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6장 시편 33편 전도서 9장 디도서 1장
벌금이나 형벌은 저주가 아니라 수혜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반응이다. 개에게 법규를 적용하지 않고 견주에게 묻듯이, 하나님은 천사나 사탄, 세상 그 어떤 피조물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신다. 인간에게 물으신다. 하나님이 준 권한만큼 존중할 의무가 인류에게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때때로 받은 권리만 주장할 줄 알지 우리의 의무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이런 성향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민할 때도 적용되어서,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포지션에 걸맞는 의무는 생각하지 못하고 권리와 혜택만 바라보려 한다. 그럴수록 하나님을 왜곡시키고 이기적인 신으로 만들어버린다.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며 내 성소를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26:2)
너희 남은 자가 너희의 원수들의 땅에서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쇠잔하며 그 조상의 죄로 말미암아 그 조상같이 쇠잔하리라 (레 26:39)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고 했다. 하나님을 안식일을 지키며 성소를 경외할 때 하나님은 철따라 비를 주시고 땅의 소산물과 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레26:4) 영적인 원리가 이러하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과의 약속을 준행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올바르게 인도해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청지기로서의 위치와 의무, 그것을 앎으로써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알게 된다.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 (레26:42)
하나님이 구원을 예정하신 이는 "양심"으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이 만물과 양심에 하나님의 뜻을 심어두셨으므로 그는 자신이 모자른 자, 죄인, 불법한 자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시33:8) 하나님의 말씀은 일반계시 속에서도 겸손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일반계시 속에서 자만한 자가 특별계시로 한 순간에 바뀌어지지 않는다.(물론 여기서 논리적인 순서와 절차의 연관성은 논해볼 여지가 있겠다.) 도덕적 상관성에서 이 두가지는 상호보완되는 것이지 결코 상충할 수 없다.
양심 속에서 두려워하며 기꺼이 낮아질 수 있는 자, 그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을 것이다."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시 33:20)
나는 요즘 병렬독서로 C. S. 루이스이 영광의 무게와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을 함께 읽고 있는데, 두 책에서 모두 "일상"으로부터 책을 시작하고 있다. 전시에 학문추구의 명분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 속에서 루이스는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께 영광됨이며 이것을 추구하는 것이 천국에 가까움임을 변증하고 있다. 카네기는 성경 여러구절을 통해서 과거에 대한 책망과 미래에 대한 염려보다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시33:12)
자신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에게 복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어찌보면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은 우리가 강조해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정이고 구심점이지 출발과 결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모든 영광과 집중을 하나님께 맞추게끔 하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전 9:1)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위치, 그 위치에서 주어지는 권한으로 살아가는 청지기. 그것이 인간의 삶이다. 인간을 그 밖의 것으로 설명하고자 하니 부족할 뿐이다. 하나님이 위임해주신 권한과 의무로 살아가는 일상, 그것을 성경은 가장 큰 행복으로 말해주고 있다.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네 의복을 항상 희게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전9:7-10)
왜 솔로몬은 "사랑하는 아내"를 콕 찝어 언급했을까? 부모가족 또는 친구, 또는 다른 어떤 사람이 아니라 말이다. 타인이면서 혈육이 되는 존재는 부부이다. 하나님의 형상되는 이와 하나가 되어 생명을 낳고 서로 사랑하며 의식주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삶의 기쁨이자 영위할 수 있는 영역이리라. 그런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복음은 증대되며 확증되고 번성하게 된다.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딛1:2a)
바울 또한 하나님의 이런 섭리와 인도하심 속에서 디도에게 편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의 모습을 그리는데 있어서 교회의 리더인 장로를 이렇게 세우라고 말하고 있다.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딛1:6-9)
이제 글을 마쳐보자. 서론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우리를 꾸짖으시는 것은 우리의 입장을 생각하게끔 한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 위치에 걸맞는 행동을 살아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권한이라는 위엄한 것을 가진 자로서 말이다. 그 속에서 양심에 정직한 자로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일상을 살아낼 수 있어야 하겠다. 오늘 하루도 그러한 삶을 살아내길 소망한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딛1:15)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시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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