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AYAMEMORY
강해설교_F/이사야서(40-66장)_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 43:22-28

by 우루사야 2024. 6. 12.

하나님은 스스로를 우상과 비교하시며 증명하고 계십니다. 왜 하나님이 참된 신인지를 말이죠. 나라의 흥망성쇠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려오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그 어떤 신도 말하지 않았고 또 증명하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미리 말씀하셨고, 그것을 이루셨습니다. 무엇때문입니까? 이스라엘과의 관계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우리와의 동행, 믿음, 신뢰, 관계입니다. 43장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함께 보시죠. 22절부터입니다. 

22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너는 나에게 연락하지도 않았고 나를 싫어했어" 마치 연인의 대화같습니다. 쉬운번역들을 보니 '너는 나에게 싫증을 느껴했다'라고 되어 있더군요.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런 감정까지 느끼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점으로 다가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너무 멀리있는 분으로, 우리와는 전혀 다른 분으로 느끼고 있었다면 깜짝 놀라게 될 겁니다. 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감정의 관계로 이어져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하나님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이런 하나님의 발언들에 귀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꺼라면 이별해야죠. 왜 그 관계를 유지합니까? 만약 그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려고 한다면 다른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한 것 아닙니까? 신앙을 가짐으로써 얻는 인프라관계, 신앙이 주는 안도감, 신앙연수가 주는 나의 명예로움 등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져있는 이 관계의 유일한 명분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감정을 우리에게 나타내고 계실 겁니다. 계속해서 보죠. 23절부터입니다.  

23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24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보니 제사 이야기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제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과도하게 설정함으로써 이스라엘에게 부담을 주시려 하지 않으셨다 하십니다. 네, 하나님은 우리의 희생을 통해서 마음을 확인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언가 수고해서 좋은 물건을 가져옴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확인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시기에 두렙돈과 같이 작은 정성에 담긴 깊은 마음을 보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배라는 하나님과의 대화에 참여하는 자세, 태도, 마음가짐을 보십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관계하는 방법은 영적방법입니다. 남녀는 손을 잡고, 지인과는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영이신 하나님과는 손을 잡을 수도 엇없고 또 눈에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어떻게 관계할까요? 마음을 표현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예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마음을 담아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죠. 결코 예배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리지 않았음을 말씀하십니다. 제사라는 행위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사라는 관계맺는 통로 자체를 열지 않음에 따라 하나님과 관계에 무지한 이스라엘을 지탄하시는 것이죠. 

24b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25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26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24절에서 하나님과 관계에 관심이 없는 이스라엘로 괴로워하시던 하나님이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늘어나고 심각해지는 죄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 심각해지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어떻게 하고자 하십니까? 25절에 보니 "나는 허물을 도말하는 자" 허물을 깨끗하게 닦는다는 의미입니다.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왜 이렇게 하십니까? 나는 나를 위하여 한다고 하십니다. 죄 자체를 거절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죄를 해결하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인간을 향한 용서로 이어지게 되겠죠. 

예수님이 죽으실 때 많은 장면이 재판장과 사형장에서 이뤄졌습니다. 공적인 일이기에 법을 다루는 장소들에서 이뤄졌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재판의 성격을 가지고 이 안에서 변론하시며 이스라엘의 죄를 친히 감당하시고자 하시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하나님 스스로를 위하여 죄를 사하시고 이스라엘의 죄를 기억하지 않고자 하십니다. 27절로 이어집니다. 

 

27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반하였나니28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을 욕되게 하며 야곱이 진멸 당하도록 내어 주며 이스라엘이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

그래서 이 재판은 어떻게 끝납니까? 시조, 그러니까 아담이 범죄하였고, 교사와 성전의 고위직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욕되게 했습니다. 진멸, 즉 싹쓸어 없어지는 심판을 당하고 비방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죄사함으로 죄를 기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심판과 진멸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멸망당하고 포로로 잡혀 생활하게 되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 죄를 다시 되묻지 않으시고, 거의 말라비틀어진 풀같은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으셔서 새로운 나라로 세우실 것입니다. 


'강해설교_F > 이사야서(40-66장)_내 백성을 위로하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 44:9-20  (1) 2024.06.14
사 44:1-8  (1) 2024.06.13
사 43:14-21  (1) 2024.06.11
사 43:8-13  (0) 2024.06.10
사 43:1-7  (0) 2024.06.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