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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이사야서(40-66장)_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 46:1-13

by 우루사야 2024. 6. 20.

혹 떼러 갔다 혹 붙여 온다는 속담을 아실 겁니다. 이익을 보려고 했다가 도리어 해를 당하거나 손해를 보는 경우를 뜻하죠. 우상숭배가 딱 그러합니다.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내 마음의 중심에 두었던 것이 어느샌가 나의 주인행세 노릇을 하며 나를 옥죄게 하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렇습니다. 참신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지만 거짓신은 우리에게 혹이 되고 짐이 됩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우상들을 짐이라고 표현하십니다. 1-2절입니다. 

1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렸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들이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2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들도 잡혀 갔느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지금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의 신 벨과 느보를 향해 숭배를 강요당할 것입니다. 그 후에 바벨론은 고레스로 인해서 파괴될 것입니다. 그 때 우상이 얼마나 아무런 힘이 없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끌려갔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들고 신앙을 지켜내 할 것입니다. 벨과 느보에 대한 신앙이 온 나라를 뒤덮을테지만, 그것이 어떻게 무너질런지 얼마나 무거운 짐짝밖에 안되는지를 하나님은 미리 알려주시며 그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재물과 하나니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우상의 재료가 나무인데 나무는 고대에 요긴한 재료였죠. 마찬가지로 현대에 가장 요긴한 재료는 돈입니다. 그러나 그 돈에 의미를 부여하여 신과 같이 섬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것이 과해질 때는 본문과 같이 우상과 함께 일제히 엎드러져 함께 망할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3절부터 짐짝밖에 안되는 우상과 참신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십니다. 

3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4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5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참신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을 창조하고 길러내고 인도해냅니다. 짐짝이 되는 우상과 다르게 짐을 들어주시는 부모와 같습니다. 어린 자녀가 들기 힘들어하는 문제, 걱정, 염려를 대신 짊어져주는 어른입니다. 4절 하반절에 보니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과연 우리는 누구를 내 마음의 신의 자리로 초대해야 할까요? 우리 스스로 고민해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짐이 되는 존재인지 아니면 나를 짊어지고 인도하고 있는 존재인지. 여러분의 마음의 신의 자리에는 누가 앉아있습니까? 여러분은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가십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말과 행동의 출발점이 됩니까? 6-8절입니다. 

6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도금장이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며7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 있고 거기에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하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8너희 패역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이 일을 마음에 두라

대대로 인류는 우상을 만들어왔습니다. 우상의 형태는 달라져왔습니다. 재료나 디자인도 그렇지요. 시대상마다 바라고 원하는 바를 투영한 모습으로 바뀌어 왔습니다. 공통점은 "인간이 원하는 모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불안과 초조를 우상을 만들어 세움으로써 해소시켰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우상을 높이고 아끼고 예배까지 합니다. 자신의 의미부여로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다짐하기까지 합니다. 이 얼마나 미련한 소통입니까? 스스로 짐짝을 만들어 스스로 고통당하는 일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 분"으로 소개하십니다. 9절부터입니다. 

9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10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11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12마음이 완악하여 공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내게 들으라13내가 나의 공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그것이 멀지 아니하나니 나의 구원이 지체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일으키시고 행하시고 완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전에 행하신 일들을 기억해내라고 하시죠. 그런점에서 우리의 태도에 대해서 지적하십니다. 12절을 보니 "마음이 완악하여 공의에서 떠난 너희여"라고 이스라엘을 부르십니다. 내가 마음을 닫고 내가 만든 우상에 갇혀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목격할 수 없습니다. 그 일이 어떤 의미를 이루는지 깨닫지 못하고 기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귀인을 부를 것이라고 미리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렇듯 우리에게도 귀인을 하늘로부터 불러서 내려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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