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명문대학들 중에 유명한 곳을 꼽으라면 하버드가 있겠죠. 입학처 홈페이지에 하버드가 바라는 인재상을 "기여할 줄 아는 자"로 명시해놓았습니다. 사회에 무언가를 공헌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최고의 인재상으로 두고 있고, 그런 사람을 키워내기 위한 학교의 가치와 방향을 엿볼 수 있을 겁니다. 성경에서 바라는 인재상은 무엇일까요? 이와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무언가를 주기 위해 일하시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하나님의 종도 그러한 태도와 방향을 자연스레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의 기도가 등장합니다. 자기자신을 위한 개인적인 기도가 아니라 유대민족을 향한 회개의 기도입니다. 성경에서 많은 이들이 나라와 민족의 죄를 자신의 죄로 삼고 하나님께 나아갔던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기도문을 통해 우리 또한 하나님의 종으로써 이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5절에서 이사야는 기도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기도의 대상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먼저 고백합니다.
1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2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3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4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5a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여러분, 예수님도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먼저 부르게끔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드리는 대상이 어떤 존재인지 우리 스스로 돌아봄으로써 올바른 기도신앙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사야는 지금 두려운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하나님이 임해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산이 진동하고 하늘이 갈라질 만큼 하나님의 임재는 이 땅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위엄있는 사건이 될 것입니다. 자연만물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원수들과 하나님의 일을 방해했던 이방민족들이 떨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4절에서 이사야는 또 다른 하나님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해 이런 일을 행하시는 분"이라고 말이죠. 이런 신의 모습은 인간이 만들어낸 우상이나 신화에서 등장한 적이 없습니다. 사랑하기 위해 위엄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시는 신 말이죠. 여러분, 성경에서 소개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사랑하기 위해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주시면서 이겨낼 수 있는 지혜와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우리가 흠없는 자녀로 성장할 수 있게끔, 영혼과 마음이 하나님을 닮을 수 있도록 이끌어가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셨습니다. 문제는 유대인은 그런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을 경험해놓고서도 따르지 않는 다는 것이죠. 기도의 첫번째 순서인 하나님을 향한 고백에 이어서 두번째는 기도하는 나 자신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다른 나의 모습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죠. 5절 하반절부터 봅니다.
5b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6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7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8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두 가지 모습으로 고백했듯이, 자신과 이스라엘을 두 가지로 표현합니다. 먼저는 죄를 지은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선대하셨음에도 그것을 거절하며 제멋대로 나아간 자들입니다. 사실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자신이 틀렸다는 생각 조차를 하지 않습니다. 자기자신이 옳다고 인간은 항상 생각하기 때문이죠.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인간은 살 수가 없습니다. 내가 틀린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곧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죠. 그래서 인간은 합리화를 해서라도 자기자신이 옳다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킵니다. 그렇다면 기도하는 자는 어떤 자입니까? 자기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께 자기자신을 맞춰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자가 기도하는 자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과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합니다. 5절에 보니 하나님을 배반한지 오래이고, 죄악이 몰아가는대로 살아갈만큼 죄와 친숙한 자가 되었다고까지 말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그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지 오래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한가지를 더 추가합니다. 아무리 인간이 자기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제멋대로 자신이 옳다고 하며 살아갈찌라도 인간은 인간, 즉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9절과 같이 기도제목을 꺼냅니다.
9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10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나이다11우리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가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폐하였나이다12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 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다스려주시기를, 회복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용서를 허락하시어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이 회복할 수 있도록 말이죠. 여러분. 이 나라와 민족. 그리고 한국교회와 행복한교회. 우리 가문과 가정을 위해서 내가 먼저 기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종"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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