의 현장에 있게 된다.(딤전 6:3-6)

 

복음이 있는 자는 자신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태어남을 인정하고,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현재의 의식주에 만족하며 자족하며(딤전 6:7-8) 오늘 하루에 집중할 수 있는 복음의 자족함으로 살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끔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복음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나는 요즘 자녀들의 장래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아내는 경제영역에서 자녀들의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은 것처럼, 나는 지적차원에서 고민을 했었다. 이제 자녀의 장래에 대해서 하나님의 복음이 다스려주시기를 다짐해본다. 자녀가 오늘 하루를 자족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고요하며 경건하게 하루를 감사하며 시작하고 서로에게 고마워하며 사랑하며 하루를 알차게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말이다. 경건을 자신의 이익으로 삼고자 하는 허망한 마음으로 가득찬 이들의 삶이 아니라, 경건의 큰 이익을 누리는 자족하는 마음이 있는 복음으로 가득찬 우리 아이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레위기 21장에 보면 제사장의 딸에 대한 규례가 나온다. "어떤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자신을 속되게 하면 그의 아버지를 속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지니라"(레 21:9) 이에 대해 박윤선 박사는 말했다. "이런 형벌은 제사직의 성경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성직자의 자녀가 불경건하면 더 큰벌을 받는 다는 진리가 여기 이 말씀에 포함되었다. 누가복음 12:28에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언약적 관계로 하나님과 결부시키며 다른 아버지의 딸보다 더 많은 요구가 제시되고 있고, 그 이유가 "많이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직자 자녀는 많이 받은 자이다. 그런데 왜 딸만 이렇게 요구되는 것일까? 아들은? 이는 "행음"이 제사매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방풍속에 여성들이 제사매춘으로 우상숭배를 가져올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여성에게만 성적순결을 요구하는 일차원적인 구절이 아니다. 여호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이방종교와의 거리를 두기 위한 제도적 영적장치인 것이다. 

 

우리 자녀들이 복음으로 자족하는 마음을 가게끔 세상의 풍속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 하나님과 누리는 자유함을 방해하는 것들을 막아야 할 것이다. 내가 보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자녀를 채워서는 안된다. 내가 이방풍속의 매개체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전 4-8)

 

과연 세상에는 끝이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있을 수가 없다. 인간의 죄악으로는 결코 끝이 없이 쳇바퀴 돌듯 계속 돌아갈 것이다. 복음은 여기서 "그만"이라고 외치게끔 한다. 왜냐하면 이미 완료된 새하늘과 새땅의 소망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멈추고 숨을 쉬고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주변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속도를 가지고 하나님을 향한 기쁨의 방향을 걸어나갈 수 있다. 

 

레위기 21장은 그 밖에도 장례를 치를 때, 제사장의 결혼, 제사장의 신체조건 등을 말하며 제사장이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로서 어떤 자여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신자된 부모는 자녀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표지가 된다. 아이가 부모의 신앙을 보고 자라기 때문이다. 나의 조급함은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 자녀들에게 오늘 할 일이라는 노동과 그 이후에 주어지는 쉼, 그리고 그것을 아우르는 자족하는 마음, 이 세가지의 기준이 되어주는 복음의 중심을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인간은 결코 하나님 앞에서 완전함을 이룰 수 없다. 다만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실 수 있는 완전함에 다다를 수 있다. 행함으로써는 미진하겠지만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성실함과 진심, 그것이 필요하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시 26:1-2)

 

하나님은 행함은 보지 않으실 뿐더러 우리의 마음가짐까지도 요구하지 않으신다. 다만 순수한 방향, 하나님을 향한 마음만 보신다. 위 성직자의 자녀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성직자 자녀에게 요구할 것은 하나님과 아버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의 언약, 복음, 영적유익을 아비는 가르쳐야 한다. 그 복음이 가득 찬 자녀는 이방우상에 저절로 참여하지 않는다. 현대의 영적흐름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과 부모, 그리고 그 속에 자신이 거한 위치와 삶의 목적의 방향,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 경건의 큰 유익이 되는 것이고, 이 복음의 원리를 깨닫는 자녀들은 미래의 불안감으로 인해 오는 여러가지 현대인이 가지는 부작용들을 저절로 피하게 되는 것이다. 돈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마음의 병, 정신, 멘탈, 결혼문제, 자녀문제 등을 해결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며 살아가는 자녀가 될 것이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시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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