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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이사야서(40-66장)_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 44:9-20

by 우루사야 2024. 6. 14.

오늘은 우상에 대해서 좀 더 집중하는 본문입니다. 우상이 왜 무익한 것인지 하나님은 말씀하시고자 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거나 또는 우리가 세울 염려가 있는 우상에 대해서 고민해볼 법하겠습니다. 먼저 9절부터 보시죠. 

9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10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11보라 그와 같은 무리들이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중요한 단어가 한 구절에 모여있습니다. 우상, 허망, 증인, 수치. 여러분. 재판장에서 변론을 하는 자가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이라면 언제일까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보면 한쪽편의 변론으로 자신의 변론근거가 와르르 무너질 때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법정에 섰을 때는 어떨까요? 그 신에 대해서 증명할 수 없는 순간 아니겠습니까? 우상이 무익한 이유는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죠. 여러분이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돈이나 부동산은 말할 것도 없고, 반려동물이나 인격적 존재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있는 존재라 할찌라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신이 될 수 없는 분명한 이유는 미래에 대해서 또 과거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주거나 약속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력한 정치인일찌라도 어찌 한해 앞, 아니 하루 앞을 단정짓고 확정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그런 우상이 문제이기보다 그 우상을 만든 존재를 비판하십니다. 

11b그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라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12철공은 철로 연장을 만들고 숯불로 일하며 망치를 가지고 그것을 만들며 그의 힘센 팔로 그 일을 하나 배가 고프면 기운이 없고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피로하니라13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곡선자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집에 두게 하며14그는 자기를 위하여 백향목을 베며 디르사 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취하며 숲의 나무들 가운데에서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정하며 나무를 심고 비를 맞고 자라게도 하느니라

우상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문제겠죠. 그것을 만든 사람이 문제입니다. 철로 만드는 철공, 나무로 만드는 목공. 하나님은 그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우상을 세우는 순서를 보라 말씀하십니다. 신을 만든다 해놓고 우상신을 만드는 목공이나 철공들이 피로해하며 목말라 하며 배고파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냐는 것이죠. 그런 존재가 만든 신이 어떻게 신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우상숭배의 행태를 잘 볼 수 있는 것이 연예인입니다. 요즘 연예인들의 포토카드를 모으는 것이 유행인가 봅니다. 가수의 앨범 안에 특정디자인의 사진을 모으기 위해서 수십 수백장을 구매해놓고 그 사진만 가지고 나머지는 버린다고 하죠. 얼마나 무익한 행태입니까? 게다가 이런 행동이 한철이라는 것을 어른들은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부질없는 짓이라 말하기도 하죠. 그런데 그 어른들이 그런 행동을 이어간다면 어떨까요? 대상이 연예인에서 정치인으로, 사상가로, 기업인으로 교체만 되는 것이라면요. 그것은 무형의 것이나 유형의 물건으로도 옮겨질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이나 과도한 취미생활이나 워커홀릭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적당한 선을 넘어 부질없다고 우리가 생각했던 그만큼의 행동으로 지금 내가 움직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그것들이 나 여호와 같이 과거를 설명해주고 미래를 약속해줄 수 있는지 말해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설명해주십니다. 15절부터입니다. 

15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16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 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고 배불리며 또 몸을 덥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17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우리의 손으로 만지고 다루고, 눈 앞에서 바라보며 대화를 하며,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 그것은 우리의 도구이기도 하고 이웃이기도 하며 나의 동반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코 신이 되어 줄 순 없습니다. 차라리 신의 자리가 아니라 동반자의 자리, 적당한 자리로 우리가 옮길 줄 알아야 합니다. 나무로 우상을 만든다 하여도 그 나무는 누군가가 씨앗을 뿌리고 키워 톱질을 해서 가져온 목재일 뿐입니다. 게다가 그 목재는 뗄깜으로 쓰기도 한 것인데, 그 뗄감의 일부를 깎아서 우상은 만든다 해서 어떻게 그것이 신이 될 수 있겠습니까. 

결국은 나의 의미부여입니다. 우리의 마음두기가 중요합니다. 내가 마음을 적당하기 두지 않으면, 내 인생에 우상이 늘어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우상들은 내 마음을 이리저리 뺏다 못해 결국에는 내 마음을 옥죄고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분이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신은 가히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깨달으라고 말씀하십니다. 18절부터입니다. 

18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19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것의 절반을 불 사르고 또한 그 숯불 위에서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 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20그는 재를 먹고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본래 인간은 마음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가득차 있어야 제대로 운영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비어있으니, 허탄한 마음이 이리저리 미혹당하기 쉽지요. 그래서 분별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니, 주님은 우리를 어린양이라 부르시죠. 그런 우리가 분별하도록, 지혜와 총명을 가지고 참된 신과 헛된 땅의 것을 올바르게 도구로 삼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성숙하게 키워내고 계신 줄 믿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자라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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