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 지금 이 십자가 구속의 사건은 죄악의 무리가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끌고 계십니다. 오히려 죄악의 무리는 자신들의 악함으로 말미암아 사용받을 뿐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였습니다. 47-48절입니다.
47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48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죄악의 무리가 보이는 습성이 있습니다. 바로 거짓입니다. 얼굴에 가면이나 탈을 쓰고 본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죠. 아담과 하와에게 뱀은 합리적인 설득을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거짓을 말했습니다. 광야시험 때 사단은 예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근거를 대보려고 했지만 그것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뿐이었습니다. 사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결국 타락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서로를 탓하며 자신의 죄를 가리려고 하는 모습, 진짜의 모습을 가리려고 가짜의 모습을 쓰려 하는 것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다 또한 예수에게 입을 맞추며 호의적인 태도로 보이지만, 그는 군사들과 작전을 짜서 밤에 얼굴식별이 잘 안되는 환경에서 자신이 인사하는 자가 예수라는 약속을 위해 인사했을 뿐입니다. 예수는 가룟유다에게 명확하게 말씀하셨죠.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만약 가룟유다가 당당했다면 이렇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저 사람이 예수입니다 하면 될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당당하지 못했습니다. 돈이라는 욕심에 팔린 자기자신이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숨기면서 이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예수님은 정확하게 지적하시면서 가면 쓴 가룟유다의 양심에 강한 질타를 보내셨던 것이죠.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죄인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모난 모습까지도 드러내 도움과 은혜를 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면을 모두 알고 계심을 기억햐애 하겠습니다. 49-51절입니다.
49그의 주위 사람들이 그 된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하고50그 중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린지라51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예수님을 통해서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을 듣게 된 제자들은 예수님께 마치 "전투개시!"라는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게 됩니다. 제자들 중 한명은 급한 성미로 결국 사고를 치게 됩니다. 칼을 들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자르고야 만 것이죠. 요한은 복음서를 쓰면서 그 제자가 베드로였다고 말해줍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베드로 또한 예수님을 베반할 자입니다. 다만 지금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죠. 네, 베드로도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룟유다를 기다려주셨듯이, 베드로를 기다려주십니다. 네, 우리는 신앙에서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내 가면벗기에도 급급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나의 가면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나의 모습을 다듬어주시는 것은 예수님이 해주실테니 말이죠. 예수님은 베드로가 저지른 사건을 수습해주십니다. 신적인 능력을 사용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낫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이것까지 참으라" 칼을 쓰지 말라고 하시죠.
베드로가 칼을 쓴 것은 어찌보면 자신의 본 모습을 가리기 위한 가면이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하며 정말 예수님이 떠나실까 걱정되는 모습들을 가리기 위함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자신이 기적을 일으키며, 바다 위를 직접 걸었으며,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직접 보았던 그 모든 것들이 결국 "나의 욕망이 무너지고 있는 이 시간"에 무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이것까지 참으라"라고 하십니다. 이시간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죠. 네, 하나님의 궁극적인 방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영적세계에서 생명을 일으키는 방법을 위해서, 사랑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하는 그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52-53절입니다.
52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53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예수님은 잡으러 온 무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마치 엄청난 폭동들을 진압하기 위해 나선 이들처럼 무장하고 나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도 알고 계십니다. 지금은 그들의 때, 즉 어둠의 권세가 하나님을 잡아서 십자가에 못을 박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고난을 주실 때를 맞이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는 더욱이 힘보다 영적원리에 집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고난이 나의 힘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살아내야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분별하지 못한 어둠의 권세에 사로잡힌 이들은 무기라는 장비를 갖추고 예수에게 다가왔고, 베드로는 칼로 맞섰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를 예수는 부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갈 줄 아는 분별하는 순종"이 필요해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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