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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누가복음_하나님의 아들

눅 17:11-19

by 우루사야 2024. 4. 12.

예수님은 믿음이란 크고 작고 보다 존재의 유무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믿음에 대한 한가지 일화를 누가는 소개해주고자 합니다. 지금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인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11절입니다. "11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여기서 사마리아라는 지명에 대해서 다시 한번 언급하고 가야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에 치유사건에서 중요한 힌트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에서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과 같이 유대인들이 혈통적으로 하등하게 여겼던 민족에 대해서 분명한 구별과 경계를 제시하셨습니다. 

첫째, 구원의 질서에 있어서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먼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포인트일 겁니다. 둘째, 유대인들은 먼저 받은 은혜를 이방인들에게 잘 전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달하지 않고 먼저 받은 것을 자랑하기만 하는 그들의 교만에 대해서 예수님은 질타하셨습니다. 셋째, 그런 점에서 사마리아인과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있는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넷째,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유대인에게 이르기까지 그들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을 예수님은 순종하고 이루려고 이 땅에 오셨고 지금 오늘 본문에서도 이에 순종하고 계십니다. 본문을 보시죠. 12-14절입니다. 

12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13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14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나병환자는 만성전염성을 가진 피부병입니다. 지금이야 항생제가 잘 발달되어 피부염에 대해서 큰 염려를 안하지만, 과거 고대에는 이 병이 퍼지면 마을뿐만 아니라 한 도시가 쑥대밭이 되곤 했죠. 그래서 성경에서는 나병환자 격리조치에 대한 내용이 엄격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기피하는 사마리아 지역근처와 나병환자들이라는 대상을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밝히고자 하십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향해 부르짖는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증거가 되는 "치유"를 허락하십니다. 특히나 나병의 치유는 제가 언급해드린 바와 같이 율법에서 엄격하게 다루고 있는 병입니다. 구약에서 생명은 하나님의 증거이며, 죽음은 하나님을 떠남의 증거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병은 하나님을 떠남의 증거이기에 율법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죠. 이에 따라 나병이 나았음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가 될 것이고, 이것을 제사장에게 확증받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유대인들이 놓친 사역,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그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납니다. 15-19절입니다. 

15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16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18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19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열명의 나병환자가 모두 한번에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 돌아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네, 단순히 치유된 기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와 구원의 증거로 확인하고 있는 것이죠. 그것은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로 믿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립니다. 나병을 가졌을 때에는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서 예수를 불러야 했습니다. 격리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자신은 죽음을 덮어쓴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사함을 받은 존재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어 이제는 예수의 발 앞에 있을 정도로 가까이 나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 나머지 9명은 무엇일까요? 그들도 똑같이 치유를 받았지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네, 지금 예수님은 "영적분별력"을 가진 사마리아인에 대해서 따로 언급하고자 하심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심으로써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예수를 향한 믿음입니다. 예수를 고백하고 믿는 누구든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루살렘에서 멀리 살든 가까이에 살든, 믿음으로 고백하며 나아오는 자는 모두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고 침노하고 획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허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믿는 자는 누구든 하나님께 담대히 달라하여 주신 것들로 영혼을 추수하여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탐욕의 대상이 되는 재정도 그렇게 하나님께 받아 올바르게 사용하여 추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가 온 이후의 시대는 이렇게 영적으로 열린 시대였던 겁니다. 사마리아인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지만, 나머지 유대인으로 추정되는 9명은 그렇지 못함을 예수님은 말씀하고자 하셨던 것이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그것들은 부패를 시작합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관계가 있는 순간 그 사람들과 멀어질 것입니다. 혹시 예수를 당연하게 생각한 나머지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구원은 부르짖고 구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믿음으로 찾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우리가 당연히 여기며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여겨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도 나에게 주신 복음과 십자가의 사랑에 감사하며 삶으로 살아낼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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