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교하시며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는 "겸손한 자의 기도"이며, 그 어떤 죄인의 기도도 겸손하다면 들으신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겸손의 주제는 계속이어집니다. 먼저 17절을 보시죠.
17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예수가 이 땅에 와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내가는 그 물결을 의미합니다. 죄사함을 받고, 치유가 일어나며, 귀신이 쫓겨나갑니다. 즉 인간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영역들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믿음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초월한 치유와 자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지고,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물결입니다. 예수는 그 나라를 하늘로부터 이 땅으로 가지고 온 당사자입니다. 그 물결을 이제 제자들에게 넘기시려고 합니다. 제자들은 그 물결의 파동을 계속 일으키며 한 방향으로 이끌고 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방향과 운동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과 같이 여전히 "자신이 유지하고 싶은 신앙행태"를 가진 자들이죠. 또는 여전히 "돈과 재물"이라는 자신의 욕망에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지금도 비인격적인 행태로 이웃을 이웃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발판으로 삼는 자들이죠. 이들에 대해 예수님은 반대의 모습으로 어린아이를 말씀하십니다.
그럼 어린아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인다는 말입니까? 여러분. 여기서 어린아이는 유아를 말합니다. 부모가 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부모가 선택함에 따라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영아는 선택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방향에 대해서만큼은 "전적인 순종"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이죠. 이미 예수는 이 땅에 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지구상에서 확장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 물결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는 마지막날 하나님 나라의 완성본이 이뤄졌을 때 그 나라를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다에 자신의 몸을 맡겨 파도를 타듯이, 급류에 자신의 몸을 맡겨 강이 흐르는대로 나아가듯이, 예수라는 영적물결에 나의 인생을 맡겨 하나님나라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문제는 어른들에게 있습니다. 15-16절을 보시죠. "15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16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경호원처럼 서있었습니다. 몰려드는 무리들, 예수님이 한번 만져주시기를 바라는 미신적 신앙을 가지고 오는 이들, 진짜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으며 다가오는 이들. 다양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나아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 아기를 데려온 이들의 신앙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린아기와 같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모두 선하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자, 예수에 대해서 어린아이와 같이 따라갈 줄 아는 순종할 줄 아는 자가 되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우리는 나이를 먹어갈 수록 자신의 주관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예수라는 파도를 의심하며 발버둥치다가 종교행위라는 덫에 걸리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지식에 그치지 않습니다. 요식행위로 대체할 수 없습니다. 내 삶 그자체로 받아들입니다. 먹을 때에도 입을 때에도 만날 때에도 잘 때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게 되는 놀라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 될 때까지 하나님과 동행할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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