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인류의 대표자가 되셨습니다. 인류가 저지른 죄악을 법정에서 해결하고자 변론조차 하지 않으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수난일기 중에서 상당량을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이 재판과정입니다. 이 과정이 바로 예수가 우리를 어떻게 구해주시는지에 대해 설명해주기 때문이죠. 그럼 함께 보시죠. 13-16절입니다.
13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14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15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16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17(없음)
예수가 헤롯에게 심문을 당하고 돌아옵니다. 어제 본 바와 같이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빌라도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예수를 놓아주고자 합니다. 헤롯도 그렇게 판단했다고 청중에게 밝힙니다. 그나마 청중을 잠재우고자 태형벌을 내리고자 합니다. 계속해서 말씀드리는 바와 같이 빌라도의 이름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빌라도의 악함이 아니라 "공적인 재판과정을 겪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런 점에서 출애굽 당시에 모세와 바로가 10가지 재판을 겪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0가지의 상황과 환경을 통해서 애굽이 신으로 섬기는 것들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 되거나 도리어 애굽백성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밝히셨습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은 멀쩡했지요. 그 과정을 통해서 바로 개인은 더 강퍅해졌지만, 전세계에 공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되심"이 드러났죠. 지금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의 3번의 재판과정을 통해서 "예수의 무죄함"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가 우리의 대표자가 될 수 있었던 또 다른 한가지 이유는 무죄함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면서 인간이셨고,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어서 대표자가 될 수 있었고, 반면에 우리는 죄가 있지만 예수는 죄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대표자가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이 재판과정을 통해서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기억할 때 꼭 염두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예수의 위치와 특성입니다. 예수가 왜 나의 죄를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거를 가지고 믿음을 키워나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음 18-23절에서 죄수 바라바가 등장하게 됩니다.
18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19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20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21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22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23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지금 이 재판과정에서 사탄은 청중의 분위기와 심령을 흔들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그러했고, 출애굽하여 가는 길목에서 발람 선지자에게 그러했으며, 광야에서 금식하는 예수에게 그러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자신의 세력을 일으키려는 야심을 계속해서 인류사에서 보여왔습니다. 지금도 무죄한 예수가 드러났음에도 계속해서 예수를 사형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모르는 것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사탄이 원하는대로 예수가 죽으면 자신이 높아진다고 생각했지만 큰 착오였음을 말이죠. 예수를 통해서 수많은 인류가 속죄함을 얻고, 섬김과 부활의 원리를 모르는 그는 예수가 죽음 이후에 부활로 더 높아질 것임을 말이죠.
어쨌든 사탄은 멋모르는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여 청중을 충동하였고, 하여 청중은 빌라도에게 유월절 특사로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외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청중은 예수를 사형에 처하되 가장 잔인한 방법인 십자가에서 죽여야 한다고 직설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예수가 그들에게 어떤 해를 입혔길래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일까요. 네, 그들은 자신들의 교만으로 사탄에게 좌지우지 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 심령에 예수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특히 섬기는 예수가 아니라 유명한 정치인이나 연예인과 같이 나를 높여줄 예수를 바란다면 우리 심령도 악의 세력과 이기심에 좌지우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자들은 결코 섬김과 부활의 연관성, 즉 영적원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낮아지면 높아진다는 역설의 영적원리를 믿지를 못합니다. 예수를 똑바로 믿을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24-25절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24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25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결국 빌라도는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가두게끔 바꾸게 됩니다. 왜 바라바 사건이 언급되는 것일까요? 이 바라바의 위치가 바로 우리 자신의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가 빌라도에게 외치고 있는 사탄에 현혹되어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때문에 놓아진 바라바의 위치에 있던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굳이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예수를 통해서 놓임을 받는 것인지 알려주고자 하십니다. 네, 예수는 우리 때문에 고난받으셨고 붙잡히셨습니다. 우리의 대표자의 섬김과 희생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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