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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누가복음_하나님의 아들

눅 19:1-10

by 우루사야 2024. 4. 20.

누가는 계속해서 여리고에서 구원받는 이들의 사건을 소개해줍니다. 지난 시간에 부르짖는 맹인도 그러했듯이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삭개오 또한 사회에서 지탄받는 이였습니다. 게다가 큰 특징 중 하나가 키가 매우 작았다는 것이죠. 1-3절을 먼저 보시죠. 

1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2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3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4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여러분. 누가가 우리에게 계속해서 사건을 의도적으로 연결시켜셔 소개해주고 있음을 기억하세요. 누가는 일전에 부자가 천국가기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부자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부자였습니까? 우선 여리고는 대도시였습니다. 예루살렘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집중되었던 도시입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그곳에서 세리들의 장이었습니다. 세수를 관정하는 자로써 큰 부를 누렸던 자라는 것이죠. 그럴수록 동족 유대인들에게는 표적의 대상이었습니다. 게다가 외모 또한 키가 어린아이처럼 작아서 군중들 속에서 뭘 보려면 나무 위로 올라가는 수 밖에 없었던, 외모로도 그다지 봐줄꺼리가 없는 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예수님이 여리고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러 왔습니다. 

맹인은 예수님을 부르짖었지만, 삭개오는 예수님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지라도 예수님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왔다는 것이고, 그 결과 예수님은 그들을 품어주시고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셨다는 겁니다. 이 사실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예수님께 다가가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어요. 어떤 분은 직분을 받아가면서 큐티도 하고 소모임도 참여하며 목사님과 관계도 잘 맺는 분이 있는가 반면에, 어떤 분들은 생업에 치여서 주일에 예배 한번 드리기도 벅찬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생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좋지요. 그런데 구원은 결코 그것에 달려있지 않다는 겁니다. 예수님께 다가가고자 하는 진심을 예수님은 보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직업과 사회적 평가보다 예수님을 향해 열린 마음을 보셨습니다. 5-7절입니다. 

5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6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7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맹인처럼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부르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삭개오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그의 집에서 교제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립니다. 죄인과 교제한다고 말이죠. 삭개오는 심경의 변화를 겪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다가오신 것,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오겠다고 하시는 것, 주변의 수군거림까지도 마다하시고 자신을 만나주신 것. 이것들 속에서 삭개오는 복잡한 자신의 심경에서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여 삭개오는 부자관리가 하지 못한 일을 하게 됩니다. 8입니다. 

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가 말하는 네 갑절, 4배에 해당하는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겠다는 규정은 출애굽기 22장에 등장하는 율법입니다. 네, 우리는 율법을 결코 스스로 지킬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계명을 잘 지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채로 지키는 규정은 "종교라는 영역에서 드러나는 나의 욕망"일 뿐입니다. 나의 공로를 쌓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삭개오는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겼고 그것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것이죠. 네, 구원은 바로 이런 것,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호통을 치거나 심오한 가르침을 주거나 신비한 표적을 보여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랑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격적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나의 마음을 풍성케 하여, 마침내 내 손에 쥐고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섬기기 위해 꺼내놓기 시작합니다. 나의 재정, 나의 자존심, 나의 위치, 나의 인생까지도 말이죠. 그렇게 우리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10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네. 영생과 구원. 하나님의 나라는 "죄인"들에게 어울리는 곳입니다.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여기는 자들은 결코 들어올 수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필요하다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어울립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고아가 되십시오. 가난한 자가 되십시오. 애통하는 자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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