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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이사야서(40-66장)_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 41:22-29

by 우루사야 2024. 6. 4.

오늘 본문도 어제와 같은 주제로 이어집니다. 우상에 관해서,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헛된 것에 마음을 쏟는 인간에 대해서 하나님은 재판의 자리를 만들어 따져 물으십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850명의 우상숭배 선지자들과 대결했던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엘리야는 그 대결에서 이겼음에도 회개의 열매가 없는 왕가를 보고 절망했습니다. 네, 방법이 잘못되었던 겁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시내산으로 인도하셔서 그곳에서 강한 바람도 지진도 폭풍도 아니라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힘이 아닌 "말씀"이 인간의 마음에 회개를 줄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신 사건이죠.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22절부터 보시죠. 
22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이 어떠한 것도 알게 하라 우리가 마음에 두고 그 결말을 알아보리라 혹 앞으로 올 일을 듣게 하며23뒤에 올 일을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신들인 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재난을 내리든지 하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만든 신과 당신과의 차이점 중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알게 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상은 그 어떤 것도 깨닫게 해줄 수 없습니다. 말할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데 인간에게 무얼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자꾸 그 우상에게 의미를 부여하려고 합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현대에 무엇이겠습니까? 재물입니다. 재물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니 어느샌가 재물은 이 세상을 운영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돈을 발생시키지 않는 인간은 쓸모없는 인간으로 치부당하게 만들었습니다. 네, 돈이라는 우상은 인격을 말살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깨닫게 하기는 커녕 인간을 죽이고 있습니다. 네, 돈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있는 우리의 돈을 향한 판단과 의미부여가 그렇게 만든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무언가를 알게 해주심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의 일도 준비할 수 있게끔 하십니다. 23절을 보니 "뒤에 올 일을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신들인 줄 우리가 알리라" 신이라면 인간을 뛰어넘어 초인간적인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신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시공간을 뛰어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과연 미래의 일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세상의 몇 수 앞뿐만 아니라 몇 십 몇 백 수 앞을 내다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더 나아가 복을 줄 수는 있는지, 생명화복과 재난은 컨트롤 할 수 있는지 보고자 하십니다. 네, 당연히 우상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이건 지금 우리 인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무것도 못하는 우상을 만들어 의미를 부여하고 높여서 과연 무얼 하겠느냐 물으십니다. 그것을 22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진술하라며 법적으로 또 공적으로 결론을 지어 공표하자고 하십니다. 과연 우상들은, 그 우상을 만든 인간의 답변과 변론은 무엇이었습니까? 또 그 우상과 다르게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4보라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 25 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그가 이르러 고관들을 석회 같이,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음 같이 하리니26누가 처음부터 이 일을 알게 하여 우리가 알았느냐 누가 이전부터 알게 하여 우리가 옳다고 말하게 하였느냐 알게 하는 자도 없고 들려 주는 자도 없고 너희 말을 듣는 자도 없도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허망한 존재입니다. 인간의 헛된 의미부여였습니다. 돈 조차도 지금 당장 나의 필요를 채우고 마음은 채워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샌가 그 돈이 주는 유익과 채움은 불안과 초조로 바뀌어 어느샌가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하거나 지금 누리고 있는 자극이 사라질까봐 노심초사 하는 우리를 바라보게 해줍니다. 그 자극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느샌가 결국 돈에 끌려다니는 나의 모습을 확인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우상을 만들고 높여서 그 우상에게 개 목걸이의 손잡이를 쥐어주고 그 개목걸이를 내 목에 채우는, 가장 미련한 모습이 죄인된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그 우상과 다르게 말이죠. 25절입니다.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은 역사를 움직이시고 개시하십니다. 그래서 장차 일어날 일을 알려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도 하시죠. 그래서 동쪽편에서 대제국을 일으키시어 이스라엘이 위치한 가나안 땅으로 오게 하셨습니다. 그 오는 길이 북쪽에 있기에 25절에서는 북방에서 오게 한다고 되어 있지요. 그 자는 이스라엘 대하기를 진흙 주무르듯 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자입니다. 그런 자를 일으키는 분이 스스로 계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임을 스스로 소개하시고 밝히고 계셔요. 과연 우리는 누구를 믿는 것이 맞는 것일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7절부터입니다. 
 
27내가 비로소 시온에게 너희는 이제 그들을 보라 하였노라 내가 기쁜 소식을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28내가 본즉 한 사람도 없으며 내가 물어도 그들 가운데에 한 말도 대답할 조언자가 없도다29보라 그들은 다 헛되며 그들의 행사는 허무하며 그들이 부어 만든 우상들은 바람이요 공허한 것뿐이니라
우리가 로또 한장을 사서 지갑에 넣어놓고 한주간 소망을 품으며 토요일 저녁 8시 35분을 기다리곤 합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그것을 우상으로 다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하는 사업체와 업무, 내가 돌보는 자녀와 가정, 나의 안위와 쉼, 내가 꾸려가는 그 무엇이라도 나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견고히 하기 위해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잊어버리거나 허무한 존재로 치부"하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일뿐만 아니라 그 미래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우리가 얼마나 기뻐하며 받을만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말해줄 수 있는 참신임을 증명하시고, 그것에 위로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진짜 바람처럼 공허한 존재가 무엇인지, 나는 누구를 섬기고 있는지 묵상해 볼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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