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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이사야서(40-66장)_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 45:9-19

by 우루사야 2024. 6. 18.

미리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세워 일하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도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먼저 보시죠. "15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영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관점, 구속사의 눈, 창조와 종말의 시간표 속에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땅의 기준, 돈의 관점, 세속의 상황에서 볼 수도 또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눈으로 볼 수 없게 하나님은 스스로 숨어계십니다. 영의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 찾으라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바벨론포로로 잡히는 것도 통탄할 일인데, 또 다른 정복자 고레스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자유를 얻는다?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에게는 가려지고 숨겨진 놀라운 지혜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관계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9절부터 보시죠.  

9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10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11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여기서 질그릇과 토기장이가 등장합니다. 무생물과 자유로운 인간이 등장하죠. 그것이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세상사에 대해서 전권을 쥐고 계십니다. 지금도 이 세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인도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묻는다는 것이죠. 9절을 보니 "그는 손이 없다!"며 마치 하나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분으로 대하는 것이죠. 왜 하나님이 이렇게 세상을 인도하시냐고 묻는 것은 마치 그릇이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자녀가 부모에게 "왜 나를 이렇게 낳았냐고" 묻는 폐륜적이고 비상식적인 질문이요 논리구조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은 인간은 "너 자신을 알아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차이를 아는 자는 하나님께 결코 그런 질문을 던지기 전에, 하나님의 방향에 동참하기에 바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하나님께 불평이 나올 수도, 불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과 불만도 급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인정하면서 따라가는 불평이 있고, 하나님을 떠나면서 하는 불만이 있습니다. 지금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이렇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부정하며 불평을 꺼내놓고 있는 것이죠. 아브라함을 생각해볼까요? 겨우 얻은 생명보다 귀한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기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왜 그 마음에 불평과 불만이 없겠습니까?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에서 죽는 그 시간에 대해 끝까지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기도하셨어요. 아브라함도 예수님도 이런 마음이셨다면, 우리도 충분히 하나님의 계획과 다른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 안에서의 불평과 불만입니다. 믿음 안에서 이런 마음은 하나님이 충분히 만져주십니다. 다듬어 주십니다. 평안과 지혜와 소망, 기쁨을 주셔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떠나서 하는 불평과 불만입니다. 이것의 문제는 하나님 위에 올라서서 불만을 표출한다는 것이죠.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현저히 낮은 위치인지, 얼마나 하나님이 배려하고 계신지 모르고 하는 불평이기에 그 끝과 결과는 참담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 관계에 대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절부터입니다. 

12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13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갚음이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14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소득과 구스가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남자들이 네게로 건너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고레스를 일으키셔서 나라들을 정복하고 나라와 나라경계를 다시 설정하실 것입니다. 네, 고레스는 하나님의 청지기요 대리통치자 역할을 할 것입니다. 거기서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아무 영향력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네, 출애굽 때였습니다. 그 때를 기억해보라며 하나님은 14절에 애굽, 구스, 스바를 언급하시죠. 그 때 이스라엘은 10가지 재앙이 일어날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재앙받지 않고 애굽만 받는 그 현장에서 말이죠. "3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출11) 나중에는 애굽인들이 이스라엘인들을 두려워하여 은금보화를 바치기까지 했습니다. 더 나아가 출애굽 할 때 많은 이민족이 이스라엘에게 속하여 함께 출애굽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높이셨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이 한 것이 없으면서도 하나님은 한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이 출애굽때에나 본문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고레스를 일으키셔서 역사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아닙니까? 이것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인데, 어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해 가타부타 묻거나 따질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이런 지탄을 받게 됩니다. 16절부터입니다. 

16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17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18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19나는 감추어진 곳과 캄캄한 땅에서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혼돈 중에서 찾으라고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한 것을 알리느니라

여러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더 잘 알 수록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거나 그 신앙이 부재하거나 관심이 없을 때 우리는 우상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얼마나 자신이 무지한지를 알 날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중심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중심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셔서 세계와 온 우주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곁에 있을 뿐입니다. 그런 우리의 위치에 대해 우리는 명확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자녀로 삼으시고 중앙으로 하나님 오른편으로 불러주시고자 하십니다. 온 우주를 운영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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