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개론에서부터 조정석 배우를 알게 된 나는 멋스러운 조정석 배우보다는 소탈하고 웃기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특히 그가 영화에서 남녀간의 키스를 친구에게 설명하는 부분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의 표현력을 가지고 재미지게 씬을 찍었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 뇌리 속에 남게끔 했다. 그만큼 그가 설명하는 "키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잘 설명했기 때문이다. 키스는 남녀가 하나가 되어가는 스킨쉽이다. 관계는 그런 것이다. 말과 몸이 섞이고, 생각과 느낌을 나누며, 함께 무언가를 공유하는 것. 그렇게 하나하나 나누면서 관계는 형성되어간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출애굽을 하여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성막을 다 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민수기 7장에서 봉헌식을 거행한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헌물을 요구하신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지휘관들은 하루 한 사람씩 제단의 봉헌물을 드릴지니라 하셨더라" (민7:11) 12지파의 대표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모두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신 것이다.
사람의 행복과 위로는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겠는가. 세상을 만드시고, 자유의지라는 위엄한 권위를 인간에게 부여하시면서도, 독생자로 하여금 인류가 죄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 다시금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라는 위대한 자리에 오르게끔 하셨다. 이것은 현대가 의미하는 행복으로 말할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구속의 계획이자 완성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3:5)
관계를 유지하는데에는 많은 갈등과 고난, 의심, 신뢰의 깨어짐, 불신, 장애물 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시간 속에서 여전히 소망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면 만날 수록 그분과의 사랑의 관계는 더 견고해진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왜 이리 신앙에 몰두하는가라고 물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할 그 무엇도 찾을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여자들 가운데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내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많은 사람 가운데에 뛰어나구나(아5:10)
그렇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가 그 분께 드리는 것에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표현을 우리가 생각할 수록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우리에게 주셨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록 그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기꺼이 그 분을 섬기고 관계하고 사랑하면서 고난받으며 순종하기로 결단하게 된다. 억지스러운 순종은 금방 깨어지기 마련이다. 위선된 신앙은 결국 무너지기 마련이다. 허나 만나고 교제하고 교류하고 함께 공유하는 관계이자 신앙은 결코 깨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온전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라면 더욱 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으로 사랑하는 자가 된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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