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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이사야서(40-66장)_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 63:7-19

by 우루사야 2024. 7. 22.

하나님의 심판 이면에는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이 숨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행하심 뒤에 항상 하나님의 사랑이 의도되어 있음을, 숨어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자발적인 불의와 반항, 불순종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합니다. 7-10절을 보시죠. 

7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8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9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10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자비와 사랑이었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그 사랑은 하나님의 종들을 거짓을 행하지 않는 자녀로 만들게 합니다. 네, 하나님은 참의 하나님이시기에 그의 자녀요 종들에게 거짓이 있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9절과 같이 "동참하시는 분"이십니다. 거짓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참된 사람"이 되게끔 동참하십니다. 그것을 위해 자비와 사랑으로 하나님의 종들을 보살피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11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 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12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 그의 이름을 영원하게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시고13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시되 광야에 있는 말 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14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역사하셨던 하나님 지금도 그렇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그 때와 같이 일하시옵소서. 물론 그 때와 같이 똑같은 방식으로 일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때 일하신 섭리와 지혜로 지금도 일하고 계심을 믿으며 그 분을 발견하기를 찾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것은 부적이 아닙니다. 예수가 하신 일을 믿음으로써, 지금도 그렇게 일하실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죠. 2000년 전에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희생하신 그 효력이 지금 나에게도 동일하게 이뤄지고, 예수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부활승천하신 것이 예수와 한몸된 나와 교회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날 것이라는 고백이 담겨져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결코 허황되거나 무지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성삼위 하나님이 하신 일에 근거하는 신앙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전에 그렇게 일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그렇게 일하실 수 있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몇천년전에 일어났을지 알지못할 일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도, 우리가 그 사건을 지금 나에게도 대입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동일하신 성실과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있는자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죠. "하나님, 나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느껴지지 않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나타나실 줄 믿습니다. 나타나시옵소서." 그 기도가 15절로부터 이어집니다. 

15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16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17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종들 곧 주의 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18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원수가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19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차지할 그 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의 성소를 유린하며 예루살렘을 차지할 그 날을 말이죠. 이사야 선지자는 그 때 이스라엘이 주의 길에서 떠났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 그럼에도 이사야 선지자는 16절과 같이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고백합니다. 심판을 당하고 고난과 역경이 나의 죄때문에 일어났다 치더라도,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갔듯이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다시금 안길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올릴 수 있었던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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